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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 性소수자 고통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

성소수자 교회 이끄는 ‘게이 목사’ 대니얼 페인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한국 性소수자 고통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

“한국 性소수자 고통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
조신한 말투와 몸짓. 게이라면 으레 이런 특징이 있을 듯하다. 하지만 6월 18일 경기 안양시에서 만난 게이 목사 대니얼 페인(34)은 지극히 평범했다. 그는 2011년부터 우리나라에서 성소수자를 위한 ‘열린문공동체교회’를 이끌고 있다. 이 교회에는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 30~40명이 다닌다. 처음에는 외국인 게이 8명 등 외국인이 주로 교회 문을 두드렸지만 6월 중순부터 한국인 성소수자가 과반을 넘어섰다.

그는 진보기독교연맹(PCA)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활동하기에 원칙에 따라 교계에서 보수를 받지 않는다. 교회 헌금에서 생활비를 지원받지 않는 건 물론이다. 직장에 다니며 목회 활동을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페인 목사가 타지에 둥지를 튼 이유는 뭘까. 퇴근길에 기자를 만난 그가 눈을 맞추며 영어로 답했다. 그는 한국말이 서툴렀다.

“미국 플로리다주 펜서콜라에서 태어나 18년 동안 보수적인 침례교회에 다녔다. 유치원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그 교파에 속해 있었고, 마을도 교회문화와 연관돼 있었다. 그곳에서는 과학 교과서에 동성애의 비과학성을 명시했을 정도로 동성애를 죄악시했다. 난 한국 성소수자가 그렇듯 늘 죄책감에 시달렸다. 사람들이 나처럼 괴로워하지 않길 바라며 교회를 세웠다.”

그러면서 페인 목사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들려줬다. 그는 8~9세 때 자신이 동성애자란 걸 자각했다. 억압적인 분위기 탓에 누구에게도 사실을 말하지 않았지만 12세 때 동성친구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게이는 ‘게이더’(게이와 레이더를 합친 은어)를 통해 상대방의 행동거지를 보며 그가 게이인지를 알아차리곤 하는데, 그 친구도 게이처럼 느껴졌다.

“예배가 끝난 뒤 내가 키스를 했는데 그 친구가 저항하지 않았다. 첫사랑이었기에 애틋했다. 하지만 그 친구가 전학을 가는 바람에 1년 만에 헤어졌다. 결혼해서 아이 아빠가 된 그 친구는 그때 일시적으로 동성애를 느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아니었다.”



10대 시절 우울증 약 복용하며 버텨

그는 15세 때 동성 친구와 처음으로 섹스한 뒤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 신이 자신을 지옥에 보낼 것만 같았다. 12세 때부터 목사를 꿈꿨을 만큼 믿음이 깊었기에 울면서 기도하다 잠들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기도하면 할수록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신했다. 그러다 제동이 걸렸다.

“대형마트 카탈로그에서 속옷 입은 남성의 사진을 오려 모아두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그걸 발견하고 추궁했다. 결국 비밀을 털어놨고, 그날 밤 아버지는 성경을 보여주면서 ‘동성애는 죄’라며 일침을 놓았다. 난 성경에서 금하는 이혼을 두 번이나 한 아버지도 죄인이니,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화해하자고 했다. 물론 그렇게 되진 않았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수난이 시작됐다. 우울증 약을 먹으며 일주일에 두 번씩 상담사를 만났고, 부모의 요청으로 목사와 지속적으로 면담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소년의 몸에 들어간 악령을 빼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일로 원형탈모증을 앓은 페인 목사는 그때를 트라우마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일로 종교를 저버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뉴올리언스 침례신학대학(NOBTS)에서 종교교육을 전공하며 변화를 도모했다.

“대학에서 4세 연상의 여인을 만났다. 기독교 예배 인도자였다. 그녀는 내가 평범한 성 정체성을 갖도록 도우려고 했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 물론 나는 그녀를 여자 형제처럼 덤덤히 사랑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변화하고 싶었고 19세 때 결혼을 감행했다. 나는 부부생활에 임하는 한편 게이를 일반인으로 변화시키는 그룹에 참여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4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부부가 중국에서 1년간 선교사로 살았는데, 그새 그에게 동성 애인이 생겼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2003년 무작정 한국으로 왔다. 집에서 되도록 멀리 가고 싶었는데 학창시절 만난 한국 친구들 덕에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한국 학원에 연락하면 3일 후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2008년까지 분당, 수원 등지에서 영어교사로 지냈다. 하지만 꿈을 잊을 수 없었다. 성소수자를 돕는 목회자가 되라는 소명을 받아서다. 당시 한국에는 성소수자를 위한 교회가 없었다. 신학대를 졸업했기에 목사는 될 수 있었지만 종교교육이란 전공만으론 소명을 다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2008년 캐나다 핼리팩스의 대서양신학대학(Atlantic School of Theology)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곳은 진보적인 신학교로 학생 10%가 성소수자였으며 교수들도 우리를 인정해줬다. 이곳에서 공부하며 교회가 동성애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아버지가 언급한 성경 구절도 동성애가 아닌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것이었다.”

게이 앱 통해 목회 상담

페인 목사는 졸업하자마자 한국으로 돌아와 교회를 개척했다. 처음에는 지인 소개로 서울의 한 교회를 빌려 예배를 드렸다. 하지만 ‘성소수자를 위한 교회를 만들겠다’는 그를 응원해주는 것처럼 보였던 지인은 그에게 “게이 치료 교회를 만들라”고 회유했고, 결국 그는 6주 만에 그곳을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 성소수자를 위한 교회가 2곳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는 2011년 7월 외국인 성소수자들도 함께할 수 있는 교회를 만들기로 한다. 외국인이 많은 서울 이태원에 자리를 잡은 것도 그 때문이다. 한동안 나이트클럽을 교회로 대관했으나 교회 내에서 반대가 있어 현재는 해방촌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다.

“최근에는 게이 채팅 애플리케이션(Jack’d)을 활용해 목회 활동을 한다. 내가 접속하면 근방에 있는 게이들 프로필과 사진이 뜬다. 내 프로필을 본 게이들이 고민을 털어놓는다. 현재까지 30여 명을 상담했다. 물론 교인들도 돕는다. 몇몇 사람이 자살 소동을 벌이는 바람에 잠 못 들 때도 많다. 힘들지만 삶을 되찾은 이들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물론 이 과정에서 위협을 당하기도 한다. 교계에서 배척당한 게이 가운데 페인 목사에게 반감이 있는 이도 있다. 성소수자를 돕겠다는 마음에 교회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 자신의 신상을 공개해놓아 보수 기독교계로부터 지탄을 받을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상처를 받지만 예수가 받은 고난에 비할 수도 없는 시련이라고 여기며 마음을 다스린다. 그는 이 교회를 한국인 성소수자 목회자가 이끌어가길 원한다. 지역에 사는 성소수자들을 위해 이 교회가 다양한 지역으로 확대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성 정체성 때문에 버림받은 10대에게 쉼터를 제공해주고 싶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성소수자 문제를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싶다. 성소수자를 비난하던 사람들도 당사자를 만나 대화하면 그를 이해하지 않을까. ‘킨제이보고서’는 인구의 10%를 성소수자로 추정하고 내가 보기에도 인구의 3~7%는 성소수자인 것 같다. 사회가 지금은 그들을 배척한다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인정할 것이다. 부모가 나를 조금씩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열린문공동체교회 교인들 참가한 2013 앰플리파이 콘퍼런스

올해로 5회째…성소수자 인정 기독교 모임


“한국 性소수자 고통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
2013 앰플리파이 콘퍼런스가 6월 7~9일 홍콩 차이완 청년광장(Y-Square)에서 열렸다. 이 콘퍼런스는 아시아 각지에서 퀴어(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무성애자, 범성애자 등 성소수자)를 인정하는 기독교인이 모이는 자리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이 자리에는 중국, 타이완, 일본, 한국, 인도네시아, 홍콩, 필리핀 등 11개국에서 교인 300여 명이 모였다. 한국에서는 열린문공동체교회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참가했다. 이곳에서는 합동예배, 주제별로 진행하는 워크숍(올해 10개 워크숍 진행), 목회자들의 연대회의 같은 행사가 열렸다. 올해는 신디 러브, 패트릭 청, 분 린 엔게오 신학박사 등이 참석해 ‘누리고, 사랑하고, 인도하라’란 주제로 설교했다.




주간동아 893호 (p42~43)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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