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3

2013.06.24

위기…파행…한국일보 벼랑 끝 서다

한국 언론 사상 초유의 편집국 폐쇄…조만간 중대 국면 맞을 듯

  • 장우성 한국기자협회보 기자 jean@journalist.or.kr

    입력2013-06-24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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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파행…한국일보 벼랑 끝 서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6월 19일 서울 중구 소공동 한진빌딩 1층 로비에서 편집국 봉쇄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한국일보’ 기자들은 자신보다 선임인 선배 기자들을 ‘형’이라고 부른다. 다른 언론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일보만의 독특한 문화다. 혈연관계와도 같은 끈끈한 유대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조직문화는 창업자인 고(故) 장기영 회장, 고 장강재 회장 부자의 솔선수범하는 카리스마와 결합해 한국일보가 ‘기자 사관학교’라고 불리며 전성시대를 구가하는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한국일보 추락의 한 배경이기도 하다.

    한국 언론 사상 초유의 편집국 폐쇄라는 극단적 상황에 이른 한국일보의 위기는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93년 장강재 회장이 49세 젊은 나이로 타개하면서 리더십의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한국일보는 격변하는 조간신문시장을 공격적인 경영으로 돌파하려던 시점이었다. 고 장강재 회장은 신문시장의 변화와 한국일보의 위기에 월요판 발행을 통한 주 7일 신문 발행(1989), 전국 동시인쇄(1990), 조석간 동시발행(1991) 등 선제적 전략으로 대응했다.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부족한 한국일보에 재정적 부담과 부채 증가가 동시에 따라왔음은 물론이다.

    경쟁지들과 한 치 양보 없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 총사령관을 잃은 한국일보는 표류하기 시작했다. 후계구도를 놓고 장씨 일가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벌어지면서 신문을 지탱하던 끈끈한 조직문화가 찢겨졌고, 경영은 악화일로를 걷기에 이르렀다.

    고 장강재 회장의 외아들 중호 씨는 부친 사망 당시 20세에 불과해 경영을 맡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서열상으로 장재구 현 회장이 형인 장강재 전 회장에 이어 회사를 이어받아야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창업주인 고 장기영 회장은 장강재 회장을 제외하고 4남인 장재국 전 회장을 가장 총애했고, 고 장강재 전 회장 역시 셋째동생 재국에 대한 신임이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주 일가의 쿠데타와 도덕불감증

    결국 한국일보는 명예회장에 재구, 회장에 재국, 사장에 재근(5남), 미주한국일보 사장에 재민(3남) 등 고 장강재 회장의 동생 4명이 분점을 하게 됐다. 후계자가 돼야 할 중호 씨가 아직 어려 실권을 삼촌인 장재국 전 회장이 쥔 셈이 된 것이다.

    이때부터 한국일보 주도권을 놓고 재구, 재국, 중호 등 삼촌과 조카의 이합집산이 벌어졌다. 여기에 고 장강재 회장 부인인 이순임 씨(현 백상재단 이사장)도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이씨는 아들 중호 씨가 한국일보를 무사히 승계할 수 있는 최선의 구도가 짜이기를 원했다. 1998년 장재구 회장과 중호 씨가 연합전선을 꾸려 몰아냈던 장재국 전 회장이 몇 달 후 다시 복귀하는 등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쟁탈전이 전개됐다. 한국일보에서는 ‘1차 쿠데타’ ‘2차 쿠데타’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1인자 자리가 엎치락뒤치락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일보 내 구성원 사이에서도 3강 유력주자를 놓고 ‘라인’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어제까지 형제처럼 지내던 기자들이 파벌로 나뉘었다. 한국일보의 힘이었던 탄탄한 조직문화는 붕괴됐다. 당연히 회사의 위기 극복은 요원해졌다. 한국일보 출신 한 언론인은 “당시부터 한국일보 인사의 기준은 충성심이 됐다. ‘내 사람 심기’가 관심사였고 정치적 계략이 난무했다”며 “회사가 권력투쟁에 휘말리면서 능력 있는 기자가 하나둘 떠나갔다. 경영난도 점점 심화됐다”고 말했다.

    사주 일가의 도덕불감증도 회사 경영위기를 더 키웠다. 회사 돈을 단기로 대여받아 외부로 빼돌렸다는 혐의로 고발당하는 등 장씨 형제와 회사 간 채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불투명한 경영이 횡행했다.

    여기에 1997년 외환위기로 결정타를 맞았다. 부채가 5500억 원에 달하는 등 부도위기에 몰리자 채권단은 한국일보에 대한 사적 화의를 결정해 회생 기회를 줬다. 2002년부터는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회생을 위해 안간힘을 쓰던 한국일보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거액 도박 의혹에 휘말려 도덕성마저 타격을 받은 장재국 회장이 물러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채권단이 완전감자를 실시하고 기존 주주의 지분을 소각했다. 그 대신 2002년 장재구 현 회장이 최대주주에 올랐다. 지루하던 권력투쟁이 결국 장재구 회장의 승리로 끝난 것이다.

    장재구 회장 체제가 안착한 뒤에도 한국일보의 갈 길은 멀었다. 채권단에 500억 원 증자를 약속하고 회사를 넘겨받은 장 회장은 4년이 지나서야 증자액을 채웠다. 이후 채권단은 2006년 2차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서울 종로구 중학동 사옥 매각과 200억 원 추가 증자를 조건으로 제시했다. 장 회장은 중학동 사옥을 한일건설에 매각하는 대신 새 건물 상층부 약 6600㎡(2000평)를 시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매입할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받으면서 2011년 1월 1일자 신문 사고를 통해 중학동 재입주를 공표했다.

    하지만 장재구 회장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포기하면서 중학동 복귀는 무산됐다. 한국일보 내에서는 장 회장이 500억 원을 증자하는 과정에서 빌린 돈을 갚으려고 우선매수청구권을 내놓았고, 결과적으로 회사에 200억 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것으로 본다. 이후 한국일보는 자매지 ‘서울경제’ 매각, 미주한국일보 지분 매각 등 다양한 회생 방안을 추진했지만 모두 여의치 않았다.

    위기…파행…한국일보 벼랑 끝 서다

    한국일보 사측이 ‘편집국 봉쇄’라는 노동조합(노조) 주장을 반박하며 노조에 보낸 공문(왼쪽). 한국일보 기자들이 사측의 편집국 봉쇄로 노조사무실에서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다수 구성원 “장재구 떠나야”

    결국 한국일보 본사 매각에 나서 모 대기업을 비롯한 여러 기업과 협상을 추진했다. 최종 서명만 남겨놓은 것으로 알려졌던 한 중견기업과의 협상은 4월 최종 무산됐다. 우선매수청구권을 포기하면서 생긴 손해액 200억 원을 변제하고 은퇴하겠다던 장 회장의 약속도 차일피일 미뤘다.

    결국 “장재구 회장은 회사 매각 의지가 없고 회생시킬 능력도 없다”는 한국일보 구성원들의 불만이 폭발하기에 이르렀다. 상습적인 임금 미지급에 시달리고, 지난해 장 회장이 지면 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던 이충재 편집국장을 돌연 경질할 때도 회사 회생이 급선무라는 이유로 참았던 기자들의 실망감이 극에 달했다. 노동조합(노조)이 장 회장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이유다.

    이런 배경 때문에 한국일보 사태는 실마리를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장재구 회장은 이영성 편집국장을 경질한 데 이어 해고, 대량 인사 조치, 편집국 폐쇄 등 초강수로 일관했다. 한국일보 사측은 6월 19일 신문 1면에 낸 사고를 통해 “몇몇 전 편집국 간부와 노조가 한국일보를 볼모로 사태의 진실을 왜곡하고 파국으로 내몰려는 무책임한 기도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화를 통한 사태 해결은 물 건너갔다”는 비관론도 인다. 한때 한국일보 퇴직 원로기자들이 나서 중재를 시도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노사는 편집국 인사문제부터 해결하자는 데 공감하고 협상을 벌여왔지만, 양측 사이 중재에 나섰던 이계성 편집국장 직무대행이 자진 사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장재구 회장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노조와 타협할 의사가 없어 중재안을 거론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장 회장의 뜻에 따르는 15명 남짓의 편집국 인원으로는 더는 신문 발행이 힘들다는 점에서 조만간 중대한 국면을 맞이하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일보는 1954년 ‘중도지’를 표방하며 출범해 한국 신문계에서 한 축을 담당했다. 한국일보 출신 한 원로 언론인은 “한국일보는 신문이 어용지와 야당지로 나뉜 구도에서 중도의 입지를 마련했고, 사주가 존재하는 신문이면서도 개방적이고 인간적인 문화를 이어온, 한국 신문계의 소중한 자산”이라면서 한국일보의 오늘을 안타까워했다. 과연 한국일보는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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