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6

2013.05.06

박인비 우승행진 거침없다

7개 대회서 3승 파죽지세…타이틀 전 부문 석권, 5승 달성 도전

  • 주영로 스포츠동아 레저경제부 기자 na1872@donga.com

    입력2013-05-06 11: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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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비 우승행진 거침없다
    ‘새 골프여제’ 박인비(25)의 우승행진이 거침없다. 2월 태국에서 열린 혼다 타일랜드를 시작으로 4월 초 미국 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 이어 노스텍사스 슛아웃에서도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올 시즌 참가한 7개 대회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3승을 쓸어 담았다. 상승세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박인비와 대적할 뚜렷한 경쟁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 스테이시 루이스(미국·세계랭킹 2위), 최나연(26·세계랭킹 3위), 청야니(타이완·세계랭킹 4위)가 추격을 벌이지만 버겁게 느껴진다. 지금은 박인비 전성시대다.

    박인비를 지존으로 이끈 상승 원동력은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정교한 퍼팅에 완벽한 쇼트게임

    첫 번째는 퍼팅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4월 말 기준 박인비의 라운드당 평균 퍼팅 수는 28.57개로 전체 6위다. 이 기록만 놓고 보면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주목할 점은 파 온에 성공했을 때 홀당 퍼팅 수다. 1.707개로 1위다. 372차례 그린에 올렸고 퍼팅 635개로 마무리했다. 2위는 438차례 파 온에 성공해 퍼팅 수 755개를 기록한 루이스(홀당 평균 1.724개)다. 이는 중요한 순간 박인비의 퍼팅이 더 정교해졌음을 의미한다.

    한 치 흐트러짐 없는 박인비의 퍼팅은 컴퓨터 퍼팅으로 통한다. 신기하게도 컴퓨터 퍼팅은 오로지 감각에만 의존한다. 정확하게 계산하고 분석하는 다른 선수와는 다르다. 퍼팅을 잘하게 된 이유가 있다. 정교함이 떨어지는 아이언샷을 보완하려는 차선책이었다.



    어머니 김성자(51) 씨는 “2011년까지 아이언샷이 잘 안 됐다. 단점을 커버하려면 어쩔 수 없이 쇼트게임과 퍼팅을 잘해야 했다”면서 “퍼팅을 잘하려면 연습밖에 없었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퍼팅 연습만 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자신만의 퍼팅 감각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박인비표 컴퓨터 퍼팅은 땀으로 다져진 결과물이다.

    컴퓨터 퍼팅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연이 하나 더 숨어 있다. 박인비는 4년이 다 된 ‘고물 퍼터’를 쓴다. 현재 사용하는 퍼터는 2010년을 끝으로 더는 생산되지 않는 제품이다. 박인비를 위해 퍼터 회사에서 같은 제품을 추가로 만들어 제공했지만 그녀는 감각이 다르다며 사용하지 않는다. 4년이나 된 고물 퍼터를 버릴 수 없는 이유다.

    쇼트게임이 좋아진 점도 상승세를 뒷받침한다. 박인비는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우승 뒤 “지난해 많은 준우승 경험을 통해 100야드 이내 쇼트게임의 중요성을 알았다. 이 부분을 전지훈련 때 중점적으로 연습했고, 이것이 올 시즌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두 번째는 마음의 안정이다. 2008년 LPGA 투어에 데뷔한 박인비는 그해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보였다. 하지만 우승이 너무 빨랐던 것일까. 슬럼프도 일찍 찾아왔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우승이 없었다. 슬럼프를 극복하려고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다. 어머니 김씨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본 것 같다. 멘털 트레이닝도 받고 스윙도 교정하는 등 슬럼프를 극복하려고 별의별 일을 다 했다. 그런데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당시 너무 힘들어 “골프를 그만둘까라는 생각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박인비 우승행진 거침없다
    강해진 멘털, 승부사 기질도 우승 기폭제

    터닝포인트는 2012년 7월 프랑스에서 열린 에비앙 마스터스였다. 4년의 공백을 깨고 마침내 우승에 성공했다. 인내 끝에 얻은 달콤한 수확이었다. 김씨는 “그 우승이 박인비로 하여금 마음의 짐을 덜게 했다. 우승은 마음의 안정을 가져왔고 그러면서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세 번째는 ‘약혼자의 내조’다. 박인비는 지난해 프로골퍼 출신인 남기협(32) 씨와 약혼했다. LPGA 투어 생활을 180도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약혼자는 스윙코치에서부터 친구, 든든한 후원자 구실도 담당한다. 투어 생활은 단조롭고 외롭다. 매주 다른 장소로 이동하며 대회에 출전해야 하는 쳇바퀴 생활이 선수를 지치게 한다. 자칫 향수병에라도 걸리면 깊은 슬럼프에 빠지기도 한다. 지루하던 박인비의 투어 생활은 약혼자 덕분에 활력이 붙었다. 함께 여행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대회 기간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박인비는 지난해 LPGA 투어 상금왕에 오른 뒤 “매주 혼자 대회를 다니는 건 외롭고 힘든 일인데 오빠(약혼자)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투어 생활에 든든한 힘이 된다”며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4월 29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 주 어빙의 라스콜리나스 골프장에서 열린 노스텍사스 슛아웃 최종 4라운드에서 박인비의 강한 멘털과 승부사 기질이 유독 빛났다. 13번 홀까지 박인비의 우승을 장담할 수 없었다. 박인비는 선두 카를로타 시간다(스페인)에 2타 뒤진 2위였다. 14번 홀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시간다가 보기를 기록하며 흔들렸다. 이어 15번 홀에서 더블보기까지 하며 스스로 무너졌다. 승부 추가 단숨에 박인비 쪽으로 기울었다. 17번 홀까지 박빙의 승부가 펼쳐졌다. 박인비가 1타 차 선두로 나섰지만 우승을 확신하기 어려웠다. 마지막 18번 홀(파5) 박인비는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졌다. 강인한 멘털과 배짱이 없으면 어려운 결정이었다. 시간다가 이글을 노리고 2온을 시도했다. 공은 그린 너머 러프에 빠졌다. 그러나 세 번째 샷은 핀 3m 지점에 붙여놨다. 박인비 역시 두 번째 샷으로 그린을 노렸다. 그린 앞에 워터해저드가 있어 작은 실수라도 저질렀다가는 우승을 날릴 위험한 상황이었다. 약간 짧았지만 세 번째 샷을 핀 1.5m에 붙였다. 박인비에게 유리한 상황이었지만 시간다가 3m 거리의 버디퍼트를 성공하며 압박해왔다.

    긴장된 순간이었지만 박인비는 1.5m 거리의 내리막 퍼팅을 성공해 그대로 우승을 확정지었다. 박인비는 계속된 우승을 통해 강심장까지 갖게 됐다. 이번 대회 우승 역시 승부처에서 더 강해지는 멘털이 만들어냈다.

    박인비는 우승 뒤 “인내심을 갖고 경기를 펼쳤다. 마지막 홀에서 나 자신을 믿고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진 게 우승 원동력이 됐다”고 만족해했다. 2년 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다.

    박인비는 2013년 시즌 개막 3개월 만에 벌써 세 번째 우승 트로피를 가슴에 품었다. 타이틀 전 부문 석권까지 바라볼 수 있는 기회다. 세계랭킹 1위 자리는 더욱 굳건해졌다. 4월 30일(한국시간) 발표한 여자골프 세계랭킹에서 10.12점을 획득해 9.13점을 얻은 루이스에 0.99점 앞섰다. 4월 23일 0.34점 차에서 간격을 더 벌렸다. 시즌 상금랭킹에서도 1위를 놓치지 않았다. 노스텍사스 슛아웃 우승으로 상금 19만5000달러(약 2억2000만 원)를 추가했다. 박인비의 시즌 총상금은 84만1068달러로, 2위 루이스(63만6803달러)와 20만 달러 이상 더 벌렸다.

    올해의 선수 경쟁에서는 더욱 앞서갔다. 127점으로 루이스(77점)와 50점 차까지 벌어졌다. 거침없는 상승세에 이제 새로운 기록 달성에 관심이 쏠린다. 한국 선수 역대 한 시즌 최다승이 그것. 한국 여자골퍼가 LPGA 투어에서 기록한 한 시즌 최다승은 박세리(37·KDB산은금융그룹)가 보유하고 있다. 2001년과 2002년 각각 5승씩을 기록했다. 1998년부터 LPGA 투어에서 활약한 박세리는 15시즌 동안 통산 27승을 기록 중이다. 박인비는 올 시즌 7개 대회에 출전해 3승을 올렸다. 지금의 상승세를 유지한다면 5승 달성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LPGA 투어는 앞으로 20개 대회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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