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6

2013.05.06

일본은 왜 인터넷 강국이 못 됐나

우수한 인프라에도 폐쇄적 문화 탓…전방위 진흥 조치 약효 지켜봐야

  • 앤디 이 구글 아태지역 정책분석가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ckkang@keaf.org

    입력2013-05-06 10: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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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세계 제일의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했으면서도 각종 문화적 특징과 기업의 한계, 규제 등에 가로막혀 온라인 산업의 잠재력을 실현하지 못하는 특이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온 세계가 온라인에 빠져든 21세기에도 한참이나 뒤진 일본의 현실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분석한 영문계간지 ‘글로벌아시아(Global Asia)’ 2013년 봄 호의 글을 번역, 게재한다. 필자는 주중 유럽연합(EU)대표부 정무담당 연구관을 지내고 현재는 구글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정책분석가로 일한다.

    일본의 인터넷 속도는 세계 제일 수준이다. 1998년 이전까지 초고속 인터넷이 없었던 일본이지만, 2002년 들어서 인터넷 속도와 비용 면에서 세계를 앞섰다. 2007년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디지털기회지수의 접근성 및 활용 능력 부문에서 한국에 이어 2위에 선정됐다. 일부 선진국은 여전히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불가한 상황에서 일본은 2015년까지 1기가바이트(GB) 속도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일본 인구의 90%에 보급할 계획을 세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2011년 12월 기준 일본의 초고속 모바일 인터넷 보급률은 82.4%에 달했다. 한국, 스웨덴, 핀란드 등에는 뒤지지만 OECD 평균인 54.3%를 크게 웃돈다.

    이렇게 보면 일본은 혁신의 선두주자로 손색없다. 하지만 인프라 활용의 현재 수준을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업, 국민, 정부 모두 인터넷을 잘 활용하지 못한다. 유튜브, 페이스북, 아이튠즈 등 우리의 삶에 혁신을 불러온 인터넷 플랫폼은 일본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초고속 인터넷을 가장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일본인이지만 여전히 옛 방식을 좋아한다. 전 세계가 인터넷의 사회적 영향력을 활용하는 데 열심인 데 반해, 일본만은 인터넷 활용 실적이 여전히 저조한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장점을 활용하지 못하는 일본

    월드와이드웹(www) 창시자인 팀 버너스리가 출시한 웹 인덱스는 세계 최초로 인터넷 사용, 활용, 인터넷의 국가 영향력 등을 다차원적으로 측정하는 도구다. 측정 대상인 61개국 가운데 20위를 차지한 일본은 칠레, 포르투갈, 스페인에 뒤진다. 일본은 업무 효율성 증진을 위한 정부의 정보통신 기술 활용 정도에서 하위그룹에 속한다. 정치 활동을 위한 인터넷 활용도에서도 일본은 뒤처진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간한 ‘2012년 세계 정보기술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네트워크 준비도 부문에서 142개국 가운데 18위에 올랐다. 일본의 기업 및 혁신 환경은 39위에 머물렀다. 세계은행 조사에 따르면, 일본에서 신규 사업을 시작하는 데 23일이 걸리는 데 반해, 한국의 경우 7일, 싱가포르에서는 3일밖에 걸리지 않는다.



    일본은 거대한 인터넷 인프라가 지닌 잠재력을 아직 깨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일본 사회 및 문화, 경제 부문이 세계무대에서 분리, 고립됐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은 인터넷 관련 완제품, 서비스, 콘텐츠 플랫폼 개발에서 세계 최고였다. 현금자동입출금기와 정보 및 음성 전송용 종합정보통신망(ISDN) 표준 같은 최첨단 네트워크 기술은 인터넷이 나오기도 전에 일본에서 먼저 개발한 것이다. 일본의 고급 피처폰과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모바일 인터넷 콘텐츠 플랫폼 등은 애플 아이폰이나 애플리케이션(앱) 스토어보다 10년이나 앞서 출시한 것이다. 하지만 세계 시장을 겨냥한 노력이 부족한 결과, 이제 일본은 우물 안 개구리 신세가 됐다. 2007년 일본 총무성(MIC)이 발표한 일본 무선전화 시장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이러한 일본의 고립 상황을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라고 표현했다.

    추종자 없는 리더인 일본의 이러한 고질적인 패턴은 일본만의 독특한 경쟁력 구도에 바탕을 둔다. 일본에는 여전히 독점적인 일본전신전화주식회사(NTT), 규제기관, 휴대전화 이용자, 제조사로 구성된 안정적인 시장 행위 주체들 간의 상호작용 패턴이 존재한다. 1980년대 중반부터 이어진 이러한 ‘통제하의 경쟁’ 정책 덕에 일본 국내 시장은 최고급화의 길로 들어섰지만 세계 시장에서는 점점 유리됐다. 협력과 교류로 대표되는 인터넷 시대의 도래와 함께, 발전 국가의 망령이 일본의 뒤를 붙잡는 격이 된 것이다.

    급격한 고령화 및 청년 노동력 감소로 생산율 하락 문제에 부닥친 일본으로선 인터넷의 부상이 축복과 다름없다. 인터넷 플랫폼은 사회 전반에 걸쳐 창의성과 협력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정부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절반 이상이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고령화와 이로 인한 기술 기피 인구 증가가 일본의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을 막고 있다.

    올바른 사업방향 설정해야

    >인터넷 활성화를 막는 또 다른 걸림돌은 일본 문화에 깊숙이 자리 잡은 행동 방식이다. 일본인은 자신이 속한 분위기에 스스로를 맞추려 한다. 이미 정해진 경계나 사람들이 없는 사이버 공간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일본인은 익명성과 정보공개가 제한적인 온라인상에서의 교류를 우려한다.

    사생활 침해 및 보안 문제에 대한 우려도 일본의 온라인 산업 부진의 한 요인이다. 노무라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일본 내 인터넷 산업이 차지하는 경제 규모가 자동차제조 산업 규모를 뛰어넘어 국내총생산(GDP)의 3.7%를 차지하는데도, 일본 중소기업의 25%만이 자사 홈페이지를 운영한다. 정부의 노력만 있다면 일본의 인터넷 산업은 5년 안에 10조 엔 가까운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경제발전을 위해 인터넷 산업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가장 좋은 출발점은 사회적으로 팽배한 인터넷 관련 우려를 불식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터넷이 갖는 힘을 사회가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어느 산업보다 진화가 빠른 인터넷 분야에서 특히 중요한 점은 혁신·친화적 정책 개발이다. 너무 엄격한 법적 장치는 혁신을 방해한다. 일본의 개인정보보호법은 기업과 개인 모두에게 비효율적이다. 일본의 저작권보호 정책 또한 창의성 보호와 콘텐츠 보급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일본에는 콘텐츠가 엄청나게 넘쳐나지만 이를 합법적인 온라인 채널을 통해 보급할 수 있는 일본어 콘텐츠는 많지 않다. 낙후한 콘텐츠 산업 구조로 저작권 침해 위험 등 여러 장애 요인이 발생해 신규 음악, 영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일본의 강점은 무엇인가? 바로 아니메(일본 만화영화), 망가(일본 만화), 제이팝(일본 음악) 문화가 일본을 디지털 콘텐츠 강국으로 만들 수 있다. 일본의 데나(DeNA)나 그리(GREE) 같은 소셜게임 회사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 가능하다.

    결국 필요한 것은 글로벌 마인드다.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내수시장 위축에서 벗어날 방법은 세계화를 향한 변화다. 2007년 노무라연구소가 발간한 전략 보고서는 일본이 성숙한 경제 국가로 성장하려면 소규모 첨단기술 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화한 서비스 경제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과거 메이지 유신이나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일본의 경제 기적에 버금갈 만큼의 대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핵심은 세계화에 대한 의지다. 일본에는 활용할 수 있는 선진화된 인프라가 이미 존재한다. 하지만 인터넷을 경제 및 개혁 계획안의 중심에 둬야 한다. 이제는 좀 더 담대하게 세계를 품고, 세계를 연결하는 인터넷을 국가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영어원문은 www.globalasia.org/V8N1_ Spring_2013/When_Will_Japan_Tap_Its_Internet_Potential.html 참조)

    *‘Global Asia’는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국제문제 전문 계간 영문저널이다. ‘21세기 아시아가 열어가는 세계적 변화의 형성 과정에 주목한다‘는 기조 하에 아시아 지역 주요 현안에 관한 각국 전문가와 정책결정자들의 공론장 구실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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