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4

2013.04.22

‘백년해로 홀인원’ 보장합니다

부부 골프

  • 김종업 ‘도 나누는 마을’ 대표 up4983@daum.net

    입력2013-04-22 11: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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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년해로 홀인원’ 보장합니다

    일러스트레이션·오동진

    라운딩할 친구 찾기가 쉬운 사람은 쉽겠지만, 어려운 사람은 하염없이 어렵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그렇다. 아예 내 곁을 떠나는 사람도 많으니, 혹시라도 친구 가운데 병이라도 나면 서로 안절부절못한다. 자주 어울리는 친구가 어느 날 미국 간다, 손자 보러 해외 간다 하면서 장기간 자리를 비우면 의심이 든다. 수술하는 것을 숨기고 핑계 대는 것은 아닌가 해서. 이럴 경우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비상용 친구라도 있으면 어느 정도 안심이 된다. 그 비상용 친구는 바로 아내로, 부부 골프를 말한다.

    2005년 일어난 사건이다. 한 선배가 라운딩을 하다가 앞팀 여성 플레이어를 맞혀버렸다. 드라이버로 힘껏 쳤는데, 이것이 장타가 돼 원 바운드된 공이 앞 팀 여성의 항문 안쪽을 때려버렸다. 응급차에 실려가 병원에서 받은 진단이 전치 12주. 꼬리뼈가 심하게 다쳤다지만 남의 여자 뒤를 볼 수도 없고, 꼼짝없이 치료비와 정신적 보상금까지 합해 5000만 원이란 거금을 물어줬다.

    싸우면서 합의를 본 선배는 “정말 더럽다”고 외치더니, 어느 날 자기 부인을 데리고 다니며 열심히 가르쳤고 이후 동반 라운딩을 다녔다. 목적은 하나. 어떤 놈이 부인 ‘똥꼬’ 한 번 때려줬으면 하는 것이다. “못된 심보라 더 당할 거요” 했지만 부인을 꾸준히 데리고 다녔다. 나중에 하는 말이 “마누라 데리고 다니려고 5000만 원이나 든 셈이지만 감사해. 그전까지는 몰랐는데 함께 다니다 보니 그 이상의 효과가 생겨. 남편 존경하지, 늙어갈수록 정도 쌓이지, 골프 친구 별도로 만들 필요 없지. 장점이 이만저만 아니야” 하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스캔들에 휘말리기 싫거나, 노년에 친구 삼아 마나님과 함께 나가는 골프를 상상해보라. 정말 권장하고 싶은 지구평화운동의 모델이다. 나 같은 경우 아내가 직장이 있기에 주말에 동반 라운딩을 한 번 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내는 라운딩 펑크 비상 대기조



    그래도 3년 전부터 시간만 나면 꼬드겨 연습장에 데려갔다. 한창 로 핸디로 소문 나 있어 코치도 내가 직접 했더니, 사부로 모시려는 마음이 생겨난다고도 했다. 그립 잡는 법부터 스윙 메커니즘을 교육하고 연습시켜 필드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이 1차 목표였고, 점차 스코어에 중독되게 하는 것이 2차 목표였다. 부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남편을 우습게 아는 노년의 여자가 갖는 남편 깔봄 현상을 예방하자는 목적도 있었다. 더해서 필드에 나가 자기는 ‘백순이’를 훨씬 넘어 초보자 수준을 헤매고 있을 때 남편이 로 핸디를 유지하면서 잘 치면 존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들게 하려는 미래 목표도 있었다. 어찌 데리고 다니지 않을 수 있으랴. 잃어버린 위상이 회복되는데.

    그런데 동반 라운딩을 하면 평소 내 실력보다 점수가 너무 높게 나오는 것이 희한했다. 어떤 때는 10 이상 차이가 나는데, 원인을 따져봤더니 골프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잘 못 치는 집사람에게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신경을 끄고 내 식대로 치고 나갔더니 이번에는 집사람이 엄청 짜증을 냈다. 남편 친구들이야 멋있게 날아가고 동반자들도 즐기는데, 자기만 헉헉거리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고생하는 것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이럴 때 까딱 말 잘못했다가는 부부싸움 나기 십상이다. 절대 핀잔을 주지 않는 게 첫째 원칙이다.

    누군들 초보 시절 없었으랴. “나도 옛날에 그랬어. 기죽지 마. 하다 보면 자신만의 감이 찾아져.” 요렇게 다독거리고 100개가 넘는 샷 가운데 하나라도 잘 친 것이 나오면 무지막지하게 격려해 주는 것이 두 번째 원칙이다. 아무리 늦게 시작한 골프라 해도 기를 살려주는 말을 마구 해대는 것이다.

    “이야, 신동인데. 나한테 시집 안 왔으면 박세리를 능가했을 텐데. 아니, 다른 운동은 젬병이어서 골프도 그럴 줄 알았는데, ‘신의 운동’은 아주 잘하네. 초보시절에 그 정도 치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빨라.”

    한 3년 같이 나가 고생하면 다음부터는 골프가 아주 재미있어진다. 혼자 다닐 때는 주말에 친구들과 라운딩이 있으면 눈치가 많이 보였는데, 집사람이 골프를 배우고 난 뒤로는 눈치볼 일이 없어진 것이다. 자기도 골프 친구가 생겨 독립적으로 나갈 일이 생기니까.

    부인이 훨씬 잘 치는 친구가 있다. 같이 라운딩을 하며 두 사람을 유심히 살펴봤더니, 애초에 가진 선입견이 완전히 사라졌다. 부인이 잘 치면 남편을 좀 우습게 보지 않겠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실수하는 남편에게 원 포인트 레슨을 해주면서 기를 살려주는데, 친구도 그것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집에서도 그러느냐고 물은 내가 어리석었다. “밖에서 새는 바가지가 집에서는 안 새겠어? 모든 행동은 여기나 저기나 똑같아.”

    실력이 비슷한 친구 부부와도 라운딩을 했는데, 친구 녀석은 마누라가 안 되면 자기가 답답해 이리저리 코치하고 말도 많았다. 그럴수록 부인은 실력 발휘를 더 못했다. 친구 부인이 짜증 팍팍 내면서 “알·았·다·니·깐” 하며 씩씩거렸다. “자기가 나보다 잘 쳐? 그러니까 밖에서도 잔소리꾼으로 찍히지.” 싸움 일보직전까지 가는 상황이 연출됐던 것이다.

    이크, 저 부부 위험하다 싶어 우스갯소리로 다독거렸다. “어이, 두 사람 실력이 비슷하니, 서서 오줌 누기 내기 해봐, 누가 멀리 가나.” 친구 부인이 대뜸 받아치며 평소의 불만을 털어놓는다. “노터치 플레이하면 내가 이겨요. 저 양반, 신발에 다 묻히지.”

    굿샷 칭찬 한마디 당신은 만점 남편

    골프장 캐디한테 부부 사이인지 애인 사이인지 아는 방법이 있느냐고 묻자, 그냥 웃는다. “첫 홀이 지나기 전에 다 알아요. 말 한마디, 동작 하나에 다 드러나거든요. 그냥 무신경하게 치느냐, 아니면 보살펴주느냐의 차이예요.”

    부부 골프의 묘미가 여기 있다. 무신경과 보살핌의 차이. 남편이든 아내든 무신경하면 남남이고 보살피면 부부다. 애인한테 하는 보살핌을 상상하고 부인에게 해보라. 남자는 보살핌을 무시한다고? 제발, 모르는 소리 그만하라. 말 한마디, 조그마한 격려 하나라도 해주면 감격스러워 한다. 여자는 보살핌을 거부한다고? 한마디 말이라도 품안에 있다고 느껴지면 헌신한다. 나 좀 보살펴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마누라의 잔소리고 신경질이다. 자기를 무시한다고? 본질은 내가 그를 멀리하기 때문이다. 내면의 소리는 언제나 행동으로 표출된다.

    재미있게도 여성은 말 한마디에 묻어 나오는 남편의 속내를 직관으로 감지한다. 아무리 바람피우고 안 그런 척해도 마나님은 다 안다. 말소리에 묻어 나는 파장 감지능력이 남자의 10배는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이라도 보살핌을 던진다는 느낌으로 말하면 그냥 알아챈다.

    일반 유기물질, 흙으로 만든 것이 남자라면 남자의 몸으로 만든 것이 여자다. 신성 그 자체로 신성을 만들었기에 보이지 않는 감각 능력이 훨씬 발달했다. 더 섬세하고 한 단계 진화한 것이 여자인 만큼 이를 잘 알고 다룰 줄 알아야 진정한 가장이다. 유능한 아빠고 훌륭한 남편인 것이다.

    이를 달성하는 수단으로서 골프를 같이 해보라. 코치할 줄 아는 능력도 생기고 같이 라운딩을 해도 섬세하게 다룰 줄 아는 능력이 생긴다. 칭찬의 묘미를 터득해 잘못된 100개 샷보다 한 개의 굿샷을 칭찬할 줄 안다면 당신은 이미 유능한 남편이다.

    더불어 두 사람의 파장이 공명 진동해 늙어갈수록 친구가 될 것이다. 채를 잡지 않는 일반인에게 “무슨 돈으로?” 하는 말을 듣자고 던지는 말이 아니다. 지금 이 칼럼을 읽고 있는 분이라면 마나님과의 동반 골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히 알 것이다.

    부부 골프, 삶의 최고 묘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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