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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이형석의 영화 읽기

우리 부부관계 언제 했더라?

데이비드 프랭클 감독의 ‘호프 스프링즈’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우리 부부관계 언제 했더라?

우리 부부관계 언제 했더라?
“부부는 가족이야, 가족끼리 무슨 ○○야?” “우리 부부는 오빠 동생처럼 지내. 남매끼리 무슨 ○○야?” “이제 집사람과는 형제야, 형제. 와이프가 내 남동생 같다고.”

나이 마흔 넘긴 유부남들의 술자리 안줏거리는 비슷하다. 요즘 정세와 스포츠뉴스, 요새 떠돈다는 각종 ‘유출 동영상’ 등 세간 화제를 죽 한 번 훑고는 정해놓은 것처럼 빠져드는 내용이란 것이 대부분 전세 혹은 대출받아 산 집값 이야기, 비자금 탈탈 털어 ‘올인’한 주식 이야기, 애들 학비 내느라 등골 빠진다는 하소연, 기러기 아빠 생활의 장단점(직장인 서넛 모이면 꼭 한 명쯤은 있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주 가끔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긴 한다. 그때 ‘관용어’처럼 뒤따르는 표현이 위와 같다. ‘○○’ 안에 무슨 단어가 들어갈지는 직장에 다니는 20대 이상 남성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술자리에서 농담 섞인 표현만 종합하자면 대한민국 유부남에게 아내란 연인에서 이성 친구를 거쳐 가족이 되고, 남매처럼 지내다 결국 동성 친구 혹은 형제에 이르는 ‘희비극’ 과정 속 동반자다.

삶의 피곤함 탓인지, 사회 환경 때문인지, 인간 본연의 생리적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결혼한 지 오래될수록 상대를 ‘무성’(無性) 존재처럼 느끼는 부부가 많은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대한민국 남성은 이를 대부분 숙명쯤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술자리에서 아내를 더는 섹스 상대로 생각지 않는다는 식의 위와 같은 이야기를 대놓고 꺼내기도 한다. 자랑인지 씁쓸함의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섹스리스 부부클리닉 무비



그렇다면 유부녀들은 어떨까. 육아와 인테리어 등 여성 전문 인터넷 동호회 사이트에 한 회원이 올린 글이다.

“요즘, 남편이 너무 꼴 보기 싫습니다. 똑같은 얼굴도 꾀죄죄하게 보이고, 똑같은 말투도 (이제는) 듣기 싫고. 육아에 지쳐서 그런가, 한 몇 주 전부터 제가 이상해지기 시작했어요. 남편이 회사에서 전화하면 받기 싫어 더는 하지 말라고 해요. 님들은 남편 꼴 보기 싫을 때 왜 꼴 보기 싫으세요?”

댓글은 더 가관이다. “술 먹고 늦게 들어올 때 꼴 보기 싫다” “술 먹고 들어와서 자꾸 말을 걸 때 한 대 패주고 싶다”는 그저 애교에 ‘닭살 커플’ 수준이다.

“매일 일찍 오는 게 더 싫다” “그냥 남편이 말 좀 안 했으면 좋겠다” “뭘 해도 꼴 보기 싫다” “그냥 매일 밉다” “남편 입에 밥알 들어가는 것도 아깝다” “남편이 숨 쉬는 것도 짜증난다”는 댓글이 이어진다. 마지막 댓글은 거의 ‘확인사살’이다.

“다들 똑같네요.”

메릴 스트리프와 토미 리 존스가 주연을 맡은 영화 ‘호프 스프링즈’(감독 데이비드 프랭클)는 아내의 밤 화장이 두려운 남편과 뭘 해도 남편이 싫은 아내를 위한 ‘부부 클리닉 무비’다. 은퇴기 고령 부부가 주인공이지만, 젊고 늙고를 떠나 행복하게 살고 싶은 부부라면 손 꼭 잡고 볼 만하다.

우리가 흔히 봐온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얼굴엔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피부도 생기를 잃어 늘어진 50대 여인 케이(메릴 스트리프 분). 어느 날 밤 모처럼 예쁜 속옷을 골라 입고 벌써 몇 년째 ‘각방살이’를 하는 남편 침실 문을 용기 내 두드린다. 남편 아놀드(토미 리 존스 분)가 무심한 표정으로 “왜, 무슨 일 있어?”라고 묻는다. 한참을 생뚱맞은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던 남편은 이내 알았다는 듯 쩔쩔매며 “더워서. 오늘 몸도 안 좋고. 낮에 먹은 게 체했는지…”라고 둘러댄다. 그리고 마침표를 찍는다. “그냥 살던 대로 살자”고.

아놀드와 케이는 결혼생활 30년차에 접어든 중산층 부부다. 회계사 남편이 여전히 현역에 몸담아 부족할 것 없는 살림에 자식들이 다 출가해 안정되고 여유로운 노년. 하지만 부부는 서로가 그저 오래된 습관 같은 존재일 뿐이다. 각방을 쓴 지도 오래됐고, 서로를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손길도 없다.

‘위기’에 더 예민한 쪽은 아내다. ‘섹스리스(sexless)’ 상태를 극복해보고자 서점에서 행복한 성생활을 다룬 책을 남몰래 찾아보기도 하고, 인터넷 사이트를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부부관계에 관한 조언을 검색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닥터 펠드(스티브 카렐 분)가 운영하는 부부클리닉을 찾아내고 참여하기로 한다. 그러나 이는 아내에겐 절박하지만 남편에겐 긁어 부스럼 만드는, 귀찮기 짝이 없는 일일 뿐. 게다가 일주일 프로그램 비용이 수천 달러라니! 구두쇠에 깐깐하고 냉소적인 아놀드는 반대하지만, 결국 아내 고집에 못 이겨 작은 바닷가 마을 ‘호프 스프링즈’행 비행기에 오른다.

의사를 마주하고 상담실 소파에 나란히 앉은 부부. 양끝에 엉덩이를 걸친 거리만큼이나 마음까지 멀다. 아놀드는 “상담료가 비싸다” “정신과 의사는 날강도다” 등 끊임없이 불만과 불평을 늘어놓고, 케이는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남편이 밉기만 하다. 과연 상담은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의사 질문이 ‘돌직구’다.

우리 부부관계 언제 했더라?
재치 있게 풀어낸 부부생활

“각방 생활은 언제부터였습니까?” “마지막 섹스는 몇 년 전이었죠?” “그때 체위와 기분은 어땠습니까?” “당신의 성적 환상은 무엇입니까?”

과제도 있다. 첫날은 부부가 서로 안고 자기. 그러나 영 어색하다. 옆에 누가 누운 상황 자체가 불편한 것이다. 큰맘 먹고 한 팔을 두르면 다른 팔은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 시선은 어디로 향해야 할지, 다리는 어디쯤 놔야 할지 곤혹스럽다. 이 첫 과제부터 부부 상담기는 험난하고 힘겹다. 의사 질문은 두 부부의 가슴을 송곳처럼 찌르고, 과제 수위도 점점 높아진다. 부부가 정작 마주하기 어려웠던 것은 단지 섹스 라이프만이 아니라, 서로에게 주고받은 상처였는지도 모른다.

‘호프 스프링즈’는 섹스를 화두로 부부생활의 다양한 면모를 깊이 있고 재치 있게 보여주는 영화다. 무엇보다 세 배우의 연기가 빛난다. 스트리프야 말할 것도 없고, 불평을 입에 달고 사는 남편 역의 존스는 깐깐한 노년 사내지만 ‘귀요미’ 같은 유머러스한 모습도 보여준다. 무표정하게 돌직구를 던지는 의사 역의 카렐 연기도 좋다.



주간동아 881호 (p68~69)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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