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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 여걸’ 열전

총각 → 진짜 남자 → 행복한 남자 만들기

우렁이각시

총각 → 진짜 남자 → 행복한 남자 만들기

총각 → 진짜 남자 → 행복한 남자 만들기

자료 제공·훈민출판사 ‘우렁각시’

천생연분이란 무엇일까. 옛사람보다 훨씬 쉽게 사랑에 빠지고 쉽게 헤어지는 현대인에겐 어쩌면 천생연분이란 단어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을 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한 사람만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한 사람만을 향한 지속적인 열정’을 진심으로 갈망하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워한다.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전통사회와 달리 자유롭게 연애하고 헤어지는 현대인의 사랑을 ‘플라스틱 러브(plastic love)’라고 불렀다. 여기서 플라스틱은 ‘조형 가능한, 변형 가능한, 언제든 맺었다 풀 수 있는’ 정도의 의미다. 무한한 선택지를 갖게 된 현대인은 얼마나 행복해졌을까. 사람들은 첫눈에 반해 평생 이어지는 완벽한 사랑을 꿈꾸기도 하고,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완벽한 상대와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 속 천생연분이란 그렇게 ‘겉보기에 완벽한 커플’보다는 아무도 모르는 두 사람만의 이야기를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지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아닐까. 진정한 천생연분은 결혼식날 밝혀지는 게 아니라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처럼 노년기에 증명되는 것 같다. 그렇게 본다면 천생연분 요건이란 ‘서로를 위해 얼마나 기다려줄 수 있는가’로 결정되는 게 아닐까. 그 기다림의 의미를 아름답게 증명하는 이야기가 바로 ‘우렁이각시’다. ‘우렁이각시’에는 대단한 영웅이나 비범한 위인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사랑에 빠진 모든 연인이 한때 지향하던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이 담겨 있다.

땅에서 들려오는 여인 목소리

조실부모하고 혼자 살아가는 외로운 총각이 있었다. 그는 밭에서 곡괭이질을 하면서 시름에 차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 어떻게 찾어야 하느냐? 내가 이 밭을 이뤄서 농사를 져 가지고 누구허고 먹고살 것인고?” 그러자 놀랍게도 땅속에서 어여쁜 여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허고 먹지, 누구허고 먹어?”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또 한 번 혼잣말을 해봤다. “이 땅 이뤄서 누구허고 먹고 살 것인고?” 또다시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허고 먹지, 누구허고 먹어?”

그리하여 총각은 덧없기 그지없던 농사일에 힘을 내기 시작했다. 그녀 목소리를 들으려고 더 열심히 일한 것이다. “오늘은 내가 안 가르쳐주고 앞으로 한 사흘간 있어야 자세히 가르쳐줄 테니께 꾹 참고 일이나 허시오.” 그녀 목소리는 성급하게 자신을 찾지 말라고,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말한다.



사흘 후 그가 밭을 갈던 흙 속에서 웬 우렁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총각은 괴이하게 여기며 이 우렁이를 집에 있는 물항아리 안에 고이 모셔놓았다. 총각이 힘든 농사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누군가 맛깔스러운 밥상을 차려놓았다. ‘누굴까? 누가 나를 위해 이렇게 따스한 밥상을 차려놓았을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변함없이 정성스레 차린 밥상이 자신을 기다리자, 총각은 자기 집을 몰래 엿보기로 했다. 숨어서 지켜보자니, 물항아리에서 어여쁜 색시가 나와 솥을 싹싹 닦고 밥을 앉히더니, 밥이 다 되자 상을 차린 후 물항아리 속으로 텀벙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다음 날 총각은 밥을 다 하고 물항아리 속으로 들어가려는 색시 손목을 꽉 붙들고는 같이 살자고 조른다. 그런데 우렁이각시는 또 한 번 기다리라고 한다. “사흘만 기다리면 당신이 안 붙잡아도 당신과 부부지간이 될 것인게 그러지 말고 일이나 부지런히 허시오.” 사흘 후 두 사람은 드디어 부부 연을 맺고 행복하게 살게 된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지만, 일단 여기까지 ‘우렁이각시’가 주는 첫 번째 가르침은 바로 ‘기다림의 소중함’이다. 진짜 소중한 것을 얻으려면 호기심을 참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면서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

우렁이각시만큼 뛰어난 남편

총각 → 진짜 남자 → 행복한 남자 만들기

자료 제공·훈민출판사 ‘우렁각시’

여성에게도 기다림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조그마한 우렁이가 진짜 여자로 거듭나려면, 웅녀가 마늘과 쑥만 먹고 동굴에서 수련한 것 같은 기다림이 필요했던 것이다.

두 번째 가르침, 그것은 바로 아름다운 행동에 이름표를 붙이지 않는 겸허함이다. 현대인은 누군가 알 수 없는 사람이 선행을 했을 때 “우렁이각시가 다녀갔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몰래 한 선행은 옛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영웅적인 주인공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다. 자기 성과를 과시하지 않고, 그저 누군가가 그런 멋진 행동을 ‘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세 번째 가르침은 두 사람이 결혼한 이후에 나타난다. 그것은 사랑하는 존재를 지키려면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총각이 절세미인을 얻어 행복하게 산다는 소문이 퍼지자 고을 원님이 그녀를 탐했다. 아름다운 연인이나 아내를 권력자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하는 이야기는 ‘춘향전’뿐 아니라 ‘도미설화’ 등 다양한 이야기에서 발견된다. “하, 조놈에게는 너무 과하다. 저놈을 뺏어다가 내 소첩으로 삼어야겄다.” 권력을 휘두르는 원님은 남편을 불러 “네 아내를 내게 주라”고 요구하고, 힘없는 남편은 이대로 아내를 빼앗기는 게 아닐까 걱정돼 앓아눕는다. 그러자 아내가 묘책을 내놓는다. “안 준다고 허쇼. 안 준다고 허쇼. 그러면 원님이 장기를 두자고 헐 것이오.” 남편은 하소연한다. “하, 이 사람아, 내가 장기를 못 두는디 장기를 두면 자네를 뺏길 것 아닌가.” 아내는 모든 계책에 대비한다. “내가 시킨 대로 허시오. 장기를 두는데 물론 당신 보고 먼저 두라고 헐 것이오. 아, 그럼 ‘어른께서 먼저 두셔야죠’하고 그 원이 한 수를 딱 둔 다음에 쪼그마한 쉬파리가 하나 올 것이오. 와서 그놈이 딱 앉았다가 요리 폴짝 날으면 그 파리 앉은 데만 놓으시오.” 남편은 아내가 시키는 대로 장기를 뒀고, 우렁이각시 화신인 쉬파리 도움으로 원님을 보기 좋게 이겨버린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원님은 이번에는 또 다른 내기를 청했다. 말 한 필을 줄 테니, 그 말을 타고 큰 강을 한달음에 뛰어넘는 데 성공하면 우렁이각시를 빼앗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우렁이각시는 또 다른 묘책을 내놓았다. 원님이 주는 말이 아니라, 비루먹은 당나귀 같은 못생긴 말을 골라 뛰라는 것이었다. 그 병든 말은 물론 아내 영혼이 깃든 말이었다. 그렇게 남편이 원님을 보기 좋게 이기니, 원님은 할 수 없이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니 마누래는 하늘에서 낸 마누래다. 할 수 있느냐, 그대로 잘살어라.”

그렇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가난한 총각은 아내를 지키려고 강한 남자가 되고, 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된다. ‘우렁이각시’는 한 여성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 승리한 이야기를 그렸지만, 사랑하는 이를 지키려고 자신의 성격도, 운명도, 능력도 더 멋지게 바꾼 한 남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료 제공·훈민출판사 ‘우렁각시’



주간동아 2013.03.04 877호 (p60~61)

  • 정여울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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