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5

2013.02.18

묻지 마! 은발의 하숙생

대학가 하숙촌에 어르신 부쩍 늘어…같이 밥 먹어도 서로 무관심이 불문율

  • 이시내 인턴기자 숙명여대 국문학과 4학년 198012o8@naver.com

    입력2013-02-18 10: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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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묻지 마! 은발의 하숙생

    서울 숙명여대 근처 효창공원에 모인 노인들.

    우리는 친하다. 명절도 같이 보냈고 저녁밥도 같이 먹는다. 나이도 60대 후반으로 서로 비슷하다. 하지만 정확한 나이는 모른다. 이름도 모른다. 하는 일도, 고향도 모른다. 밖에서 술 한 잔 기울인 적도 없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 내가 사는 이곳의 암묵적 규칙이다. 나를 부르는 소리는 있지만 내 이름이 없는 이곳, 여기는 하숙집이다.

    1월 28일 숙명여대 근처 하숙집에서 만난 진원(가명·68·무직) 씨의 방 풍경은 삭막했다. 책장에는 책 대신 시리얼 상자와 ‘햇반’이 빼곡히 자리했다. 하숙집은 주말에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일요일이면 이것으로 끼니를 때워야 한다. 침대에 누우면 천장이 보이지 않는다. 6.6㎡ 남짓한 방엔 침대 위에 걸린 철봉이 옷장을 대신한다. 얼마 안 되는 옷가지 때문에 안 그래도 좁은 방이 더 좁아 보인다. 하숙집 생활이 어떠냐고 묻자 “이걸 보고도 모르느냐”며 허탈하다는 듯 웃었다. 그에게 대학가 하숙집에 들어오기까지의 사연을 물었다. 명문대 졸업생인 그는 간간히 영어 단어를 사용했다.

    나이·이름·하는 일 몰라

    “하숙한 지 4년 정도 됐다. 원래 아들 내외와 서울에서 살았다. 하지만 손녀가 자라면서 방이 부족하더라. 내가 나가는 게 속편할 것 같았다. 아무 말도 않고 방을 구해서 나왔다. 전셋집은 1억~2억 원으로 너무 비싸 하숙을 택했다. 하숙비 45만 원은 아들 내외가 보탠다. 한때는 잘나갔다. 아버지는 고향에서 제일가는 부자였다. 7남매 모두 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풍족했다. 누님은 음대를 다녔고 동생은 의대 나와서 지금 의사로 활동한다. 장남인 나는 명문대 공대를 나왔다. 졸업하고 나서는 대기업 건설본부장으로 각종 트러블을 해결했다. 가장 좋았던 시절이다. 스카우트 제의도 여러 번 받았다. 친구 사이에서도 성공했다고 소문났다. 출장 및 연수차 영국 런던에서 6개월, 일본에서 1년을 보내기도 했다. 사업 때문에 만난 일본인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일본어도 잘했다. 지금은 안 써서 다 까먹었지만. 이런 신세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집 10채쯤은 그냥 살 수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상가도 내보고 빌딩도 지어봤다. 여러 번 사기를 당하고, 여러 번 실패했다. 나처럼 고지식한 사람에게 사업은 맞지 않는다. 결국 빈털터리가 됐다. 지금은 친구고 뭐고 사람을 잘 만나지 않는다. 전화 오면 끊어버린다. 여기서 사업을 구상하면서 이것저것 연구도 한다. 오전에는 파트타임 잡을 하고 있다. 부동산과 관련해 어드바이스해주는 일이다. 같이 하숙하는 사람들하고는 친하다. 하지만 아무리 친해도 서로 이름을 묻지 않는다. 다들 사정이 있어 여기 온 걸 빤히 아니깐. 그게 이곳의 예의다.”



    서울 용산구 청파동 근처에서 하숙집을 10년간 운영한 김모(50) 씨는 “10년 전에도 하숙하는 직장인, 어르신이 있었지만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어르신이 많아야 한두 명이고 대부분 학생이었다. 지금은 하숙생 13명 가운데 7명이 직장인이고, 그중 3명이 60대 넘는 어르신”이라고 밝혔다.

    서울 남영역 근처 후미진 골목에 자리한 하숙집. 여기에 투숙하는 5명 모두 50, 60대다. 그 가운데 최고령자는 서울 여의도 아파트 경비원인 김영광(가명·70) 씨. 그는 이곳에서 10년간 살았다. 이 하숙집 바로 옆에 경로당이 있지만, 김씨는 10년 동안 얼굴을 비친 적이 한 번도 없다. 김씨 방 건너편에서 4년을 함께 산 하숙집 주인 B씨는 “월세 40만 원을 한 번도 밀린 적 없고, 특별히 불편한 점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김씨에 대해 “이틀에 한 번꼴로 일하러 나간다. 오전 5시 30분에 나갔다가 다음 날 오전 6시에 들어오기 때문에 쉬는 날에는 잠만 잔다. 밥 먹을 때 아니면 마주칠 일이 없다”면서 “김씨 아들이 서울에 사는 것으로 알지만 사정을 대강 알아 자세한 건 묻지 않았다”고 전했다.

    5년 동안 하숙집을 청소한 김영자(67·청소노동자) 씨도 “오랫동안 하숙집을 청소했지만 이름을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하숙집에는 늘 양복 입고 다니는 어르신도 한 분 계신다. 한 3, 4년 사신 것 같다. 만나면 인사하지만 이름은 모른다. 청소할 때도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 마주칠 일도 많지 않다”고 전했다.

    가정 파탄 나 하숙집 전전

    진원 씨와 같은 하숙집에서 사는 60대 남성은 “살기가 팍팍하니까 여기서는 자기 이름도 얘기하지 않는다. 아무리 친해도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는다. 자기 밥만 먹고 들어가면 되는 거다. 이게 이곳 법칙”이라고 말했다.

    원룸도 있고 고시원도 있지만 이들이 택한 곳은 하숙집이다. 왜일까. 먼저 경제적 이유가 거론된다. 1991년부터 대학가에서 하숙하는 김재호(가명·46·씨티은행) 씨는 “외환위기 이후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 늘었는데 사업이 잘 안 되고 가정도 파탄 나 하숙집을 전전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예전 서울 신촌에서 하숙할 때와 지금은 많이 다르다. 그때는 다 젊은 친구였고 서로 친했다. 당시만 해도 하숙집에는 어르신이 없었다. 외환위기 때도 하숙하는 어르신을 본 적 없다. 노인 하숙생이 늘어난 것은 2003, 2004년부터다.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눈에 띌 정도로 늘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정서적 원인을 거론한다. 하숙집을 8년간 운영한 박모(50) 씨는 “60대 어르신 가운데 이혼하고 하숙하는 돌싱(돌아온 싱글)이 많다”면서 “20년째 하숙하는 어르신이 ‘혼자 살면 적적하다’고 말하더라. 하숙집에 살면 서로 얘기는 안 해도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고 그림자라도 볼 수 있으니까. TV 소리도 들리고 문 여닫는 소리 하나에 위안을 얻는 거다. 집에 왔는데 아무도 없으면 쓸쓸하지 않나. 남자는 여자와 달라서 나이 먹으면 외롭다”고 말했다.

    묻지 마! 은발의 하숙생

    노인 하숙생이 밀집한 서울 청파동 하숙촌.

    김영란 숙명여대 교수(사회심리학과)는 “남자는 은퇴하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하숙집은 식사 문제가 해결되니까, 쪽방촌 노인하고 비교하면 그나마 돈 있는 노인이 가는 것 아니겠나”라고 분석했다. 김종복(50) 청파동주민센터 주민생활지원팀장은 “노인 하숙생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정확한 수는 파악되지 않는다”면서 “경제적 이유보다 정서적 이유가 큰 것 같다”고 말했다.

    밥 짓는 냄새가 풍겨오는 오후 6시. 하숙집 저녁식사는 주인집 부엌에서 이뤄진다. 식탁 너머에 있는 방 안쪽은 가정집이다. 거실을 사이에 두고 저쪽에서는 웃음꽃이 피어나지만, 20대 대학생부터 60대 할아버지가 있는 이쪽은 조용하다. 여기서 인사성 밝은 사람은 별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수년째 하숙한다는 60대 남성은 “요즘 애들은 마주치면 인사도 안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2060세대 말 없는 동거

    노인 하숙생은 늘어가지만 대학생과의 동거는 순탄치 않아 보인다. 젊은이에게 따돌림 아닌 따돌림을 당해 하숙집에서 나간 사례도 있다. 13년간 하숙집을 운영한 이영숙 씨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 하숙집에 60대 어르신이 세 분 있었지만 지금은 다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날 젊은 친구들이 나에게 와서 ‘제가 나갈 때가 됐나 봐요’라고 하더라.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어르신들이 밥 먹을 때 자꾸 말을 걸어 귀찮다고 대답하더라. 젊은이들은 그런 거 싫어한다. 결국 눈치 봐서 다 나갔다”고 말했다.

    남자 전용 하숙집을 수년간 운영한 D씨도 “하숙집 분위기를 잡아주는 건 대체로 30, 40대다. 50, 60대 어르신은 방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6년간 살았는데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고 말했다.

    노인 하숙생에 대한 젊은이의 생각은 어떨까. 하숙한 지 1년이 된 대학 3학년 신다혜(24) 씨는 “차라리 어르신이 계시는 게 애들만 있는 것보다 낫다. 어르신들은 조용한 반면, 애들은 시끄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말을 걸면 싫을 것 같다. 귀찮다”고도 했다. 하숙 생활 4개월째인 회사원 김현(29) 씨도 “처음 하숙하는 어르신을 봤을 때 깜짝 놀랐다. 지금은 적응됐다. 다들 말 안 하고 자기 할 일만 하니까 불편한 점은 없다”고 말했다.

    3년 동안 대학가 근처 하숙집을 전전해온 60대 남성은 “남자애들은 대체로 인사성이 밝고 싹싹하지만 여자애들은 폐쇄적”이라면서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나. 대학생들이 사는 곳에서 우리 같은 어른은 예의나 인사 같은 걸 신경 쓰면 안 된다”고 말했다.

    2060세대 동거는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규칙이 전제돼야만 지속될 수 있었다. 주거난이라는 공통 문제로 연결된 연대는 허약했다.

    숙명여대 근처 하숙촌이 유난히 고령화 특징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먼저 교통이 편리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하숙집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숙대는 서울 지하철 1, 4, 6호선이 지나가는 곳이고 서울역도 가깝다. 직장인이든 구직자든 교통편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원이 주거지 결정 요인 가운데 하나라는 분석도 있다. 김영란 교수는 “다른 대학가 하숙촌과 달리 숙대 근처에는 효창공원이 있다. 공원 정문, 후문 쪽으로는 대한노인회 같은 각종 시설도 자리한다. 거기서 다른 어르신도 만나고, 무료로 시설도 이용한다. 그러니 숙대 근처 하숙집을 선호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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