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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일류기업 여팀장 열전 ③

“미지의 땅 ‘항공간호’ 도전하는 사람 몫이죠”

박일미 아시아나항공 의료서비스팀장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미지의 땅 ‘항공간호’ 도전하는 사람 몫이죠”

“미지의 땅 ‘항공간호’ 도전하는 사람 몫이죠”
“박 팀장님은 사우들 건강에 대해 타협할 줄 모릅니다. 사우들 건강 증진에 힘을 쏟는 어머니 같은 분입니다.”

윤태준 아시아나항공 인사팀 과장은 이 회사 박일미(43) 의료서비스팀장(부장)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항공법에 따르면 조종사는 신체검사를 받아야 할 의무가 있는데, 아시아나항공은 1992년 교통부로부터 항공기승무원 신체검사 전문의료기관 인가를 받았다. 현재 아시아나항공 의료서비스팀은 전 직원은 물론, 승객 건강 증진에도 힘쓰지만 주 업무는 안전한 비행을 책임지는 조종사의 건강을 관리하는 일이다.

조종사 1300여 명 건강 관리

박 팀장은 연세대 간호학과 89학번으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센터에서 1년 동안 근무하다 1993년 당시로서는 신생기업인 아시아나항공(1988년 설립)에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간호사로서 임상(병원)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목표를 변경한 셈이다.

“대학 4학년생 가운데 성적이 10% 안에 드는 학생을 대상으로 교수님, 친구들이 투표해서 선우(善友)상을 줘요. 제가 운이 좋아 11회 선우상을 수상했는데 우연히 1회 선우상 수상자인 아시아나항공 의료서비스팀 팀장을 만났고, 그분의 러브콜을 받고 왔어요. 병원에서 수간호사님을 보며 많이 배우던 터라 떠나기가 쉽지 않았죠. 하지만 항공간호라는 미개척 분야에서 일해보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일은 만만치 않았다. 첫날부터 3개월 동안 항공간호에 대한 해외 논문을 읽고 리포트를 내야 했다. 해야 할 일도 많았다. 이곳은 1년 365일 계획표가 짜여져 있었다. 지금도 매년 전 직원에 대한 신체검사 7000여 건, 직원들 개별 진료 1만5000여 건, 검사결과가 좋지 않은 직원에 대한 의료지원(치료 동행 등) 2000여 건을 진행하고, 직원교육도 연 500여 시간 실시한다.

“1년에 조종사 500여 명(현 1300여 명)을 건강 관리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그분들 몸이 불편하면 의료서비스팀 간호사가 병원 치료에 동행하는데, 직원 서비스가 좋은 것 같지만 감시자이기 때문에 관계가 불편할 수 있거든요. 신참 때 하루 두세 번 조종사 한 분씩 모시고 김포공항 부근 본사에서 시내 병원까지 가는 일이 버거웠죠. 외국인 조종사를 모시고 가면 부인으로 오해하는 분들도 계셨고요.”

박 팀장은 건축학도를 지원했지만 간호 학도가 됐을 때처럼 주어진 현실을 불평하지 않고 끝까지 해보기로 결심했다. 과거나 현재를 한탄하다 보면 미래까지 저당 잡힐 것 같아서다. 이런 태도 덕에 화장실에서 쓰러져 뇌사 위험성이 있던 본사 직원을 성공적으로 응급 처치해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직장생활에서의 위기는 의료서비스팀 팀장이 되면서 처음 찾아왔다. 빠르다면 빠른 37세에 간호사 11명, 의사 1명, 임상병리사 2명, 방사선사 1명, 일반직 1명으로 구성된 팀에서 장을 맡게 되자 육아휴직 없이 두 아들을 키울 때도 느끼지 못했던 불안감이 엄습했다.

“경쟁사는 팀장이 간호사가 아닌 의사예요. 하지만 우리는 간호사인 전임 팀장님이 업무를 두루 잘하셔서 저에게 이런 자리가 주어졌죠. 혹여 제가 간호사들에게 누가 될까 염려됐어요. 고민 끝에 팀원들에게 ‘예전에 그랬듯이 맏언니로서 구실을 다하면서 현장형 리더가 되겠다’고 했죠. 팀원 행동을 개선하려고 혼내기보다 저 스스로가 모범이 되려고 했어요. 아이라면 모를까, 성인을 일일이 가르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거든요.”

하지만 2, 3년 동안 신입사원 4명이 퇴사하자 자신의 리더십에 회의가 밀려왔다. 신입직원들을 교육해 현장에 투입하려는 순간 퇴사하니 회사로서도 손해가 많았다. 인사팀에서 퇴사자를 면접해본 결과 대부분 학업을 이유로 직장을 떠났다.

“저로서는 그 친구들 의견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한 친구가 사직하면서 ‘사직하겠다는 사람에게도 변함없이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격려해주셔서 감사하다’며 편지를 보내왔더라고요. 그 편지가 큰 위로가 됐죠. 지금도 그런 평가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려고 수첩에 그 편지를 끼워두고 있어요.”

비행기 안 모기 처치까지 해결

박 팀장은 다양한 업무에 직면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비행기 안에 있는 모기를 없애려고 인체에 무해하고 무향, 무미, 무취에 항공기계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 살충제를 찾는 한편,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났을 당시에는 직원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현지에 생수를 공급하는 일을 지원했다. 신종인플루엔자(신종플루)가 유행했을 때는 의견을 개진해 정부 규제를 완화하기도 했다.

“당시 정부는 탑승자 가운데 신종플루 감염자가 있으면 그 비행기 승무원 모두를 9일간 비행에서 제외시켰어요. 그런데 항공기 환기시스템과 관련한 보고서를 찾아보니 ‘비행기 안에 전염병 감염자가 있다 해도 그 병에 감염될 확률은 극히 적다’고 돼 있더라고요. 비행기가 상공에 있을 때는 외부 온도가 극히 낮고 건조한, 그야말로 무균상태예요. 외부 공기가 비행기 안으로 들어와 습도와 온도가 올라간다 해도 청정한 공기이고, 그 공기마저 20, 30분마다 새로 들어오거든요. 공기도 비행기 좌석의 각 열을 중심으로 돌다가 배출되고요. 실제로 어떤 승무원도 신종플루 감염자와 접촉했다는 이유로 감염된 일은 없었습니다.”

이처럼 똑 부러지게 사는 그의 뒤에는 든든한 아군 어머니가 있었다. 두 손자를 봐줄 사람이 없자 부산에 사는 팔순 노모가 주중에 서울에 살다 주말에 귀가하기를 자처한 것이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10년. 부모의 헌신을 떠올리며 박 팀장은 눈물을 보였다. 대학원 석사를 마치고 ‘항공간호’라는 책을 공저한 배경에도 어머니가 있었다.

“둘째가 태어난 지 6개월이 됐을 때 금호그룹 산학협동 과정 MBA를 들었어요. 수업 끝나고 집에 저녁 10시 반 정도에야 들어갔는데, 엄마 사랑이 그리웠던 아이들이 저한테 오면 어머니가 ‘엄마 공부해야 하니까 할머니랑 들어가자’면서 방으로 아이들을 데려가시더라고요. 이런 어머니 때문에라도 열심히 했고 38명 중 2등을 했어요. 어머니는 교사인 아버지 월급으로 3남3녀를 모두 대학에 보낸 억척스러운 분이거든요. 수두에 걸린 저를 학교에 보내면서까지 12년 개근을 하도록 가르치신 분이니 짐작이 가죠?(웃음)”

이제는 초등학생인 두 아이가 할머니 없이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상황. 오전 5시 반에 일어나 아침밥 차려놓고 출근하는 엄마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인터뷰를 진행한 날에도 감기 때문에 입원한 둘째 아이는 간병인에게 맡겨둔 상태였다. 박 팀장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지만 죄책감은 갖지 않으려고 해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되니까요.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받았다면 그걸 갚아야 한다는데, 저도 그 빚 갚으며 살고 싶어요. 매일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 안에 영혼을 담고 싶고요. 노력하면 언젠가는 시 구절처럼 ‘머리에는 지혜가, 이마에는 예절이, 눈에는 슬기가, 입에는 친절이, 가슴에는 사랑이, 손에는 노동이, 발에는 질서가 있는’ 간호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주간동아 2013.01.28 873호 (p38~39)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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