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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년간 박근혜 당선인 뒷모습과 테러 흔적만 찍었다”

‘춤추는 사진가’ 강영호

  •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1년간 박근혜 당선인 뒷모습과 테러 흔적만 찍었다”

“1년간 박근혜 당선인 뒷모습과 테러 흔적만 찍었다”
사진작가 강영호의 인터넷 블로그를 들여다보면 묘하게 대비되는 인물 사진을 볼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사진이다. 이 대통령은 집무실이나 외부 행사, 시민을 만나는 자리 어디서든 늘 사진 중앙을 차지한다. 혹시나 ‘나라님’이 사진 중심자리에서 한 치라도 벗어나는 ‘불경’을 저지를까 봐 노심초사하는 사진작가의 안쓰러움이 전해질 정도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 사진은 다르다. 대통령이 뒤통수와 뒷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심지어 화면에서 포커스 아웃(focus out) 처리되거나 팔만 나오는가 하면, 누가 주인공인지 모를 정도로 중심에서 멀찍이 벗어나 구경꾼처럼 서 있는 풍경도 연출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친근감과 함께 자연스러운 미소를 짓게 만든다. 그에 대한 호기심마저 생긴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이 일부러 표현한 것이 아니라 미국 사진작가들이 그렇게 찍은 것이다. 이처럼 대비되는 두 인물 사진을 보여준 뒤 강영호 작가는 블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정치인도 충분히 예술의 대상

“우리나라 대통령 사진이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인증샷 기능을 한다면, 미국 대통령 사진은 스토리텔링 이미지를 갖는다. 미국 대통령 사진은 뒷모습을 더 부각시킴으로써 그가 바라보는 대상과 그를 바라보는 사람의 표정을 통해 호감도, 인간미가 배어나도록 했다. 그런 대통령 모습에서 국가의 문화적 역량마저 느끼게 해준다….”

강 작가가 쓴 글이나 인터넷 블로그 어디를 뒤져봐도 그가 친미주의자라는 느낌을 주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 그가 왜 이런 사진을 올렸고, 또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게다가 그는 사진작가로는 유일하게 지난 1년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지근거리에서 카메라에 담아온 인물이다. 그는 박 당선인 사진을 통해 또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대통령선거가 끝나길 기다려 2012년 12월 24일 서울 홍익대 근처 강 작가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 그동안 예술사진 작가로만 알려졌는데, 정치인 사진 이야기가 등장하는 등 활동무대가 달라진 것 같다. 무슨 이유가 있나.

“우연찮게 사진작가 신분으로 국가브랜드위원회 자문위원에 위촉되면서 대통령 이미지 자체가 국가 브랜드 자산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대통령 이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수단 가운데 하나가 사진이기에 세계 각국 정상들의 사진을 찾아봤는데,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미국 대통령 사진이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 사진은 정치인도 충분히 예술의 대상이 되며, 그것이 그 나라의 국격이 될 수도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 박근혜 당선인 사진도 정치 이미지 제고 차원인가.

“2011년 8월경 우연찮게 박 당선인 캠프로부터 인물사진을 찍어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나는 그때 정치인 이미지 사진이라는 분야가 한 나라의 문화적 수준을 충분히 대변할 수 있다는 나 나름의 결론을 갖고 있었기에 박근혜라는 여성 정치인에 호기심이 생겼다.”

▼ 강 작가는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박 캠프 쪽은 정치홍보물로 사용하려고 ‘잘 빠진’ 사진 정도를 의뢰하는 수준이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당사자를 직접 만나기를 원했고, 당사자로부터 두 가지를 확실하게 약속받은 후 사진을 찍기로 결정했다. 첫 번째로, 정치인으로서 ‘예술의 대상’이 될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박 당선인은 ‘예술작품 해보세요’라며 선뜻 받아들였다. 두 번째로 박 당선인의 얼굴 상처를 찍어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얼굴을 실제로 보니 큰 칼자국이 선연히 남아 있어 당시 장면을 연상케 할 정도로 섬뜩했다. 나는 거기서 당사자가 겪었을 극한의 공포감과 전율을 느꼈다. 박 당선인은 나의 조심스러운 제안에 ‘제가 상처가 많은 사람이에요. 부모님 두 분 다 흉탄에 돌아가셨지요’라면서 기꺼이 감추고 싶은 상처까지 내던져 예술의 소재로 활용할 것을 허락했다. 솔직히 그 모습에 감동받아 자발적으로 박 당선인 사진을 1년 동안 찍었다.”

캠프 내 참모들 오해도 받아

“1년간 박근혜 당선인 뒷모습과 테러 흔적만 찍었다”
강 작가는 박 당선인에게 그런 약속을 받아내기 전에 자기 ‘실체’를 먼저 보여줬다고 한다. 사진 찍을 때 늘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마치 춤추듯 스텝을 밟으며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춤추는 사진작가’로 불리는 그는 ‘99 Variations’이라는 제목으로 99개의 자기 내면 모습을 사진으로 표현한 바 있는 독특한 아티스트다. 기괴한 내면까지도 적나라하게 까발려놓은 그의 사진을 보고 박 당선인은 처음에는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이다가 이내 “참 독특하다. 재미있겠다”면서 자신을 예술적으로 표현해도 좋다고 기꺼이 허락했다는 것.

▼ 박 당선인을 찍은 사진을 보면 뒷모습이나 테러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옆모습이 대부분이다. 주위 사람, 특히 참모 중에는 싫어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 같은데.

“실제로 캠프 내 일부 인사들에게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나는 내 예술행위가 궁극적으로 선거 전략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나는 박 당선인의 뒷모습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 외로움을 봤다. 그리고 박 당선인이 보는 대상과 박 당선인을 대하는 상대방의 반응을 카메라에 담았는데, 그것은 잔잔한 감동 이상으로 내게 다가왔다.”

강 작가는 박 당선인의 다큐멘터리 작업을 위해 아스팔트 위를 뛰어다니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박 당선인 매력에 푹 빠졌다고 고백한다. “박 당선인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대한민국이라는 역사 수레바퀴에 얹혀 같이 굴러가는 운명”이라는 게 강 작가의 평이다. 박 당선인의 상처 없는 왼쪽 얼굴이 오늘날 대한민국 발전과 영광을 의미한다면, 흉터 있는 오른쪽 얼굴은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숨어 있는 희생과 눈물, 아픔을 의미한다는 것.

▼ 다른 정치인의 다큐멘터리를 작업할 의향은 있나.

“당연히 그렇다. 감동을 주는 정치인이고, 내 예술 소재로 기꺼이 받아준다면 못할 이유가 뭐 있겠는가. 인물 다큐멘터리 작업에서 나 스스로 세운 준칙이 있다. 리얼리티와 미학적 요소, 즉 정보와 정서적 스토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내야 한다는 점이다.”

강 작가는 “한국은 전 국민이 사진작가라는 말이 나올 만큼 사진이 대중화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이미지를 대하는 국민 수준은 정보전달이라는 인증샷 정도에만 머물러 안타깝다고 토로한다. 즉 ‘쓸모 있는 일’에만 집착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아직 여유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면서 강 작가는 인터뷰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우리나라는 이제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른바 제3세계라고 하는,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의 국민을 사진에 담으면서 우리가 없는 여유를 그들은 갖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보다 가난할지언정 여유에서 배어나는 문화적 수준까지 뒤진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쓸데없는 짓’을 할 줄 아는 여유를 가질 때 비로소 국민 간 갈등과 과거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을 예술적 영역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도 그런 여유가 있을 때만 가능하지요.”



주간동아 2012.12.31 869호 (p42~43)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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