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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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말도 꺼내지 마라”

총선 이어 대선 패배 야권 지지자들 ‘멘붕’… 참회 눈물이 ‘악어 눈물’로 의심

  • 전예현 내일신문 정치팀 기자 whatisnew@naver.com

    입력2012-12-31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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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말도 꺼내지 마라”

    12월 24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대통령선거 패배로 휘청거리는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민주통합당(민주당)이 연거푸 ‘추락’했다. 총선에 이어 대통령선거(대선)에서도 패하면서 제1야당 민주당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무엇보다 바닥 민심이 심상치 않다. 그동안 민주당을 탐탁지 않게 여기면서도 차마 새누리당을 찍기 싫어 야당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이번 대선에 마지막 애정을 ‘쥐어 짜’ 민주당에 쏟아부었다. 문재인 대선후보가 48.9%를 득표한 것은 야권 성향 유권자들의 이런 절박한 심정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대선 승리를 강렬히 원했던 야권 지지층은 요즘 ‘멘붕’ 상태다. 멘털(mental) 붕괴, 즉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커서 수습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반(反)새누리당 성향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대해 불안해하는 점은 뚜렷한 대안 세력이나 차기 기대주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기류는 그동안 성장해온 이른바 ‘친노무현(친노) 세력’, 그리고 차세대 주자로 부상한 민주당 486 정치인(40대, 80년대 학번, 1960년대생)에 대한 대중적 기대가 흔들린다는 것을 뜻한다. 민주당 내에서조차 당 외부의 ‘안철수 동향’에 촉각을 세우는 모습이 이런 분위기를 반증한다.

    대안 세력과 차기 기대주 실종

    10여 년간 민주당 주류는 ‘친노 세력’과 ‘운동권 출신 486 정치인’이었다. 군부독재에 항거하고, 1987년 6월항쟁을 성공시킨 열정을 바탕으로 이들은 2002년 대선에서 주도적 구실을 했다. 대선 TV 광고 ‘노무현의 눈물’은 486 운동권 출신이 만든 히트작이었다. 2004년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이 압승해 ‘친노와 486 정치인 전성시대’가 열렸다. 정치적 실험이 이어졌고, 격정적 노선 토론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들은 2007년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면서 ‘폐족’이 될 위기에 놓였다. 2008년 총선에선 줄줄이 낙마해 이른바 ‘탄돌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

    이들이 재부상한 계기는 2010년 6·2 지방선거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안타까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 ‘차세대 주자들’에 대한 기대감이 결합하면서 친노 세력과 민주당 486 인사가 선거판을 뒤흔들었다. 특히 486 인사들은 풀뿌리 지방의원에서부터 주요 광역 단체장까지 휩쓸었다. 최근 몇 년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친노 인사와 486 최고위원이 잇달아 탄생하면서 지도자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다.



    2010년에서 2012년까지 이런 과정을 거친 인물군에는 민주당 최고위원 출신인 안희정(충남지사), 송영길(인천시장), 김두관(전 경남지사), 이광재(전 강원지사), 우상호, 이인영, 강기정 의원이 포함된다. 또 윤호중 의원, 임종석 전 의원도 당 고위직을 맡아 지도부 경험을 쌓았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민주노동당 대표 시절 차기주자로 부상했고, 이번 대선에 출마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1년 말 ‘혁신과 통합’을 통해 민주당으로 복귀한 이해찬 전 대표, ‘모바일 투표’ 바람을 탔던 한명숙 전 대표, 문재인 전 대선후보 등은 모두 ‘친노 기둥’에 속한다.

    그러나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친노와 486 정치인을 둘러싼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2011년부터 불어닥친 ‘안철수 현상’, 그리고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와 함께 등장한 전문가 486그룹의 부상이 야권 차세대 주자에 대한 프레임을 흔들었다.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출신의 ‘운동권 486 주류, 민주당 성골 집단’이 담아내지 못하는 대중의 다양한 욕구가 안 전 후보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안 전 후보와 빌 게이츠의 만남 및 대화, 붉은 머리띠 대신 컴퓨터가 든 캐주얼한 배낭을 멘 안 전 후보의 모습, 안 전 후보 팬클럽의 ‘발랄한 파티’는 민주당 주류의 장외집회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드러냈다.

    ‘안철수 군단’도 독특한 색깔을 띠었다. 세대별로 보자면 486그룹이지만, 운동권 출신들과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대표적인 인물이 △대선 캠프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나 안 전 후보의 최측근이자 의사, 경제 전문가, 방송인인 박경철 씨 △검찰 출신이지만 검찰에 비판적인 강인철, 금태섭 변호사 △변호사이자 영화사 대표인 조광희 씨 △변호사이며 유학파인 공공 부문 컨설턴트 김윤재 씨 등이다.

    안철수 정책 포럼에 참여한 과학자 정재승 KAIST(한국과학기술원) 교수의 활동만 봐도 민주당의 친노, 486 정치인과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 정 교수는 ‘과학콘서트’를 기획, 진행했을 뿐 아니라, 가수 이효리가 진행하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과학과 음악의 연관성에 대해 소개하기도 했다. 반면, 민주당 486 정치인이 이효리와 만나 음악에 대해 대화하는 모습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즉, 2030세대와 전문가 그룹이 안철수와 그의 사람에게 열광했던 이유는 운동권 스타일의 민주당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문화적 동질감’과 ‘기회의 가능성’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구닥다리 기득권 세력된 기분”

    그렇다고 친노 세력과 486 정치인이 민주화운동 세대나 전통적 야당 지지 세력의 마음을 이번 대선에서 완전히 잡은 것도 아니다. 40대에 노무현 후보를 찍었던 유권자들은 50대가 됐고, 그중 대다수가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밀었다. 또 노동계 일각도 친박근혜 세력과 친문재인 세력으로 갈렸다. 즉,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 주류는 구세대와 신세대, 전통적 야당 지지 세력과 새로운 유권자 집단 어디에서도 매력적인 존재로 인식되지 못했던 것이다.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 직후 주류와 비주류 간 ‘네 탓’ 공방이 벌어졌다. “친노는 물러가라”는 비판이 나오자, “친노만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느냐”는 반박이 나왔다. “486마저 낡았다”는 지적이 나오면, 또 다른 쪽에서는 “그래도 우리가 당신들보다 낫다”는 물밑 신경전도 벌어졌다. 이를 지켜보던 야권 지지자 사이에서 비판 여론이 쏟아지자, 주류와 비주류 내부 분란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또 일부 486 정치인은 ‘참회의 눈물’로 유권자에게 용서를 구하기 시작했다. 진보 성향의 486 정치인 결사체 ‘진보행동’ 소속 의원들이 성탄절에 노동자들의 유가족을 찾은 것이 그런 시도다. 박영선, 김현미, 우상호, 김기준 의원과 박홍근, 배재정, 은수미, 유은혜, 진선미 의원 등이 한진중공업 노동자 고(故) 최강서 씨의 빈소를 찾았고,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가 송전철탑에서 농성 중인 현대자동차 울산공장도 방문했다.

    그런데 이를 바라보는 야권 지지자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노동자를 찾아가고 사죄하는 것은 좋으나 그 진정성을 선뜻 믿기 어렵고, ‘또 저러다 말겠지’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유권자들은 민주당 주류 집단이 대선 막바지까지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문재인 대선후보가 당선된다고 해도, 차기 정부에서 임명직을 맡지 않겠다고 대선 과정에서 선언한 인물은 안철수 전 후보와 이상민 의원 단 2명뿐이었다. 한 3선 의원은 “참신하고 새로운 세력이었던 친노 세력과 486 정치인이 새 정치를 주도하는 세력이 되지 못하고, 10년 동안 여당을 하면서 ‘구닥다리’ 기득권 세력이 된 것 같아 속이 쓰리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내부 혁신은 한계에 달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선거에 패할 때마다 민주당이 지도부를 교체하고 내부 혁신을 주장했지만, 이 노력 역시 한정된 틀 안에서 맴돌았다”며 “내부 인력풀이 이미 바닥까지 드러났는데, 그 안에서 주류와 비주류가 뒤바뀐다고 해봐야 누가 혁신이라고 인정하겠느냐”고 꼬집었다.

    그동안 민주당을 키워줬던 유권자들은 시험에 두 번이나 떨어지고도 삼수하겠다고 우기는 맏아들 같은 민주당 대신, 알아서 공부하면서 커온 똘똘한 둘째아들 같은 안철수 전 후보를 더 지원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한다. 결국 민주당 주류였던 친노 세력과 486 정치인은 대선 패배 이후 당의 날개가 될지, 아니면 짐으로 전락할지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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