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6

2012.12.10

복수의 칼날, 결국은 내 몸 겨눠

‘음부경(陰符經)’의 원수와 은인

  •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입력2012-12-10 09: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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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의 칼날, 결국은 내 몸 겨눠

    중국 소주에 세워진 오자서 동상.

    “삶이란 죽음을 근본으로 삼고 죽음은 삶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니, 은혜는 해로움에서 생겨나고 해로움은 은혜에서 생겨나는 것이다(生者死之根 死者生之根. 恩生于害 害生于恩).”

    얼마 전 공직을 맡은 한 지인이 호의를 베푼 상대방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아’ 호되게 곤욕을 치른 일을 기자에게 들려줄 때 문득 떠오른 구절이다. 지인은 “해로움은 은혜에서 생겨난다”는 문구를 뼈저리게 체험한 셈이다. 그런데 그에 대구되는 “은혜는 해로움에서 생겨난다”는 것은 또 어떤 경우일까. 중국 도교 경전인 ‘음부경(陰符經)’에 기록된 이 말은 그 뜻을 알 듯 말 듯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하기야 ‘음부경’ 자체가 최소한 당대(唐代)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만 확인될 뿐, 지은이가 누구인지 아리송하고, 도를 깊이 깨달은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도 힘든 아주 신비스러운 책이다. 기자가 도교 경전을 공부할 때 900자 한문에 불과한 이 책 때문에 애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지인은 뒤통수를 내려친 장본인이 ‘정 주고 마음 준’ 사람이라는 점에 더욱 가슴 아파했고 심지어 스트레스도 심하게 받았다. 가만히 있다가도 그 생각만 나면 울화가 치밀어 가슴이 두근두근 하는 증세도 생겼다는 것이다. 기자는 지인에게 ‘원수와 복수’의 아이콘인 ‘오자서(伍子胥)’ 얘기를 들려주면서 화병을 다독거렸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중국 전국시대 오자서는 비무기라는 간사스러운 자의 모함으로 아버지와 형이 초(楚)나라 왕에게 죽임을 당하자 복수를 벼르며 살아왔다. 어느덧 그는 오(吳)나라 왕 합려의 최측근으로 부상해 초나라를 치고 그 원한을 되갚을 힘을 길렀다. 때마침 초나라에서 백비라는 망명객이 찾아왔다. 그 역시 모함으로 아버지를 잃은 처지였다. 오자서는 그를 합려에게 천거해 대부(大夫)가 되게 했다. 그러자 관상을 잘 보는 피리라는 중신이 오자서에게 물었다.

    “백비의 눈은 매와 같고 걸음걸이는 범을 닮았소. 살인을 저지를 잔인한 상(相)인데 그토록 신임하는 이유가 뭐요?”



    오자서는 이렇게 답했다.

    “그와 내가 같은 원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오. 하상가(何上歌)에서도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기고(同病相憐), 같은 근심을 가진 사람끼리 서로 돌보아주네(同憂相救)’라고 하지 않았소.”

    몇 년이 흐른 후 오자서와 백비는 합려를 도와 초나라를 무너뜨리고 공동의 원수를 갚았다. 그러나 그 뒤 피리가 본 대로 백비는 월나라에 매수됐고 오자서를 모함해 죽였다. 오자서는 삶 자체가 ‘복수의 화신’이었기에 결국 사람에 대한 이성적 판단을 그르쳐 화를 입었던 것이다.

    그 반대로 해로움, 곧 원수가 은인이 되는 것은 어떤 경우일까. 원수때문에 복수심 같은 파괴적인 에너지를 키울 것이 아니라, 세상을 헤쳐나갈 지혜를 얻고 다시는 ‘당하지’ 않을 힘을 갖추는 일일 게다. 흔히 성공신화 주인공 뒤에는 악역(惡役)을 담당하는 ‘웬수 같은 존재’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들을 인생에 교훈을 주는 스승으로 삼아 뛰어넘을 때 주인공의 존재가치는 더욱 빛난다. 복수심을 부정적 에너지로 키우면 원수를 갚더라도 그 파괴적 에너지가 자신의 몸속에 쌓인다는 게 선인들의 가르침이다. 일종의 업보 작용이기 때문인데, 결국 작게는 건강을 망치고 크게는 목숨까지 잃게 한다.

    그래서 지인의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부정적 말에 기자는 “밤 잔 원수 없고, 날 샌 은혜 없다”는 우리 속담으로 대응했다. 사람은 그때가 지나면 원수도 은혜도 망각하게 마련이다. 그래야만 인생살이가 편안하고 또 오래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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