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2

2017.06.14

안병민의 일상경영

잘게 쪼개 팔기가 대세

소유 아닌 ‘공유’의 시대

  • 열린비즈랩 대표 facebook.com/minoppa

    입력2017-06-09 17:4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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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훗날 누가 나를 일컬어 말한다면/ 그는 단지 그냥 거기 있었다, 라는 말을 듣고 싶다’. 박철 시인의 시 ‘벽오동’의 첫 구절입니다. 며칠 전 스마트폰으로 배달받은 시입니다. 출판사 창비가 출시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시요일’ 이야기입니다. 무려 3만3000여 편입니다. 창비가 보유한 시 전체가 하나의 데이터베이스로 들어앉았습니다.

    앱을 다운로드하면 매일 새로운 시를 보내줍니다. 시인별, 시집별뿐 아니라 키워드나 상황에 따른 검색도 가능합니다. 예컨대 ‘울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은 시, ‘인생을 돌아보고 싶을 때’ 좋은 시 같은 메뉴입니다. 1년 이용권이 2만 원이니 한 달로 치면 2000원이 채 안 되는 돈입니다. 흡사 원하는 음식을 무한정 먹을 수 있는 뷔페식당처럼 출판사가 보유한 모든 시를 무제한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판매방식의 변화는 다른 분야에서는 이미 일상화돼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음악시장입니다. 요즘은 다수의 사람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음악을 즐깁니다. 애초엔 곡당 얼마씩 ‘다운로드’ 방식으로 판매하던 음악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대세는 ‘스트리밍’(인터넷상에서 음악이나 동영상 등을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기술) 방식입니다. 매월 일정 금액만 내면 아무런 제한 없이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노래를 다운로드해 ‘소유’하는 게 아니라, 듣고 싶을 때 그저 인터넷에 ‘접속’해 즐기는 겁니다. ‘시요일’과 비슷한 방식입니다.



    ‘분 단위’로 이용 가능한 호텔

    이처럼 제품이나 서비스의 판매방식이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개당 얼마씩, 혹은 회당 얼마씩 가격을 매겨 판매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시장이 변하니 세일즈와 마케팅도 달라집니다. 일정 금액을 내면 무한정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시간을 더욱 잘게 쪼개 팔기도 합니다. 이제는 가격 정책에도 남다른 창의력이 중요하다는 방증입니다. 단순히 원가가 얼마이니 거기에 적정 이윤을 붙여 가격을 정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어떤 조합과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파느냐에 따라 매출과 수익은 천양지차가 됩니다.



    렌터카업체 쏘카는 24시간 단위로 차를 대여하는 기존 업체와 달리 10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차를 빌려줍니다. 내가 필요한 시간 동안만 차를 빌릴 수 있으니 고객 처지에서는 합리적 제안입니다. 하루 단위로 숙박료를 책정하던 호텔들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에 있는 국내 최초 캡슐호텔 ‘다락휴(休)’의 과금 기준은 하루가 아니라 1시간입니다. 객실 타입에 따라 다르지만 시간당 1만 원 수준입니다. 스타 연예인들이 객실 디자인에 직접 참여해 유명해진 ‘호텔 더 디자이너스’도 비슷합니다. 마치 택시처럼 1만 원대 기본요금에서 시작해 분당 100~200원씩 요금이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소유’의 시대가 저물어갑니다. 지금은 ‘접속’의 시대이며 ‘공유’의 세상입니다. 제품과 서비스 판매방식이 달라지고 있는 배경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제품과 나의 서비스도 다시 한 번 돋보기 대고 들여다볼 일입니다. 이 시대 마케터들의 새로운 고민입니다.


    글쓴이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핀란드 알토대(옛 헬싱키경제대) 대학원 MBA를 마쳤다.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마케팅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 정답은 많다’,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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