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3

2012.06.25

훈춘 개발 돈 쏟아붓는 중국 동북아 거점기지 오랜 꿈 실현

중·북·러 연결 지정학적 요충지…나진항 빌려 해군력 동해 진출도 추진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입력2012-06-25 1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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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춘 개발 돈 쏟아붓는 중국 동북아 거점기지 오랜 꿈 실현
    중국이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의 훈춘(琿春)을 적극 개발하고 있다. 훈춘은 남쪽으로 두만강을 경계로 북한 나선(나진-선봉)특별시, 동쪽으로는 러시아 연해주와 맞댄 국경 도시다. 특히 훈춘은 동북쪽이 육지로 막힌 중국으로선 바다에 진출할 수 있는 최적지다. 훈춘에서 동쪽으로 15km만 가면 동해를 만난다. 훈춘과 러시아 자루비노항은 철도로 연결돼 있다. 훈춘에서는 북한도 쉽게 드나들 수 있다. 훈춘 취안허(圈河) 통상구에서 남쪽으로 두만강대교를 건너 함경북도 은덕군 원정리를 지나 나진항까지는 53.5km밖에 되지 않는다. 훈춘은 중국, 북한, 러시아를 연결하는 지정학적 전략 요충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북아의 홍콩’ 만들기 원대한 계획

    중국 정부는 현재 훈춘을 ‘동북아의 홍콩’으로 만들기 위한 원대한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지린성 정부는 국무원으로부터 승인받아 5월 29일 훈춘에서 ‘투먼장(圖們江·두만강) 지역 국제합작시범구’ 착공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개발을 시작했다. 오는 2020년까지 조성할 시범구는 90km2 면적에 국제산업합작구역, 국경무역합작구역, 북·중 훈춘경제합작구역, 중·러 훈춘경제합작구역 등 4개 구역으로 나눠 개발한다.

    투먼장 지역 국제합작시범구 조성이 본격화하면서 중국 정부는 창춘(長春)-지린(吉林)-투먼을 잇는 ‘창지투(長吉圖) 개방 선도구’ 개발사업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창지투 개방 선도구 개발사업은 두만강 유역에 있는 3개 도시를 연결해 대규모 산업과 물류단지를 만드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2009년부터 이미 창지투 개방 선도구 개발사업을 시작했으며, 2020년까지 투자를 완료할 계획이다. 중국 정부는 동북3성에 랴오닝(遼寧) 연해경제벨트, 선양(瀋陽) 경제구, 창지투 개방 선도구, 하다치(哈大齊) 공업지역 등 4대 경제벨트를 구축할 계획이다.

    중국은 창지투와 훈춘을 연결하려고 교통망 구축에도 총력을 기울인다. 2010년 9월에는 창춘-지린-옌지-투먼-훈춘을 잇는 고속도로를 개통한 데 이어, 같은 해 10월부터는 2013년 완공을 목표로 이 구간에서 고속철도 공사를 진행 중이다. 창지투 개방 선도구 개발사업이 성공하려면 동해로의 출항권을 확보해야 한다. 훈춘은 바로 동해로 나가는 길목에 있다.



    중국 정부는 오는 8월까지 훈춘과 북한 나진항을 연결하는 도로에 대한 보강 공사도 완공할 예정이며, 이 공사에 1억6500만 위안(약 2600만 달러)을 투입했다. 이 도로를 완공하면 훈춘 취안허 통상구에서 나진항까지의 운행 시간은 종전 90분에서 40분으로 절반 이상 단축되며, 대형 트럭을 이용해 석탄 같은 자원을 나진항까지 원활하게 수송할 수 있다.

    중국은 이미 2009년 나진항 1호 부두 사용권을 따냈고, 보수와 확장 공사를 통해 연간 100만t의 하역 능력도 갖췄다. 중국 정부는 나진항 1호 부두를 통해 동북3성에서 생산하는 석탄을 선박편으로 상하이 등 남부지역으로 대량 운송하고 있다. 훈춘시는 올해 나진항을 통한 석탄 남방 운송 목표량을 50만t으로 잡았다. 중국은 또 2010년 나진항 4~6호 부두를 개발해 50년간 사용할 권리도 확보했다.

    중국의 숙원은 두만강을 통해 동해로 진출하는 것이다. 동해로 나가면 태평양까지 쉽게 갈 수 있다. 청나라는 제정 러시아와 1858년 아이훈조약, 1860년 베이징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두만강 하류지역 100km2 를 상실했다. 1886년 ‘중·러 훈춘 동계약(東界約)’이 체결돼 중국 선박의 출해권을 일시적으로 인정받아 훈춘과 동해 원산, 부산, 니가타, 나가사키로 연결되는 항구도시 간 무역이 활발해지기도 했다.

    1938년 일본군이 두만강 하구를 막자 중국의 동해 진출은 다시 봉쇄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공산당이 본토를 차지한 이후 중국 정부는 그동안 북한과 소련을 향해 줄기차게 훈춘을 통한 동해 출해권을 요구했다. 이른바 항구를 건설해 바다로 나간다는 ‘건항출해(建港出海)’ 전략이었다. 하지만 소련은 북한을, 북한은 소련을 핑계 삼아 사실상 중국의 출해권을 거부했다.

    대륙세력이 해양으로 나가는 출구

    훈춘 개발 돈 쏟아붓는 중국 동북아 거점기지 오랜 꿈 실현

    북한 나진항 부두. 오른쪽부터 1, 2, 3호.

    중국은 1993년부터 건항출해 전략에서 ‘차항출해(借港出海)’ 전략으로 전환했다. 항구를 빌려 동해로 나가겠다는 것이다. 훈춘-러시아 자루비노항-속초를 연결하는 해상교통로를 개통했다. 하지만 이 루트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러시아 때문에 발전이 더디게 진행됐다.

    결국 새로운 출구를 찾으려고 노력해왔던 중국이 확보한 것은 훈춘-나진항 루트다. 중국은 두만강 하구와 인접한 나진항을 동북3성이 태평양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주목해왔다. 나진항은 1921년 문을 열었다. 일본이 1932년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운 이후 나진항의 지정학적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일본은 지금의 창춘과 투먼을 연결하는 철도노선을 한반도 북단까지 연장하는 계획을 세웠고, 철도의 끝 지점 항구를 나진으로 결정했다. 이후 일본은 만주철도회사를 앞세워 나진을 전략적인 항구로 개발했다.

    나진항은 한반도종단철도(TKR),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만주횡단철도(TMR) 등이 만나는 지역에 위치한 부동항(不凍港)이다. 훈춘에서 바로 나진항을 통하면 훈춘-다롄-부산-니가타 운송 루트가 10여 일 단축된다. 나진항이 중국의 동해 출구로 자리잡으면서 훈춘이 중요한 거점이 되고 있다. 훈춘이 중국 동북지역의 내륙과 북한을 연결하는 중계지가 된 셈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나진항은 과거엔 해양세력이 대륙으로 진출하는 입구였다면, 지금은 대륙세력이 해양으로 나가는 출구다. 러시아는 이미 나진항 3호 부두의 50년 사용권을 확보한 바 있다. 러시아가 자루비노항과 포시에트항 등 자국 항구들이 있는데도 나진항을 선호하는 것은 나진항이 수심이 깊고 조수 높낮이가 0.2~0.3m에 지나지 않아 선박 운항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소련은 1970년대까지 나진항을 군사 항구로 사용하기도 했다. 소련은 나진항을 통해 미국과 전쟁 중이던 베트남에 전략물자를 수송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가 훈춘 개발에 적극적인 가장 큰 이유는 북한과 러시아를 한데 묶어 동북3성을 발전시키기 위한 발판으로 활용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훈춘에선 이미 중국, 북한, 러시아 간 교역과 인적 교류가 활발하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훈춘을 통한 중국과 러시아 간 호시(互市)무역액은 75억 위안(약 1조3900억 원)을 넘어섰고, 훈춘 호시무역구의 러시아인 유동인구는 연인원 45만 명 규모로 성장했다. 무관세 교역인 호시무역이 활기를 띠면서 훈춘에는 매일 수많은 러시아인이 몰려들어 쇼핑을 즐긴다.

    훈춘에서는 또 5월부터 북한 나선, 러시아 하산을 잇는 무비자 관광도 시작했다. 이 관광은 여권만 있으면 간단한 절차를 거쳐 관광객이 첫 번째 방문국에서 두 번째 방문국으로 곧바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인 관광객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앞으로 공단 등이 조성되면 북한은 노동자를 많이 파견할 계획이다.

    훈춘은 북·중이 공동 개발하기로 한 북한의 나선특구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현재 나선특구에는 많은 중국 기업이 입주해 있다. 중국 정부는 또 우리나라와 일본 기업도 유치해 훈춘을 명실공히 동북아의 산업 및 물류 허브로 만들려는 야심도 있다. 우리나라는 포스코가 훈춘에 1억5000만 달러를 투자해 국제물류단지를 개발 중이다.

    중국이 훈춘 개발에 공을 들이는 또 다른 이유는 앞으로 동북아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남북한 통일, 러시아의 극동개발 전략, 일본의 동해 진출 전략에 맞서려면 자국의 동북지역을 우선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경제적 우위를 선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치·외교적으로도 유리하다.

    훈춘 개발 돈 쏟아붓는 중국 동북아 거점기지 오랜 꿈 실현

    훈춘 국제합작 시범구 착공식을 축하하는 플래카드.

    중국 동북지역은 과거 만주라고 부르던 곳이다. 흔히 말하는 만주는 만주국의 영토를 일컫는다. 당시 중국을 침략하려던 일제가 만주를 먼저 점령했던 이유도 이 지역이 지경·지정학적 전략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일본과 유럽 학계에선 중국의 동북진흥정책을 ‘만주노믹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만주노믹스는 만주(Manchu)와 경제학(Economics)의 합성어로, 만주지역 특색을 띠는 경제발전 전략을 말한다.

    지금도 일본은 동북3성에 대한 투자를 가장 활발히 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도 극동·시베리아 발전 계획에 따라 중국과의 변경지역 개발에 220억 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훈춘은 동북아 각국의 이해관계가 중첩되는 지역에 있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훈춘을 개발해 홍콩처럼 국제도시로 만든 뒤 동북아 각국의 이해를 조정하면서 주도권도 행사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중국 해군 확대 기항지 되나

    훈춘은 중국 관점에서 보면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해 중국이 군사력을 투입할 수 있는 최적지다. 훈춘은 또 러시아 군사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적절한 지역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2010년 연해주 하산에서 대규모 북한 난민 유입에 대비한 훈련을 실시한 적이 있었다. 러시아도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하는 만큼, 중국은 러시아의 움직임을 견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상호 협력도 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이 훈춘을 통해 나진항까지 군사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중국 해군 훈련함대 소속의 뤄양호와 정허호 등 두 척의 군함이 지난해 8월 북한 원산항에 기항한 바 있다. 중국 해군 훈련함대의 당시 북한 방문은 북·중 우호협력 상호원조조약 체결 50주년을 기념한 것이지만, 1996년 이후 15년 만에 중국 군함이 동해를 거쳐 원산항에 입항한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중국이 나진항을 통해 자국 동북지역의 자원과 화물을 남부 산업지역으로 운반하면서 남방수송로 보호를 명분으로 동해에 해군을 상주시킬 가능성도 있다. 중국 해군 함대의 기항지가 나진항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둘러싸고 팽팽하게 맞서는 와중에서 중국 해군 함대가 나진항을 통해 동해로 진출할 경우 미국으로서는 허를 찔리는 셈이다. 일본으로서도 자국 바다라고 주장하는 동해에서 중국 해군 함대가 출몰한다면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 태평양 함대의 모항은 블라디보스토크다. 이런 전략적 구도로 볼 때 훈춘은 중국 해군력의 동해 진출 배후기지가 될 수 있다. 훈춘이 앞으로 다가올 동북아시대의 거점 기지가 된다면 중국이 구상해온 ‘두만강 대계(大計)’라는 오랜 꿈이 실현되는 것이다. 두만강 가까이에 있는 자그마한 도시 훈춘의 변신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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