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2

2012.06.18

‘할 일’ 이 태산 그렇게 살아 행복하십니까?

슬로라이프를 위한 슬로플랜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12-06-18 15: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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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일’ 이 태산 그렇게 살아 행복하십니까?

    쓰지 신이치 지음/ 장석진 옮김/ 문학동네/ 254쪽/ 1만2000원

    현실에선 대기권을 벗어날 수 없지만 그래도 지구 밖에서 망원경으로 내려다본다고 치자. 세상 곳곳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크게는 국가 간 분쟁과 전쟁, 작게는 주변에서 별의별 사건 사고가 일어난다. 또한 환경 위기, 에너지 위기, 금융 위기, 경제 위기 등이 연이어 발생한다. 알고 보면 우리는 엄청난 과잉과 혼돈의 시대를 사는 것이다.

    “물건의 과잉, 생산의 과잉, 상품의 과잉, 욕망의 과잉…. 그리고 이 모든 과잉을 지탱하는 것은 바로 ‘할 일’의 과잉이다. 오늘날 개개인을 차례차례 궁지로 밀어 넣는 것도 바로 이러한 과잉이며, 이들 과잉은 세계를 위기로 몰아가려 한다.”

    삶을 누리며 느리게 살아가자는 ‘슬로라이프 운동’을 제창한 저자는 “‘돈과 경제성장’에만 초점을 맞춘 사람들의 ‘할 일 리스트’가 현재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현대인은 바쁜 척하거나 바쁘게 살아간다. 입으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힘들어 죽겠다”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바쁨의 쳇바퀴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바쁘게 산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바쁜 삶을 곧 풍요로운 삶, 행복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종종걸음으로 사람을 만나고 자기개발에 목숨을 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뒤처진다고 생각한다. 이 일도 해야 하고, 저 일도 해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할 일’은 무한 증식하며 수많은 사람을 다그친다. 이 무시무시한 괴물에서 벗어나려면 ‘할 일 리스트’ 작성이 아니라, ‘하지 않을 일 리스트’를 작성해야 한다.

    수십 년 동안 북미에서 지내다 일본으로 돌아온 저자도 ‘하지 않을 일 리스트’를 작성하고 실천했다. 먼저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았다. 자동차의 편리함보다 그에 의존하는 생활의 부자유를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또한 손목시계를 차지 않았다. 손목시계파와 비손목시계파는 그렇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저자는 “성격에서부터 행동,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좀 더 느릿하고 인생을 즐기며 관용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당장 손목시계를 풀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저자는 버스나 전철에 급히 올라타지 않기, 잠자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기, 텔레비전 보지 않기,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하지 않기 등을 제시한다. 이 책은 단순히 ‘할 일 줄이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 하지 않은 편이 더 나은 일도 다룬다. 그러면서 자신의 한계나 약점을 인정하면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을 희생해 이루어낸 풍요로움은 결국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소유하는 것과 해야 할 일의 ‘집단 강박증 시대’에 이별을 고하자.”

    솔직히 저자의 주장이 백번 옳다 해도 먹고살 만큼 재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현실에서 슬로라이프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당장 노동생산성과 지적생산성을 올리지 못하면 ‘능력 없는 사람’으로 찍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누구보다 빠르게 정신없이 달려간다. 그래서 자기에게 맞는 속도로 살아가는 삶, 때로는 다소간의 희생도 받아들이는 삶, 불편하지만 기다림에 익숙한 삶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일을 내려놓는 리스트를 작성한 뒤 하나둘 실천한다면 진정한 행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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