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0

2017.05.31

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민물장어의 꿈 “4대강은 응답하라!”

하굿둑, 보에 막혀 씨 마르는 뱀장어…인간과 생태계 염두에 둔 친환경 복원 시작해야

  • 지식 큐레이터 imtyio@gmail.com

    입력2017-05-30 17: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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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6월부터 4대강(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 있는 보를 상시 개방하라고 지시했다. 이명박 정부 때 5년간 24조 원을 쏟아부으며 군사 작전처럼 진행된 4대강 사업을 놓고서도 정책 감사를 예고했다. 개인의 잘잘못을 따지는 식의 감사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위법·탈법 행위가 드러난다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수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뉴스를 접하면서 뜬금없이 노래 한 곡이 떠올랐다. 고(故) 신해철 씨가 남긴 ‘민물장어의 꿈’.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의 주인공은 제목대로 민물장어다. 그리고 어쩌면 민물장어야말로 4대강 사업의 원상 복구 가능성을 언급한 문 대통령의 발표를 제일 반겼을 것이다.



    태평양 수천 킬로미터 여행

    해양생물학자 황선도 박사의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부키)를 읽다 보면 뱀장어 얘기가 나온다. 뱀장어에 대한 경외심은 그로부터 비롯됐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 역시 앞으로 뱀장어를 접할 때마다 나와 같은 마음을 품을 것이다. 신해철 씨도 ‘민물장어의 꿈’을 만들 때 틀림없이 그랬을 개연성이 크다.

    민물장어는 사실 ‘민물’ 뱀장어가 아니다. 평균 5~7년간 강에서 생활한 뱀장어는 자손을 낳을 준비가 되면 어느 해 가을 무렵 강 하구로 내려간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하구에서 두세 달 머물며 적응 준비를 끝낸 뱀장어는 고향을 찾아 망망대해로 나서는 기나긴 여행을 떠난다. 바다에서 자라다 산란할 때가 되면 강물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와 정반대다.



    바다로 떠난 뱀장어가 도대체 어디서 산란을 하는지는 오랫동안 미스터리였다. 황 박사에 따르면 한국, 일본, 중국 등의 강에 살던 뱀장어의 산란장이 밝혀진 것은 1990년대 들어서다. 뱀장어(우나기)라면 환장하는 일본 도쿄대 해양연구소가 20여 년 동안 태평양 일대를 뒤진 끝에 1991년 필리핀 동쪽 해역에서 뱀장어 치어 수백 마리를 잡았다.

    그 뒤에도 수많은 과학자가 십수 년간 노력한 끝에 2000년대 중반 무렵 뱀장어 산란장이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 북쪽 해저산맥 부근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수온이 25~27도로 따뜻한 4~8월, 수심 160m의 해저 산봉우리에서 망망대해를 헤치고 모여든 뱀장어가 떼로 산란을 한다. 제구실을 다한 어미는 산란 후 그곳에서 생을 마친다.

    여기까지도 충분히 감동적인데, 이야기는 아직 반도 끝나지 않았다. 어미의 숭고한 희생 끝에 태평양 한복판에서 태어난 뱀장어 새끼의 사정은 어떨까. 알에서 깨어난 뱀장어 새끼는 잠자리 날개 같은 납작하고 투명한 몸통을 가지고 약 6~12개월간 3000km를 여행한다. 태평양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북적도 해류를 따라 이동하다 쿠로시오해류로 옮겨 동북아시아까지 온다.

    뱀장어와 모양이 달라 ‘댓잎뱀장어’로 불리며 몸 길이가 7~8cm에 불과해 헤엄도 제대로 못 치는 새끼 뱀장어가 3000km를 여행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이 여행은 연어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찾아가는 연어와 달리 이 뱀장어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어미의 고향을 찾아 그 머나먼 길을 여행하는 것이니.

    이렇게 3000km의 망망대해를 여행한 새끼 뱀장어는 대륙붕과 만나는 지점에서 드디어 우리에게 익숙한 5~6cm의 실뱀장어로 축소 변태한다. 대륙붕에서 실뱀장어는 한국, 일본, 중국의 강 하구로 여행을 마저 한다. 이렇게 도착한 실뱀장어는 12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각 나라의 강 남쪽에서 부터 강 오름을 시작한다. 드디어 기나긴 여행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뱀장어 새끼가 어떻게 3000km나 여행을 하는지, 어미의 고향으로 가는 길은 어떻게 찾는지 등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다. 심지어 대륙붕에 도달해 변태한 실뱀장어가 강 오름을 위해 찾는 강이 정말로 어미의 고향인지, 또 그렇다면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도 마찬가지다.



    실뱀장어의 회귀를 도우려면

    놀라지 마시라! 그렇게 수천 킬로미터의 여행을 마무리한 실뱀장어를 잡아 기른 것이 바로 우리가 구워 먹는 민물장어다. 뱀장어는 아직 인공부화로 길러내는 양식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강 오름을 시작하는 실뱀장어를 잡아 키우는 것이다(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있었지만 상업 양식을 할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우리가 먹는 뱀장어는 예외 없이 수천 킬로미터의 장엄한 여행을 마친 영웅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 뱀장어를 접할 때 어찌 경외감을 품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앞으로 불판에서 꿈틀대는 뱀장어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 모든 살아 있는 것이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있겠지만, 뱀장어는 그 가운데서도 특별하다.

    안타깝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뱀장어는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자연산 뱀장어는 정말로 찾아보기 어렵고, 실뱀장어조차 갈수록 어획량이 줄고 있다. 1970년대만 해도 금강에서 하루 1만 마리씩 잡히던 실뱀장어가 요즘은 고작 수십 마리밖에 안 걸린다는 어부의 하소연이 명백한 증거다.

    이렇게 뱀장어 씨가 마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낙동강, 영산강, 금강 등의 어귀를 막고 있는 하굿둑이다. 하굿둑이 가로막고 있으니 실뱀장어는 강 오름을 할 수 없어 수천 킬로미터의 여행을 마무리하지 못한다. 강에서 서식하던 어미 뱀장어는 하굿둑에 막혀 바다로 나갈 수 없으니 새끼를 못 친다. 이것도 모자라 이명박 정부가 강 곳곳에 보까지 설치했으니 뱀장어로서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물고기가 하굿둑과 보를 넘나들라고 만들어놓은 어도(魚道) 역시 꿈틀꿈틀 헤엄치는 뱀장어의 생태는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이 태반이다. 뱀장어 처지에서는 정말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제 수십 년 동안 앞만 보고 진행해온 강 파괴의 관행을 돌이키고 상처를 치유할 때가 왔다. 당장 하굿둑이나 보를 걷어내자는 얘기가 아니다. 인간뿐 아니라 그간 도외시해온 뱀장어 같은 생태계의 구성원까지 염두에 둔 친환경 복원을 먼저 고민하자는 것이다. 그 출발점은 민물장어가 바다로 나갈 수 있도록, 또 태평양을 여행해온 실뱀장어가 어미의 고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일 테다. 이제 민물장어의 꿈에 우리가 응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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