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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박희숙의 미술관

훔쳐 먹은 사과는 독이 있다

불륜

훔쳐 먹은 사과는 독이 있다

훔쳐 먹은 사과는 독이 있다

‘숨바꼭질’, 뱅크시, 2006년, 낙서화.

적당한 부와 명성, 그리고 화목한 가정. 남들이 얘기하는 이른바 ‘행복의 조건’을 다 갖췄는데도 마음속 깊이 허무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부터 중년이다. 사라진 젊음이 아쉬워 불로초가 있으면 천금을 주더라도 사먹겠지만 진시황도 구하지 못한 불로초가 나에게까지 오겠는가. 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회춘 비법으로 알려진 소녀의 기를 받자니 어렵게 이뤄 놓은 것을 한 방에 날릴까 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년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줄 것은 그래도 섹스다. 허무함을 달랜다고 배우자를 매일 부둥켜안으려니 체할 것 같다. 그렇다고 섹스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성을 찾는 것이다.

불륜의 최고봉은 유부남과 유부녀의 만남이다. 서로에게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배우자는 불륜이라 손가락질할 테고, 당사자는 아름다운 로맨스라 여길 것이다.

아름다운 로맨스든, 추악한 불륜이든 철칙은 배우자에게 들키지 않는 것이다. 발각되지 않으려면 배우자와의 게임에 능숙해야 한다. 불륜은 배우자와 벌이는 속고 속이는 레이스이기도 하다. 레이스 속도가 조금이라도 늦춰지면 배우자의 촉수에 걸려들고 만다. 그때 불륜 현장은 즐거움의 장소가 아닌 삼단 콤보의 지옥으로 바뀐다. 불륜은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삼단 콤보의 지옥에서 살아남는 최고 방법은 일단 튀는 것이다. 살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 여자의 질투는 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리게 하고, 남자의 질투는 무협영화를 찍고도 남는다. 무림의 고수가 아니라면 일단 튀어라. 그것이 목숨을 부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불륜 현장에서 도망친 남자를 그린 작품이 영국 출신의 낙서화가 뱅크시(1974~)의 ‘숨바꼭질’이다.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창문을 연 채 멀리 바라보고 있고 속옷 차림의 젊은 여자가 그의 팔을 잡고 있다. 창틀 끝에는 벌거벗은 남자가 한 팔로 매달려 있다.

중년의 남자와 금발의 여인은 나이 차가 큰 부부다. 고급스러운 양복은 남자의 부유함을 강조하는 동시에 여자가 남자의 돈을 보고 결혼했음을 암시한다. 속옷 차림의 여자와 벌거벗은 남자는 불륜 관계로, 벌거벗은 남자가 창틀 끝에 매달린 것은 불륜 현장이 남편에게 발각된 위급한 상황임을 나타낸다.

양복을 입은 남자가 손을 눈 위에 올린 동작은 현장에서 도망친 남자를 찾는 중이라는 것과 불륜 행각이 대낮에 벌어졌다는 것을 동시에 암시한다. 창틀에 매달린 남자의 축 늘어진 몸과는 대조적으로 발기된 페니스는 불륜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장치다. 벌거벗은 남자가 위를 바라보는 모습은 여자에게 빨리 상황을 정리하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뱅크시는 이 작품을 건물 외벽에 그리려고 사람들 눈을 피해 몰래 준비했다. 그림이 완성되자 시의회가 제거하려 했으나 시민들이 반대해 지금은 영국 브리스톨의 명물이 됐다.

‘손자병법’에서는 수세가 불리할 때 지형지물을 이용해 은신처를 마련하라고 했다. 불륜이 발각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배우자에게 순종적으로 대응하는 순간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고 싶지 않다면, 침대나 옷장 등 손이 닿는 물건을 이용해 흥분한 배우자의 시선을 돌린 뒤 튀어라.

훔쳐 먹은 사과는 독이 있다

(왼쪽)‘불카누스의 출현으로 놀란 마르스와 비너스’, 틴토레토, 1550~1555년, 나무에 유채, 135×198, 뮌헨 피나코텍 미술관 소장. (오른쪽)‘부르군도 공작에게 자기 정부의 나신을 보여주는 오를레앙 공작’, 들라크루아, 1825∼1826년, 32×25, 마드리드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소장.

불륜이 발각되자 지형지물을 이용해 배우자의 눈을 속이려는 여자를 그린 작품이 야코포 틴토레토(1519~1594)의 ‘불카누스의 출현으로 놀란 마르스와 비너스’다. 이 작품은 그리스·로마 신화의 한 장면을 코믹하게 표현했다.

불카누스는 아내 비너스의 불륜을 전해 듣고 현장으로 달려가 비너스의 허벅지에 걸쳐진 침대 시트를 조심스럽게 들춰본다. 비너스는 시트를 머리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비너스의 이 같은 행동은 남편을 속이는 데 자신감을 내보이는 것이며, 이와 대조적으로 불카누스의 구부정한 자세는 그가 소심하고 무능한 남편임을 암시한다.

그림 오른쪽 탁자 아래로 갑옷을 입은 마르스가 몸을 숨기고 있다. 마르스의 이런 모습은 비너스와의 불륜 현장이 불카누스에게 들키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비너스의 당당한 태도를 설명해준다. 하지만 비너스의 침대 밑에 있는 개가 마르스를 보고 짓는 통에 불륜이 발각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거울을 통해 비너스와 마르스의 모습을 비춤으로써 두 사람의 불륜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틴토레토는 인물의 행동을 통해 불륜 현장을 코믹하게 연출했다. 불륜 현장을 덮친 불카누스의 긴장감과 불륜을 은폐하려는 비너스의 뻔뻔함을 동시에 담아냈다.

도망칠 수도, 지형지물을 이용할 수도 없다면 얼굴을 가려라. 몸만 보고도 배우자임을 단번에 알아챌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배우자의 몸을 기억하는 건 신혼 때뿐이다. 그러니 먼저 얼굴을 가리고, 그다음 튀어라. 그것만이 살길이다.

불륜 현장에서 얼굴을 가린 여자를 그린 작품이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의 ‘부르군도 공작에게 자기 정부의 나신을 보여주는 오를레앙 공작’이다. 부르군도 공작은 자신의 아내와 부하 오를레앙 공작의 관계를 의심해 그의 집을 기습한다. 부르군도 공작의 방문으로 다급해진 오를레앙 공작은 침대 시트를 들어 올려 여자의 얼굴을 가린다. 부르군도 공작은 침대 위 여자가 자신의 아내인 것 같다고 의심하지만, 얼굴을 가렸으니 확신하지 못한다. 아내와 섹스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내의 몸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자가 시트 안에서 고개를 돌리는 것은 얼굴을 가리면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는 남자들의 특성을 꼬집기 위함이다.

부르군도 공작의 웃는 모습은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하고 벌거벗은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남자의 모습을 나타낸다. 오를레앙 공작이 재빠르게 여자의 얼굴을 가림으로써 위기를 모면한 것은 남자의 심리를 제대로 이용한 행동이다.

불륜으로 재미를 보고 싶다면 짧게 끝내라. 순간적으로 치고 빠지면 들키지 않는다. 불륜을 길게 끌면 머지않아 불행의 레이스를 시작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주간동아 2012.04.09 832호 (p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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