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2

2012.04.09

盧정부 vs MB정부 총리실 공직감찰 조직

조직은 같았고 기능은 달랐다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12-04-06 17: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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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의 중심에 있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 현 공직복무관리관실)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조직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있었다.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 산하 조사심의관실(이하 심의관실)이 그곳이다. 최근 총리실은 “참여정부의 심의관실 기능도 지원관실의 업무와 거의 동일했고, 인력도 40명 내외로 유사한 수준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지원관실은 국무총리실 직제 규정에 따라 공직기강 확립, 부조리 취약 분야 점검 및 제도 개선, 공직자 사기진작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2008년 발생한 촛불집회에 덴 이명박 정부가 ‘정권 안보’ 차원에서 지원관실을 설립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민간인 불법사찰 자체가 이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두 조직의 기능은 조금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지원관실은 과거 청와대 비밀경찰이라고 불렀던 ‘사직동팀’과 심의관실의 기능을 합쳐놓은 조직에 가까웠다. 심의관실보다 훨씬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 셈이다. 과거 사직동팀은 원칙적으로 3급 이상 고위 공직자 감찰을 담당한 반면, 심의관실은 그 아래 직급의 공직자를 맡았다. 심의관실이 고위 공직자의 비위 사실을 포착할 경우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실에 보고해 그 지시에 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대통령 훈령으로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실 산하에 특별감찰반(특감반)을 신설해 고위 공직자 감찰 업무를 담당하도록 했다. 과거 사직동팀의 편법 운영에 대한 비판을 감안한 조치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 사직동팀은 경찰청 조직이었지만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의 직접 지휘를 받는 별동대였다. 사직동팀에서 문제가 생기면 대통령 비서실이 ‘꼬리 자르기’를 하려는 ‘꼼수’였다.

    盧정부 vs MB정부 총리실 공직감찰 조직
    경찰 파견 인원이 최다



    탄생 배경은 달랐지만, 심의관실과 지원관실은 직제표상 구성이 비슷했다. 조사 인력 대부분을 타 기관에서 파견받아 운영한 것이나 운영 방식이 그랬다. 두 기관 모두 전체 인원 중 총리실 직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안팎에 불과했다. 먼저 심의관실의 경우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9월 조직도에 따르면, 전경옥 조사심의관(국장)과 6개 팀으로 구성됐다. 총괄팀, 경제조사1·2팀, 일반조사팀, 사회조사팀, 기획점검팀이다. 팀은 주로 담당하는 정부부처에 따라 나눴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심의관실에는 전 국장을 제외한 32명이 근무했는데, 총리실 소속 직원은 5명이었다. 부처별로는 경찰청(5명)이 가장 많았고 국세청(3명), 행정자치부(3명), 노동부(2명), 서울시(2명)가 2명 이상을 파견했다. 관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10여 개 기관도 한 명씩 인력을 파견했다. 경찰의 계급은 대부분 경감~경정이었고, 공무원은 주로 4~6급이었다.

    조직 구성이 다양하기는 지원관실도 마찬가지였다. 지원관실을 만든 지 1년쯤 후인 2009년 8월 직제표에 따르면, 지원관실의 조사인력은 총 40명이다. 이인규 지원관(국장)과 기획총괄팀, 6개의 조사팀과 기동팀으로 구성됐다. 기동팀은 지원관실 내에서 7팀이라고 불렀다.

    이들의 출신 부처를 보면, 우선 이인규 전 지원관과 사찰 수첩이 공개된 원충연 조사관(1팀), 5팀장 최성준 씨가 노동부 출신이다. 진경락 기획총괄팀장, 김화영 4팀장, 정종문 6팀장을 포함해 총리실 소속은 4명이었다. 김충곤 1팀장(전직 경찰), 이영호 2팀장을 포함해 경찰에서 파견된 인원은 총 14명(해양경찰청 소속 1명 포함)으로 가장 많았다. 행정안전부가 3명, 국세청 파견 인원도 3팀장인 이광우 서기관을 포함해 4명이었다.

    이 서기관은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낙마한 결정적 배경이 된 2008년 12월 ‘경주 골프사건’ 당시 참석자였다. 한 전 청장은 경주 골프사건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동서인 신모 씨에게 술자리에서 인사 청탁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 당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과장이던 이 서기관은 이후 강원도 영월세무서장으로 갔다가 6개월 만인 2009년 7월 지원관실 팀장으로 발령받았다.

    이외에도 지원관실에는 환경부(이진용 기동팀장 등), 관세청 등에서 파견 나온 조사관들이 함께 일했다. 지원관실의 각 팀은 심의관실 때와 마찬가지로 담당 부처를 중심으로 팀을 나눴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원관실 출신의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형식적으로는 임무를 나눴지만 고위공직자에 대한 사찰 문제에서는 영역 구분 없이 조사활동을 벌였다”고 말했다.

    盧정부 vs MB정부 총리실 공직감찰 조직
    盧정부 때도 민간인 사찰 의혹

    심의관실과 지원관실은 공직자 감찰방법에서도 별 차이가 없었다. 통상적으로 내사를 진행하고, 감시 및 미행을 하며, 비위사실을 확인하면 당사자로부터 확인서를 받아 해당 기관과 총리실에 통보하는 식이었다.

    현재 청와대와 민주통합당 등 야권은 민간인 사찰 문제를 두고 설전을 벌인다. 논란의 핵심 중 하나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민간인 사찰이 있었느냐’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민간인 사찰파문이 벌어진 직후인 2010년 11월 ‘월간조선’은 노무현 정부 총리실(심의관실)도 민간인을 사찰했고 여러 건의 청와대 하명사건을 조사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월간조선은 심의관실이 작성한 대외비 문서 수백 쪽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월간조선이 공개한 심의관실 사찰기록에는 만두소 사건 대통령님 지시사항(2004년), 청와대 하명사건 조사결과 보고(2005년) 등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 그러나 그것을 민간인 사찰 증거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월간조선은 “심의관실이 2004년 6월 공직기강업무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경찰 수사용 차적조회 단말기를 설치했으며 정권이 끝날 때까지 1645건의 차적조회를 실시했다. 문제는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 차적조회 단말기를 무단으로 설치했다는 점이다.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총리실과 경찰청은 차적정보를 제공하는 건설교통부 장관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 절차를 밟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는 총리실 산하에 심의관실 외에도 민정2비서관실을 두고 공직감찰을 수행했다. 2007년 9월 직제표에는 민정2팀이 총리실 소속인 윤○○ 국장 산하에 총괄과와 기획 1·2팀을 두고 운영한 것으로 나와 있다. 전체 인원은 12명이다.

    총리실의 힘이 가장 막강했던 때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다. 특히 실세 총리로 부르던 이해찬 총리 시절 총리실의 힘은 대단했다. 총리실 규모도 그 전보다 2배가량(약 600명) 늘어났다. 민정과 정무 기능, 특히 공직감찰 관련 부서의 인원과 기능을 강화했다.

    민간인 불법사찰의 주범으로 낙인찍혔지만, 심의관실과 지원관실은 공직자 감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직이기도 하다. 공직자들이 이 조직을 두려워한 것은 나중에 이 조직의 감찰 내용을 자신의 인사자료로 활용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경주 골프사건의 경우도 여러 기관이 한 전 청장에 대한 직무감찰을 벌이는 과정에서 확인했다는 게 정설이다.

    민간인 사찰 의혹으로 시끄럽지만 전·현직 총리실 관계자들은 심의관실이나 지원관실의 기능을 매도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공직감찰과 관련해 드러나지 않은 성과가 많았다는 것이다. 지원관실 출신의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민간인을 사찰해 논란을 일으킨 지원관실 1팀은 주로 청와대 관련 사건을 많이 맡았다. 다른 팀이 정부부처, 고위공직자를 대상으로 했던 정상적인 감찰업무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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