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8

2012.03.12

6無 세대여 소설을 읽고 용기를 가져라

  •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12-03-12 1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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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석영, 김훈의 뒤를 이어 독자의 사랑을 듬뿍 받을 남성 작가는 누구일까. 지금까지의 시장 반응만 보면 김영하와 김연수가 가장 근접해 있다. 적어도 3만~5만 명의 고정 독자를 확보한 두 작가가 최근 주목할 만한 신작 장편소설을 내놓았다.

    올해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김영하는 ‘옥수수와 나’(문학사상)가 그의 화려한 귀환을 알린다고 여겨질 만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미국 뉴욕에 가서 소설을 쓰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인데 시니컬하고 유머러스하다.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에 대해 깊이 성찰할 수밖에 없다. 그는 최근 5년 만에 ‘검은 꽃’ ‘퀴즈쇼’를 잇는 ‘고아 트릴로지’의 마지막 작품 ‘너의 목소리가 들려’(문학동네)도 내놓았다.

    김연수는 달콤한 사랑 이야기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녹여내 여성 독자의 사랑을 많이 받는 작가다. 이번에 펴낸 일곱 번째 장편소설 ‘원더보이’(문학동네)는 1984년부터 86년까지를 시간적 무대로 삼았다. 그리고 아버지를 불의의 교통사고로 잃고 어머니의 존재를 찾아나서는 열다섯 살 정훈의 이야기와 19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 등 여러 서사를 중첩시켰다. 그는 이 소설에서 1980년대가 2012년의 오늘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작금의 현실에 공포만 느끼지 말고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라고 말을 건넨다.

    그리고 이들과 맞먹는 작가로 ‘고래’ ‘고령화 가족’(이상 문학동네)을 쓴 천명관을 꼽고 싶다. 그의 신작 장편소설 ‘나의 삼촌 브루스 리’(전 2권, 예담)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압축 성장을 거치는 동안 ‘찌질한’ 인생들이 고달픈 삶을 살아내는 과정을 흡인력 있는 화법으로 담아냈다. 소설 주인공은 1970년대 영웅의 상징인 ‘이소룡’을 닮고 싶어 하는 화자 ‘나’의 삼촌이다. 삼촌은 이소룡을 추종했으나 끝내 실패하고, 엉겁결에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가 알게 된 첫사랑 여배우 원정과의 사랑을 완성한다.

    작가의 분신이자 삼촌의 일대기를 들려주는 내레이터인 ‘나’는 친구 종태와 함께 삼촌에게서 ‘이소룡’의 무술을 배운다. 나는 영어선생 올리비아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종태네 소의 고삐를 풀어놓았다가 종태의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한 살인사건의 정보를 전화로 알려주는 바람에 종태를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인간의 흥망성쇠가 얼마나 우연한 사건에 의해 이뤄지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누구나 겪을 법한 이런 이야기가 무수하게 등장하는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천명관이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무협소설과 순수문학의 경계를 넘나들고 영화적 과장이 자주 등장하는 그의 소설은 누구든 모방하기 어려운 독특함을 갖춘 ‘소설 같지 않은 소설’이다. 삼촌, 나, 종태, 원정, 도치, 토끼, 칼판장 등 캐릭터도 매우 생생하다. 이들 밑바닥 인생의 질펀한 정서와 입담에 독자는 정신없이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6無 세대여 소설을 읽고 용기를 가져라
    “산다는 것은 그저 순전히 사는 것이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이소룡의 말이며 이 소설의 주제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인생은 너무나 서글프다. 불안, 불신, 불만이 극도로 팽배한 ‘3불(不)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이들은 일자리, 소득, 집, 연애(결혼), 아이 등 5가지를 가질 수 없을 뿐 아니라 미래를 낙관할 수 없어 희망조차 가질 수 없는 ‘6무(無) 세대’로 불린다. 이 소설을 읽으면 6무 세대가 그래도 세상을 살아갈 용기라도 가져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천명관은 “모든 소설은 결국 실패담”이라고 말한다. ‘성공담’인 자기계발서에 취한 독자가 ‘실패담’을 읽으면서 세상을 살아갈 이유를 찾아보면 좋겠다.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베스트셀러 30년’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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