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8

2012.03.12

“노사모 회원인 것 같다…도저히 참을 수 없다, 빨리 기소해달라”

김재호 판사의 전화, 가벼운 부탁 아닌 종용 혹은 압력에 가까워

  •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12-03-12 09: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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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사모 회원인 것 같다…도저히 참을 수 없다, 빨리 기소해달라”

    3월 1일 기자회견에서 “남편은 기소 청탁을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는 나경원 전 의원.

    판사가 검사에게 기소를 청탁했다는 사건의 파문이 커지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3월 7일, 사건과 관련된 박은정(인천지검 부천지청), 최영운(대구지검 김천지청) 두 검사에게 서면질의서를 보냈다. 아울러 청탁 의혹을 받는 김재호 판사(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에게는 소환 통지를 했다. 김 판사는 아내인 나경원 전 의원이 자신을 비방한 누리꾼을 고소한 사건과 관련해 박 검사에게 기소를 청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 검사는 박 검사 후임으로 이 사건을 맡아 나 전 의원이 고소한 누리꾼을 기소했다.

    애초 지지부진하던 경찰 수사가 활기를 띠게 된 것은 박 검사의 진술서 덕분이다. 박 검사는 검찰을 통해 경찰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김 판사로부터 기소 청탁을 받은 게 사실”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의 진술서 전문을 단독 입수한 ‘주간동아’는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건인 만큼 국민의 알 권리와 공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해 그 내용을 가감 없이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언론이 진술 취지를 보도하긴 했지만 전문을 공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수사와 기소, 재판이 일사천리로”

    박 검사의 진술에 비춰보면 김 판사는 가벼운 부탁을 한 것이 아니라 종용 혹은 압력에 가까운 청탁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박 검사가 김 판사의 청탁 내용을 후임 검사에게 인계한 것만 봐도 그렇다. 2006년 1월 박 검사는 김 판사의 전화를 받은 지 열흘 뒤 출산휴가를 떠났고, 후임 최 검사는 그해 4월 나 전 의원을 비방한 누리꾼 김모 씨를 기소했다. 김씨는 블로그에 나 전 의원을 친일파라고 쓴 글을 올렸다가 2005년 12월 나 전 의원 측에 의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된 바 있다.

    이 사건이 불거진 것은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전 주간지 ‘시사IN’ 주진우 기자가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를 통해 “나경원 후보의 남편 김재호 판사가 검사에게 기소를 청탁했다”고 폭로한 이후다. 나 후보 측이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주 기자를 경찰에 고발하자 주 기자는 명예훼손 및 무고 혐의로 맞고소했다. 이어 2월 나꼼수가 “검찰 자체 조사에서 박은정 검사가 기소 청탁 사실을 시인했다”고 폭로함으로써 이 사건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김 판사가 전화한 이후 이 사건의 수사와 기소, 재판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형도 혐의에 비해 과중하다”며 “판검사가 의기투합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누리꾼 김씨는 기소된 지 한 달 만인 2006년 5월 1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벌금 7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해 12월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법조계 일부에서는 통상 200만 원의 벌금형을 받는 유사사건에 비춰 김씨에 대한 양형이 과중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소신에 어긋나는 행동 하지 않는 성격

    경찰 관계자는 “판검사가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한 편일 것이라는 국민의 막연한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 첫 사례가 아닌가 싶다”며 “자신을 법 위에 놓는 판검사의 특권의식이 여실히 드러난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관계자는 “경찰이 수사하는데 검찰이 자체 조사에 나선 점도 특권의식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검찰 시각은 조금 다르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간부는 “판사가 그런 전화를 한 것 자체는 잘못”이라면서도 “검사가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문제 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수통인 중견 간부는 “기소 청탁이 문제가 아니라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하다”며 “유사사건과 비교해 기소와 양형이 적절했는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판사 출신으로 김 판사 부부와 가깝다는 한 변호사는 “개인적으로 잘 아는 검사라면 전화할 수도 있다”면서 “내가 아는 김 판사는 안 되는 걸 되게 하려고 억지를 부릴 사람이 아니다”라며 김 판사를 편들었다. 반면 서울지역 한 부장판사는 몹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원칙에 어긋나는 짓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될 일이다. 사건과 관련해 검사에게 전화하는 건 판사들이 극도로 꺼리는 일이다. 그것도 알아봐달라는 정도가 아니라 처벌해달라는 취지 아닌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 검사는 선후배 사이에서 강직한 검사로 통한다. 사법시험 동기인 한 검찰 간부는 “결기가 있는 검사”라며 “소신에 어긋나는 행동은 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평했다. 사법연수원 시절 그를 애제자로 뒀다는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심지가 곧아 청탁이나 압력이 통할 성격이 아니다”라며 “나꼼수 때문에 괜찮은 검사 하나 잃게 생겼다”고 안타까워했다.

    “노사모 회원인 것 같다…도저히 참을 수 없다, 빨리 기소해달라”
    인천지방검찰청 박은정 검사입니다.

    저는 2005년 2월경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부임해 같은 해 8월경까지 공판부에서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5단독 재판부 공판검사로 근무하면서 당시 재판장이었던 김재호 판사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공판 업무를 마치고 다시 형사부 검사로 복귀하여 근무하던 중 2006년 1월 17일경 나경원 의원이 나경원 의원에 대한 친일파 재판 관련 허위사실을 유도했다는 내용으로 한 네티즌을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위반 죄로 고소한 사건을 배당받게 되었습니다.

    사건을 배당받은 며칠 후 김재호 판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 내용은 “나경원 의원이 고소한 사건이 있는데, 노사모 회원인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허위사실로 인터넷에 글을 올려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사건을 빨리 기소해달라. 기소만 해주면 내가 여기서…”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사건기록을 검토해본 결과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을 게시판 같은 곳에 올린 것으로 일단 피의자 조사를 빨리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수사관에게 피의자를 소환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피의자가 일정이 바쁘다는 이유로 소환 일정을 잡지 못하였고 제가 며칠 후 출산휴가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사건은 처리를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사건이 재배당될 것이기 때문에 재배당을 받은 후임검사님에게 포스트잇으로 사건기록 앞표지에 김재호 판사님의 부탁내용을 적어놓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김재호 판사님께도 제가 출산휴가를 가게 되어 사건처리를 하지 못하게 되었고 후임검사에게 내용을 전달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2012년 3월 5일 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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