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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피 흘리는 시리아 놓고 미·러 충돌

중동 지역 세력 확대 ‘신냉전’… 이슬람 시아파 vs 수니파 대리전쟁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피 흘리는 시리아 놓고 미·러 충돌

시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 도시 타르투스는 러시아가 해외에서 유일하게 운용하는 해군기지가 있는 곳이다. 러시아는 옛 소련 시절인 1971년 시리아로부터 이 기지를 임차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로선 중동과 지중해에서 미국을 견제하는 데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미국이 구축하려는 유럽 미사일방어(MD)체제에 대응하는 데도 유용하다. 러시아는 2009년 항공모함 등 대형 함정이 정박할 수 있도록 이 기지의 시설을 대폭 현대화했다.

시리아의 유혈사태가 내전으로 비화하자 러시아는 1월 8일 북극권에 있는 모항 무르만스크에 기항 중이던 항공모함 아드미랄 쿠즈네초프호를 이 기지에 파견했다. 쿠즈네초프호는 러시아가 보유한 하나뿐인 항공모함이다. 러시아는 쿠즈네초프호가 물자 보급을 위해 잠시 방문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을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천명하려는 목적에서였다. 러시아는 2월 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에 상정된 시리아 제재 결의안에 대해 중국과 함께 거부권을 행사했다. 러시아 하원은 2월 10일 아사드 정권 교체를 위해 외부 세력이 개입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내용의 강력한 성명을 채택하기도 했다.

러·중엔 포기 힘든 전략적 요충지

러시아가 아사드의 ‘보호자’를 자처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러시아는 냉전시대부터 시리아와 밀접한 유대 관계를 맺었다. 당시 옛 소련은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고 1970년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아사드의 아버지(하페즈 알 아사드 전 대통령)를 전폭 지원한 바 있다. 시리아는 중동 지역에서 지정학적 요충지다. 레바논, 이스라엘, 이라크, 요르단, 터키와 국경을 맞댄 시리아는 이란, 레바논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 등과 유대를 강화해왔다. 시리아는 또 과거 아랍 통일운동에서 중심 구실을 하고, 아랍연맹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시리아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시리아는 또 러시아의 주요 무기 수입국이다. 러시아가 지난 10년간 수출한 무기 중 10%가 시리아에 공급됐다. 현재 러시아가 시리아에 팔기로 계약하거나 논의 중인 무기 규모만 50억 달러(약 5조6000억 원)다. 이미 국제사회의 이란 제재로 130억 달러, 리비아와의 계약 취소로 45억 달러 상당의 무기를 수출하지 못해 손해 본 러시아로선 시리아가 놓칠 수 없는 ‘돈줄’인 셈이다.



러시아는 시리아에서 시민혁명이 성공할 경우, 무슬림이 많이 사는 체첸을 비롯해 다게스탄, 압하지야, 잉구세티아 등의 분리 독립운동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해왔다. 러시아는 아랍 시민혁명의 ‘전염’ 가능성을 민감하게 경계한다. 대선에서 세 번째 대통령직을 노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로서는 아사드까지 축출될 경우 자칫 자신에게 불리한 분위기가 조성될 수도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푸틴 총리는 대선 승리를 위해 반미주의를 앞세우면서 은근히 러시아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아사드를 지원하는 것이 자신이 집권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본 것이다. 푸틴은 2월 8일 종교지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동 국가에서 일어난 것과 유사한 혼란 사태가 러시아에서 벌어져선 안 된다”면서 “아랍의 봄으로 부르는 저항 운동의 배후에는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미국이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중국과 힘을 합쳐 미국에 맞서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월 3일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에 긴급 전화를 걸어, 유엔안보리의 시리아 제재 결의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합의하기도 했다.

중국은 러시아와 같은 이유로 아사드를 지원한다. 시리아의 정권교체를 허용할 경우 자칫 아랍 시민혁명이 확산되고 결과적으로 자국을 위협하리라고 보는 것이다. 중국은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축출됨에 따라 북아프리카에서 리비아라는 교두보를 상실했다. 아사드마저 쫓겨날 경우, 중동 지역에서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국가는 이란밖에 남지 않는다. 중동에서 미국 등 서방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겠다는 전략적 목표를 러시아와 중국이 공유한 것이다.

다만 중국은 러시아와 달리 아랍 국가를 의식해 아사드를 지지하는 의사를 노골적으로 표하지는 않는다. 러시아는 중동 지역에서 에너지를 수입할 필요가 없지만,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부터 원유와 천연가스를 수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리아 유혈사태는 결국 미국과 러시아 간 ‘새로운 냉전’을 촉발시킨 셈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2009년 4월 정상회담에서 컴퓨터를 초기 상태로 되돌린다는 뜻의 ‘리셋(reset·재설정)’관계에 합의하면서 전략무기감축협정에 서명하는 등 협력 분위기를 조성했다. 하지만 MD체제 구축에 대한 의견 차이로 양국 관계가 소원해지다가 시리아 유혈사태를 맞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중동을 잇는 ‘초승달 벨트’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러시아와 중국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 거부권 행사에 대해 “독재자를 지원하는 행태는 매우 치졸하다”며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아사드는 자신의 국민을 죽이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권좌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시리아에 민주 체제가 들어설 경우 핵 개발을 추진하는 이란에 대한 견제는 물론, 이스라엘 안보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시리아 유혈사태는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 간 갈등과 대립도 증폭시킨다. 수니파는 시리아 전체 인구 2200만 명 중 74%가 따르는 다수파지만, 통치는 12%밖에 안 되는 알라위파가 하고 있다. 알라위파는 이슬람 시아파의 분파 중 하나다. 시아파는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마호메트)의 사위 알리(제4대 칼리프)를 정통 칼리프(통치자)로 보는데, 알라위파는 거기서 더 나아가 알리를 신격화하고 숭배하는 교파다. 중동 지역의 시아파는 이란을 비롯해 이라크 집권 세력(전체 인구 60%가 시아파)과 시리아, 헤즈볼라로 이어지는 일종의 ‘초승달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시아파 국가인 이란은 시리아에서 아사드가 축출될 경우 가장 중요한 동맹세력을 잃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란은 아사드에 무기를 비롯한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한편 수니파 국가는 시리아 유혈사태로 수니파 주민이 대거 희생되는 것을 더는 묵과할 수 없는 처지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바레인 시아파의 민주화 시위를 사주해 수니파로부터 정권 탈취를 기도했던 이란을 견제하려면 시리아에서 아사드를 축출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본다. 이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는 형제국가인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 아랍연맹 등과 합세해 시리아 유혈사태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아랍연맹이 유엔 안보리에 평화유지군 파병을 공식 요청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아랍연맹 회원국 대부분이 수니파 국가이며 이란은 회원국이 아니다. 수니파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이 시리아를 놓고 일종의 ‘대리전쟁(proxy war)’을 벌이는 셈이다. 시리아 유혈사태는 이런 국제적 변수로 더 악화할 개연성이 크다.



주간동아 2012.02.20 825호 (p52~53)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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