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5

2012.02.20

파란 싹, 노란 꽃 피우기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2-02-17 16: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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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라토너가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숨이 막히고 다리가 철근처럼 무거워져 더는 달리기 힘든 한계 상태를 경험한다고 합니다. 그 시점을 일컬어 ‘사점(死點)’이라고 한다죠. 마라토너가 사점에서 쓰러지면 우승은 물론 완주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사점을 돌파해낸 선수는 의지와 체력이 한 단계 성장해 더 좋은 기록이라는 보상을 받습니다.

    비유하자면 한국 정치에서 ‘지역주의’는 사점과도 같습니다. 이성과 논리가 뚫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 맹목적 지역주의는 경쟁과 견제,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질식시킵니다. 일부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수십 년간 독주해온 것을 정상적인 민주주의라 얘기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그 대신 ‘사점’ 같은 지역주의를 극복해내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한 단계 더 성숙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젠 지역주의가 예전만큼 기승을 부리지 않는다고 합니다만, 19대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이 공천신청을 마감한 결과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새누리당은 평균 3.96대 1의 공천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이 가운데 대구(6.58대 1)와 부산(5.44대 1) 등 전통적으로 강세인 지역에 공천신청자가 몰렸습니다. 민주통합당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전국 평균 2.91대 1의 공천경쟁률을 기록한 가운데, 전북이 4.45대 1로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였습니다. 대구(3개)와 경북(6개)에는 신청자가 없는 지역구도 적지 않았습니다.

    파란 싹, 노란 꽃 피우기
    이 같은 결과는 예비정치인이 자신이 속한 정당이 어느 지역에 더 유리한지를 따져 공천을 신청했다는 반증입니다. ‘정치를 바꾸겠다’고 나선 예비정치인조차 여전히 ‘정당의 특정 지역 유불리’를 따져 공천신청을 하는 행태는 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지역주의라는 한국 정치의 ‘사점’을 극복하려 하기보다 일신의 영달에 더 관심을 두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문득 ‘인지도가 높고 스스로 유능하다고 생각하는 예비정치인이 어려운 지역에 더 많이 도전했더라면 지역주의가 지금까지 잔존할 수 있었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도 들더군요.



    19대 총선에 도전하는 수많은 예비후보 가운데는 상대적으로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택한 이도 없지 않습니다(관련기사 16쪽). 지역주의에 맞서 ‘파란 싹’과 ‘노란 꽃’을 피워보겠다는 그들의 뜻이 상대적으로 숭고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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