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1

2012.01.16

돈 봉투와 마시멜로 그리고 국민의 선택

  •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의학박사 psysohn@chollian.net

    입력2012-01-16 15: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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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봉투와 마시멜로 그리고 국민의 선택

    당장의 이익에 급급해 검은 돈을 뿌리치지 못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의 ‘전당대회 돈 봉투’ 폭로 이후 정치권에 엄청난 파장이 일고 있다. 돈 봉투의 출처로 지목된 원로 정치인의 정치 생명이 위태로워졌고, 한나라당 전체 이미지가 또 한 번 실추되는 등 말 한마디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편으론 민주당에서도 돈 봉투 의혹이 제기되는 등 여야 할 것 없이 이전투구 양상이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익’에 대해 생각했다. 흔히 “당장의 이익과 나중의 이익을 잘 따져보자”는 말을 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에 현혹되지 말고 나중에 생길 이익을 고려해 정직하게 또는 절제의 미덕을 갖고 현명하게 언행하자는 얘기다. 하지만 사람들은 눈앞의 이익에 더 쉽게 흔들린다.

    예를 들어보자. 필자 사무실 근처 한 식당 얘기다. 2011년 초 문을 연 이 식당은 개업기념으로 파격적인 가격에 점심식사를 제공했다. 전단지가 돌자 구름처럼 손님이 몰려들었다. 정말 전단지 내용대로일까 하는 호기심과 어려운 주머니 사정에 한 푼이라도 아껴보자는 절약정신 때문이었으리라. 문제는 음식 질이었다. 값싼 재료에 범벅된 온갖 조미료 맛이 사람들의 이맛살을 구겼다. 시간이 흐르면서 손님이 줄기 시작해 파격적인 가격임에도 그 식당은 1년이 채 되지 않아 문을 닫았다.

    눈앞 이익에 현혹되면 소탐대실

    반면 필자의 단골 식당은 주인아주머니 혼자서 음식을 만드는데 좋은 식자재를 쓰는 데다 양이 푸짐하고 맛도 좋아, 장소가 외지고 자리가 불편한데도 늘 손님으로 북적인다. 주인아주머니 얘기에 따르면, 이 식당도 처음 1년은 손님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정직하게 장사한다고 입소문이 나고, 우연히 들렀던 손님이 다시 찾으면서 단골이 생겼다. 주인아주머니도 한 번 손님상에 내놓았던 반찬을 다시 쓰고, 값싼 재료를 구입하고 싶은 유혹을 여러 번 느꼈지만, 그랬다간 손님들이 외면할 거란 생각에 꿋꿋이 버텼다고 한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개인병원을 열어 꽤 성공한 의사가 있다. 개원 후 몇 년이 지나 인테리어를 새로 했다. 그랬더니 건물 주인이 월 임대료를 터무니없이 높여달라고 요구했다. 건물 주인 역시 근처 다른 건물에서 개인병원을 하는 의사였다. 같은 의사라 병원 속사정을 너무 잘 알았던 게 문제였다. 세입자가 단골 환자를 확보하고, 인테리어까지 새로 한 마당에 다른 곳으로 옮겨 가지는 못하리라 확신한 것이다. 건물 주인의 예상대로 세 든 의사는 병원을 옮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임대료를 올려주었다.

    문제는 2년 후 다시 불거졌다. 건물 주인이 또다시 임대료 인상을 요구한 것이다. 세 든 의사는 미련 없이 병원을 옮겼다. 다른 건물로 병원을 옮긴 후 전보다 환자가 더 많아졌고, 진료도 마음 편히 하고 있다. 건물 주인은 인근에 악덕 건물주로 소문났고, 병원이 나간 후 임대가 되지 않아 오랫동안 공실 상태였다가 얼마 전에야 임대료를 많이 낮춰 세입자를 구했다고 한다. 눈앞의 이익을 좇다가 훗날의 이익을 놓친 대표적 사례이자 소탐대실의 전형이다. 더 큰 손실은 의사 사회에서 후배 등치는 탐욕스러운 사람으로 낙인찍힌 불명예라고 할 수 있다.

    정치인의 경우 자신에게 돈 봉투가 들어왔을 때 어떤 생각과 판단을 할까. 현재 정치권 행태로 미뤄볼 때 자신만의 셈법으로 봉투를 받고도 뒤탈이 없을 것 같으면 챙길 가능성이 크다. 돈 액수에 따라 받고 안 받고를 결정하는 사람도 있을 터. 돈이 주는 당장의 이익만 따진다면 충분히 고민할 만할 것이다. 관례라 생각해 아무런 거리낌도, 고민도 없이 받아 챙긴다면 그는 이미 타락한 사람이다. 반면, 불법적이거나 뇌물 또는 향응의 성격이 있는 돈은 단 1원이라도 절대 받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은 훗날의 이익을 도모하는 사람이다. 처음부터 훗날의 이익을 생각해 그와 같이 행동한다면 정말 현명한 사람이요, 훗날의 이익을 따져보지 않고도 그와 같이 행동한다면 정말 깨끗한 사람이다.

    국민은 안 보는 척하면서 다 보고 있다. 국민이 아니어도 동료 정치인, 보좌관, 사무직원, 지지자 등 관련자들은 알고 있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혼자 화장실에서 볼일 보며 한 행동이나 말 정도가 겨우 비밀 유지가 될 것이다. 비밀은 결국 알려지게 돼 있다. 혼자 몰래 돈을 받았다고 비밀이 지켜질 수는 없는 법이다. 돈을 준 사람은 분명 알고 있기에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정치인은 ‘만족 지연’시키는 자질 필요

    돈 봉투와 마시멜로 그리고 국민의 선택

    ‘전당대회 돈 봉투’를 폭로한 후 1월 9일 검찰에 출두한 고승덕 의원(가운데).

    심리학에선 흔히 알려진 마시멜로 실험이란 게 있다. 미국의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인 월터 미셸은 네 살배기 아이들에게 달콤한 마시멜로를 하나씩 주면서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먹지 않고 기다리면 한 개를 더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15분 동안 아이들을 방에 홀로 남겨둔 채 행동을 관찰하니 곧바로 마시멜로를 먹는 아이에서부터 혼잣말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등의 행동으로 유혹을 참는 아이까지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프로이트는 이와 같이 당장의 만족을 지연시키는 능력을 ‘지연 만족(delayed gratification)’이라 표현했고, 개인의 인격 발달에 상당히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비록 많은 사람이 이른바 ‘쾌락 원칙(pleasure principle)’에 따라 본능이나 쾌락에 충실한 언행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숙하고 건강한 인격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여하튼 결과적으로 당장의 욕구를 참는 데 성공해 마시멜로 두 개를 얻은 아이들은 청소년이 된 후에도 높은 성취 능력을 보였고, 자기 확신이 강했으며, 좌절에 대처하는 능력도 뛰어나다는 특성을 보였다. 하지만 곧바로 마시멜로를 먹었던 3분의 1가량의 아이는 좌절에 대한 인내력이 약하고, 자신을 쓸모없거나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성향이 강했으며, 화를 잘 내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 말다툼이나 싸움에 휩싸이는 경향도 강했다. 다른 연구 결과에서도 참을성 있는 아이는 성인이 된 뒤 비만 또는 약물 중독으로 고생하거나 이혼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대한민국 정치인은 눈앞의 이익과 유혹을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이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서 수많은 정치인이 우리 앞에 등장할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유권자의 표심을 잡는 데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불공정한 언행을 하거나, 참을성 없는 인격을 드러내 보이거나, 이익 쟁취를 위해 비겁한 과정을 밟는다면 국민 선택이라는 나중의 이익을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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