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1

2012.01.16

진짜 목표에 집중하면 끌려다니지 않는다

갑을 설득하는 을의 협상법

  • 김한솔 HSG 휴먼솔루션그룹 수석연구원 hskim@hsg.or.kr

    입력2012-01-16 13: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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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의 신상품 프로모션 프로젝트를 따낸 방 과장. 프로젝트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할 일의 종류는 물론, 얻을 이익의 크기도 많이 차이 날 것 같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익을 확보하려고 예전 자료들을 뒤져보는데, 그 모습을 보던 팀장이 한마디 한다.

    “뭘 그렇게 열심히 해. 어차피 그쪽에서 하라는 대로 하게 될 거야.”

    팀장의 한마디에 갑자기 오기가 생긴 방 과장.

    “그래도 할 말은 해야죠. 작은 고추가 맵다는 걸 보여주겠습니다.”

    “할 말 하다가 프로젝트 날려 먹지 말고, 조심해.”



    빈말은 아닌 것 같은 팀장의 엄포에 기가 꺾인 방 과장. 나보다 힘센 상대와의 협상, 정말 숙이고 들어가는 것만이 답일까.

    협상과 관계된 교육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묻는 질문이 있다. “갑을 관계에서는 ‘을’이 어떻게 협상해야 ‘갑’을 이길 수 있을까요?”라는 것이다. 힘 있는 자와 힘없는 자의 구분이 명확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 질문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힘센 갑에게 당당히 맞서려면 을에게는 엄청난 협상력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협상에서 을이 갑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미안한 말이지만, 없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을은 협상에서 갑을 이기려 해선 안 된다. 이길 수 없어서가 아니다. 협상에서 이기려 하는 순간 더 큰 것을 놓치기 때문이다.

    납품단가 협상을 생각해보자. 납품업체는 개당 1만 원은 돼야 생산원가를 맞출 수 있다. 하지만 갑인 구매업체는 8000원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이 상황에서 을이 이기려면, 두 가격 사이의 중간지점인 9000원보다 좀 더 많이 받으면 될까. 글쎄, 그런 결과를 얻기 쉽지 않을뿐더러 9500원을 받아도 원가에 못 미칠 수 있다.

    그렇다면 처음 요구보다 납품물량을 늘리면 어떨까. 혹은 대금을 현금으로 받으면? 만일 납품일정을 미루면 특근수당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럼 갑이 애초에 원했던 8000원만 받아도 이익이 날 수 있다. 단가에서는 완전히 패한 듯하지만 이 협상이 실패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협상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상대로부터 얻어내면 그만이다. 이번 협상에서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 자신의 최종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 을이 갑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는 을의 머릿속에 ‘우리는 갑을관계’라는 생각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갑과 대등한 관계에 서고 싶거든 갑과 을이라는 단어 자체를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관계는 절대 뒤집어질 수 없다. 협상에서 좋은 결과를 내기는커녕 끌려다니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예를 들어보자. 급히 대출을 받아야 하는 당신이 은행에 갔다. 상식적으로는 대출 여부를 결정해줄 은행원이 갑이고, 그의 도움이 필요한 당신이 을이다. 하지만 꼭 그렇기만 할까. 만일 오늘 그 은행원이 “대출 실적이 왜 이렇게 부진해?”라고 상사에게 지적받았거나 그 지점의 이번 달 평가지표가 대출 실적 올리기라면 아마도 그 은행원은 대출 결정을 망설이는 당신 앞에서 당신보다 훨씬 더 초조함을 느낄 것이다. 당신이 큰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갑이 실제로는 진짜 갑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갑과의 협상을 앞두고 있는가. 먼저 이기겠다는 생각을 버려라. 줄 수 있는 것은 주고 필요한 것은 얻겠다는 당당한 마음가짐을 갖는 것, 그것이 협상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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