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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2012 국민은 싹 바꾸라지만… 현역은 프리미엄 정치 신인은 ‘족쇄’ 01

‘물갈이 열망’ 신인의 좌절 총선은 ‘불공정 게임’

현역 프리미엄 여전…결국 국민 참여가 최선의 해결책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물갈이 열망’ 신인의 좌절 총선은 ‘불공정 게임’

‘물갈이 열망’ 신인의 좌절 총선은 ‘불공정 게임’

2008년 총선 유세 장면.

4월 총선에서 수도권에 출마할 계획인 A변호사는 총선을 1년여 앞둔 2011년 초부터 일찌감치 지역을 돌며 ‘변호사 명함’을 돌렸다. 현행 공직선거법(254조)상 총선 120일 전인 2011년 12월 13일 후보등록을 하기 전까지 정치 신인은 ‘선거용 명함’을 돌릴 수 없다.

A변호사는 “선거용이 아니라 현재 하는 일(변호사)과 관련해 명함을 돌리는 일은 괜찮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앙선관위) 해석은 다르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선거에 출마하려는 뜻을 갖고 당선에 도움이 될 목적으로 후보등록 이전에 유권자에게 무작위로 명함을 돌렸다면 선거운동인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돈은 막고 입은 푼다’는 취지로 제정한 우리나라 선거법은 이처럼 사전 선거운동을 엄격히 금지한다. 선거 과열을 예방하려 선거운동 기간을 정해놓았지만, 정작 ‘금배지’의 꿈을 꾸는 정치 신인에게는 ‘족쇄’가 되곤 한다.

2011년 8월부터 고향인 전북 고창·부안군에 내려가 19대 총선을 준비해온 강병원(41) 씨는 “(2011년 12월 13일) 예비후보로 등록하기 전까지는 명함 하나도 맘 놓고 돌릴 수 없는 현실에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며 “후보등록 이후 떳떳하게 명함을 돌릴 수 있어 마음이 한결 편하다”고 말했다.

예비후보 등록 전까지 명함도 맘대로 돌리지 못하는 신인과 대조적으로 현역 국회의원은 선거일 전 90일(2012년 총선 때는 1월 12일)까지 ‘의정보고회’라는 프리미엄을 톡톡히 누린다.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유권자에게 ‘이런 성과를 거뒀다’는 것을 보고하는 의정보고회는 사실상 현역의원에게 좋은 사전 선거운동 수단이 된다.



신인은 대거 예비후보 등록, 현역은 최대한 늦춰

수도권 출마를 준비 중인 B씨는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명함 돌리는 수준의 선거운동을 하느라 추위를 견디면서 지역을 돌아다니는데 현역(의원)은 따뜻한 강당에 유권자를 불러 모아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의정보고회를 수시로 연다”며 “의정보고회는 현역 기득권, 프리미엄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실감케 한다”고 말했다.

물론 예비후보로 등록한 정치 신인도 다양한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선거사무소를 열고, 현수막을 내걸 수 있으며, 선거사무장을 포함해 3명까지 선거사무 관계자를 선임해 함께 선거운동에 나설 수도 있다. 어깨띠를 두르고 주요 학력과 경력을 기록한 명함도 배부할 수 있다.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통해 지지를 호소할 수도 있다. 또 자신이 출마하고자 하는 지역의 10분의 1 세대까지 홍보물 발송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정치 신인은 예비후보 등록 이후 허용된 선거운동마저도 현역의원이 지역을 돌며 여는 의정보고회에 비해 양적, 질적으로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역의원은 의정보고 자료를 보고회를 통하든, 우편으로 보내든 유권자 전체에게 알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정치 신인은 예비후보 등록 개시 직후 대거 등록하는 데 반해, 현역의원은 최대한 늦춰서 예비후보 등록을 한다. 유권자를 접촉하는 방식만 놓고 보면 예비후보 등록(선거일 120일 전) 때부터 의정보고 금지 기간(선거일 90일 전)까지 30일간 현역이 그랜저 타고 선거운동을 할 때, 신인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셈이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호별 방문을 금지(공직선거법 106조)한 것도 인지도가 낮은 신인에게는 불리한 조건이다. 호별 방문 금지는 과거 집집마다 후보가 돌아다니면서 ‘돈 봉투’를 돌리는 금권선거가 판치던 상황을 막으려 도입한 것인데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입’은 풀었지만 ‘발’은 여전히 선거법으로 묶은 셈이다.

정치 전문가들은 “국민 의식이 성숙했고, 돈 안 쓰는 공영선거가 정착된 만큼 이제는 호별 방문을 풀어도 될 때”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은 호별 방문 금지 규제를 풀 뜻이 없어 보인다. 유권자 접촉 수단을 늘리면 ‘누가 더 발로 많이 뛰었느냐’에 따라 당락이 갈릴 수 있어 정치 신인과 무한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국민 여론이 호별 방문 허용을 원하면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면 된다”며 “금품 살포 가능성은 낮아졌다고 하지만 아직 호별 방문에 따른 사생활 침해 우려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루 24시간이 짧기만 하다”

‘물갈이 열망’ 신인의 좌절 총선은 ‘불공정 게임’

2011년 12월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 현역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인파가 몰려 성황을 이뤘다.

결국 현행 선거법상 정치 신인은 법이 허용한 한도 내에서 지역 상가나 여러 단체를 돌며 얼굴 알리기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울 서대문구을에서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인 김영호(45) 민주통합당 지역위원장은 하루에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 10여 개를 돌며 밑바닥을 훑는다.

“아침 6시면 일어나 아침운동 나온 시민들께 인사하러 갑니다. 7시에는 지방으로 산행을 떠나는 ‘산악회’ 차량 출발지로 가서 인사를 드리죠. 하루에 보통 3~4대, 주말에는 5대 이상의 대형버스가 출발합니다. 아침식사 후에는 지역구 내 여러 단체를 돌며 인사를 합니다. 동마다 통장협의회, 방위협의회, 새마을부녀회, 자율방범대, 자유총연맹 등이 조직돼 있어 크고 작은 단체가 지역구에만 70여 곳 있습니다. 오전과 오후에 짬이 나는 대로 돌며 인사를 드리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갑니다.”

그는 하루 24시간이 짧기만 하다며, 특히 각종 행사가 몰린 주말에는 평일보다 더 바쁘게 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충북 보은옥천영동에 출사표를 던진 박덕흠(59) 예비후보(한나라당)는 대한전문건설협회장을 두 번 지냈음에도 지역에서는 낮은 인지도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박 후보는 “지역구가 농촌이고 선거구가 3개 군에 달해 하루에 만날 수 있는 지역주민 수가 제한적”이라며 “현역의원은 지방자치단체와 면밀한 관계를 형성하지만 정치 신인은 이런 점에서 출발선이 다르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다만 그는 “기존 정치인에게 실망하고 새로운 정치를 기대하는 분이 많아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지명도가 낮은 정치 신인은 자신의 몸을 밑천 삼아 선거에 대한 열정을 불사른다. 그렇지만 선거일 120일 전부터 본격적으로 선거에 뛰어들어서는 현역에 비해 낮은 인지도를 극복하기 어렵다.

여론조사 기관 디오피니언의 백왕순 부소장은 “예비후보 등록 이후 선거운동을 한다 해도 본선에 앞서 경선과 공천 등 예선 일정까지 감안하면 120일 동안 무명의 정치 신인이 지역주민에게 얼마나 자신을 알릴 수 있겠느냐”며 “그래서 신인은 늘 시간에 쫓긴다”고 말했다.

실제 정치 신인은 본선은 물론 공천 과정에서부터 낮은 인지도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다. 공천 관련 여론조사는 후보자 이름을 나열한 뒤 ‘어느 후보를 지지하느냐’고 묻는 식으로 진행하는데, 응답자는 대부분 이름이 익숙한 후보를 꼽는다. 이 때문에 선거 전문가들은 “인지도 차이가 큰 후보자를 여럿 나열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천 과정에 반영하는 것은 그 자체로 후보자 간 차별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폴앤폴의 조용휴 대표는 “대선처럼 국민 누구나 알 만한 후보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는 지지도로서 유의미하지만, 총선처럼 적은 지역 단위에서 몇몇 후보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는 지지도 조사라기보다 인지도 조사에 가깝다”며 “공천 과정에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하는 것은 인지도가 높은 현역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민이 대폭 ‘물갈이’를 원해도 정작 신인은 선거제도와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이런 뜻에 부응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그렇다면 정치 신인이 현실의 벽을 뛰어넘을 묘책은 없을까. 다수의 정치 전문가는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에 해답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시사평론가 이종훈 박사는 “국민이 원하는 물갈이가 선거를 통해 현실화하려면 공천 과정에서부터 유권자의 참여가 폭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10월 3일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예로 들었다.

“경선 당일 오전에는 민주당에서 당원을 대거 동원했지만, 오후에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경선장에 모여든 시민의 힘으로 박원순 후보를 만들어냈고, 결국 당선시켰다. 총선도 마찬가지다. 완전경선제로 총선에 나설 후보를 정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조직 동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경선에 참여한 시민의 수가 몇백 명이 아니라 몇천 명 수준이 되면 동원한 인원으로 경선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 결국 공천 과정에 시민이 얼마나 적극 참여하느냐에 따라 국민이 원하는 물갈이가 이뤄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정치 신인의 낮은 인지도 문제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정치 신인 육성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준기 경희대 명예교수는 “상향식 공천이 일상화하려면 정치에 뜻있는 많은 신인이 일찌감치 지역에 내려가 활동한 뒤 단계를 밟아 성장해야 한다. 그래야 유력자의 도움을 받아 낙하산 공천을 받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처럼 중앙당에서 일괄적으로 후보자를 정하는 하향식 공천 구조로는 새 인물을 키우지 못한다”며 “절차적, 제도적 선거 민주화는 이뤘지만 정당이 아직 새 인물을 키울 청사진이 없어 여전히 신인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물갈이 열망’ 신인의 좌절 총선은 ‘불공정 게임’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11년 12월 9일 오전 경기 과천 청사에서 공명선거 홍보대사 위촉식을 가졌다. 왼쪽부터 배현진 아나운서, 베트남 출신 다문화가정 주부 오안희 씨, 개그맨 김병만, 강경근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성악가 조수미, 지체장애인 문형철 씨, 조수빈·박선영 아나운서.

체계적 정치 신인 육성 프로그램 필요

여야는 “국민에게 후보 선출의 권한을 돌려주겠다”며 공천 과정에서부터 유권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완전경선과 오픈 프라이머리 등은 잘만 활용하면 국민이 총선 선택지를 직접 정하는 장점이 있다.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고군분투하는 정치 신인을 총선 무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힘은 결국 국민의 참여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투표장에서 여야가 짜놓은 선택지를 받아들고 ‘마땅한 후보가 없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내 맘에 맞는 후보가 총선에 나설 수 있도록 예선에서부터 유권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국민이 원하는 ‘물갈이’를 실현하는 지름길”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종훈 박사는 “선거제도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유권자 참여’ 없이는 ‘앙꼬 없는 찐빵’이 될 수밖에 없다”며 “총선에서 ‘물갈이’를 원한다면, 유권자가 먼저 후보자 선출 과정에서부터 ‘닥치고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민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후보자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정치 신인에 대한 선거운동 규제를 푸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주간동아 2012.01.02 819호 (p14~17)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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