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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 고수’ 이건의 도발 <마지막회>

투자에 재능이 넘친다고? ‘엉덩이’를 믿고 참아주세요

공격적 투자와 방어적 투자

  • 이건 ‘대한민국 1%가 되는 투자의 기술’ 저자 keonlee@empas.com

투자에 재능이 넘친다고? ‘엉덩이’를 믿고 참아주세요

투자에 재능이 넘친다고? ‘엉덩이’를 믿고 참아주세요
사슴 밤비가 숲에서 새순을 먹다가 뿔이 나뭇가지에 얽혔다. 머리를 꼼짝달싹 못 하게 된 밤비는 당황했다. 때마침 바람결에 실려 온 사자 냄새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영리한 밤비는 정신을 가다듬은 다음, 특유의 억센 다리에 체중을 실어 힘차게 몸을 빼냈다. 나뭇가지들이 우두둑 부러져 나갔고, 풀려난 밤비는 다가오는 사자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식은땀을 말리면서 밤비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렸다.

“뿔을 가꾸는 대신 다리 힘을 키워라. 뿔은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나뭇가지에 얽히면 목숨만 위태롭게 한다. 그러나 억센 다리는 볼품은 없어도 언제나 네 목숨을 지켜준단다.”

뿔 대신 다리 가꾸는 ‘밤비의 교훈’

밤비는 요즘 사슴들이 열광하는 ‘예쁜 뿔 경연대회’를 생각할 때마다 분노가 치민다. 이 대회의 최대 후원자가 사자와 하이에나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런데도 사슴들은 크고 화려한 뿔과 가냘픈 다리를 만들어 대회에서 입상하려고 모두 안달이다. 입상만 하면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기 때문이다. 입상한 사슴은 책도 내고 방송에도 출연하며 강연회까지 열어 두둑한 수입을 올린다. 반면 할아버지 말씀에 따라 뿔 대신 다리에 공을 들이는 밤비는 동료 사슴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신세가 됐다.

‘예쁜 뿔 경연대회’가 동물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통계에도 나타난다. 평균수명이 사자는 늘어났고 사슴은 줄어들었다. 특히 늙은 사자의 수명이 눈에 띄게 증가했는데, 사슴 사냥이 전보다 쉬워진 덕분이다. 요즘 밤비의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이유기도 하다.



위의 사례를 투자에 적용해보자. 요즘 대중매체는 얄팍하게 머리를 굴려 돈 버는 방법을 끊임없이 쏟아낸다. 금융회사들은 막대한 상금을 걸고 모의투자대회도 개최한다. 순진한 개미들은 멋도 모르고 휩쓸려 다니다가 애써 모은 재산을 탕진한다. 그 덕에 금융회사들은 두둑한 수수료로 배를 채운다. 초보자가 굴리는 얄팍한 머리는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들은 야성적 본능을 극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인간의 두뇌 구조가 투자에 부적합하다는 사실을 도무지 헤아리지 못한다.

초보자가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묵직한 엉덩이로 끝까지 버티는 방법뿐이다. 판단도 하지 않고 거래도 하지 않는 방법으로 야성적 본능과의 대결을 아예 피하는 것이다. 단지 시장수익률을 고스란히 챙기는 것만으로도 대부분 전문가를 누를 수 있다. 어떤 유혹에도 들썩거리지 않을 정도로 엉덩이를 묵직하게 단련해야 한다. 물론 때로는 사슴 밤비처럼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필자는 투자를 공격적 투자와 방어적 투자로 구분한다. 방어적 투자는 시장수익률에 만족하면서 자기 재산을 안전하게 지키는 데 주력하는 소극적 투자다. 반면 공격적 투자는 시장수익률 초과를 목표로 삼아, 손실 위험을 무릅쓰고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투자다. 방어적 투자는 특별한 지식이나 재능이 없어도 인내심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공격적 투자는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 충분히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손실 볼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방어적 투자도 처음부터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절차도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들어 보통 사람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1975년 존 보글이 최초의 인덱스펀드를 개발하면서부터 초보자와 소액투자자도 손쉽게 방어적 투자를 할 수 있게 됐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새뮤얼슨 MIT 교수는 “존 보글이 개발한 인덱스펀드는 바퀴와 알파벳 발명만큼이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상장지수펀드(ETF)로도 인덱스펀드에 투자할 수 있다. 마치 과거에 흙먼지 날리던 거친 길을 덜컹거리는 마차로 여행하다가, 이제는 여객기에 몸을 싣고 품위 있게 여행하는 것처럼 편해졌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잘못 타거나, 환승 공항에서 엉뚱한 곳으로 새버리지만 않는다면, 백전노장의 노련한 기장이 목적지까지 안전하고도 편안하게 모셔다 준다.

자신의 재능은 자기 분야에서 발휘를

투자에 재능이 넘친다고? ‘엉덩이’를 믿고 참아주세요
여객기로 가는 방어적 투자에 만족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여객기는 주요 공항을 경유해야 하므로 직선코스가 아니며, 속도도 음속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초음속 전투기를 선택하면 된다. 다만, 자신이 직접 조종해야 한다. 전투기 조종법을 손수 익히고, 경로도 미리 파악해놓아야 한다.

때로는 갑자기 나타나는 적기와 공중전도 벌여야 한다. 유쾌하지 않은 만일의 사태에도 대비해야 한다. 눈이 침침한 노인이나 현기증에 시달리는 허약 체질은 삼가야 한다. 아무리 급해도 착륙법도 익히지 않은 채 이륙해서는 곤란하다. 대중매체는 공격적 투자를 만만하게 보도한다. 그렇다면 특종 보도도 식은 죽 먹기다. 단언컨대 공격적 투자야말로 심사숙고해서 결정할 일이다. 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성공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방어적 투자는 방식이 모두 비슷하지만, 공격적 투자는 방식이 사람 얼굴만큼이나 다양하다. 거장들의 투자 기법을 살펴보아도 그야말로 가지각색이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 기법을 선택하고 개발했기 때문이다. 거장의 기법을 그대로 따라 해서도 성공할 수 있다면, 세상은 성공한 투자자로 넘쳐날 것이다. 거장도 자신만의 기법을 개발하기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투자는 결국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므로, 자신에 맞춰 기법을 개발해나가야 한다.

투자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아마도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작업이기 때문이리라. ‘장래에 더 많은 가치를 얻으려고 지금 일정 가치를 투입하는 행위’를 폭넓게 투자로 정의한다면, 우리는 증권에 투자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현명하게 투자할 수 있다. 학생이라면 공부가 가장 좋은 투자며, 직장인이라면 직장에서 실력을 쌓고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가장 좋은 투자다.

만일 김연아나 박태환이 쉽게 돈 벌겠다고 증권투자에 몰두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두 사람이 가세하지 않더라도 증권 분야에는 투자자(투기자)가 차고 넘칠 정도로 많다. 확률로 볼 때 성공 가능성은 희박했을 것이다. 현명하게도 두 사람은 자신의 재능을 잘 파악했고, 거기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대박을 터뜨렸다.

보통 사람은 엉덩이로 하는 방어적 투자에 만족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다른 분야에서 발휘하는 편이 더 낫다. 전문가 대부분보다 나은 실적을 올리면서도, 더 큰 보람과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시라도 자신이 제2의 워런 버핏이라면 재능이 아까워 어떡하는가.

투자에 재능이 넘친다고? ‘엉덩이’를 믿고 참아주세요
그렇다면 투자의 고전을 읽어보라. 독서광 버핏은 책을 통해서 그레이엄을 알게 됐고, 그의 제자가 돼 투자 대가로 성장했다. 버핏이 그레이엄의 책을 읽지 않았다면, 십중팔구 이름 없는 투기꾼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투자의 고전을 읽고서도 아무런 감흥 없이 졸음만 쏟아진다면, 이제는 미련 없이 결론지을 때다. 자신이 가진 최강의 무기는 엉덩이라고!

이건은 은행에서 펀드매니저로 국내 주식과 외국 채권 및 파생상품을 거래했고, 증권회사에서 트레이딩 시스템 관련 업무도 했다. 지금은 주로 투자 관련 고전을 번역한다.



주간동아 2011.12.19 817호 (p38~39)

이건 ‘대한민국 1%가 되는 투자의 기술’ 저자 keonle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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