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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책동네 이야기

밀란 쿤데라 명성 창출한 출판사의 뚝심

  •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밀란 쿤데라 명성 창출한 출판사의 뚝심

밀란 쿤데라 명성 창출한 출판사의 뚝심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으로 ‘농담’이 주로 꼽힌다. 이 책은 사회주의 체제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집필 활동을 금지당하고 프랑스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던 계기를 만든 작품이다. 그러나 국내 독자에게 작가 이름을 제대로 각인시킨 책은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다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이 책이 국내에 처음 출간된 것은 세기말의 불안심리에 빠져들었던 대중이 니힐리즘(허무주의)이나 시니시즘(냉소주의) 태도를 보이며 기성 권위와 태도에 조소를 보이던 1999년 1월이었다. 동아시아가 외환위기에 빠져드는 바람에 그즈음 ‘사오정 시리즈’가 크게 유행했는데 제목이 그런 분위기에 잘 맞아떨어진 덕에 이 소설은 50만 부 이상 팔렸으며, 쿤데라는 국내에서 확고한 위상을 정립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농담’ ‘느림’ ‘정체성’ ‘향수’가 10만 부 이상 팔리며 작품 모두를 합해 밀리언셀러 작가가 된 쿤데라는 우리나라 작가 이상으로 독자에게 사랑을 받았다. 쿤데라의 책을 꾸준히 펴낸 민음사는 올해 11월 세계 최초로 그의 전집을 펴내기 시작했다. 전집 1번은 ‘농담’이 차지했다.

쿤데라가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한 출판사에서 책을 꾸준히 펴낸 데 있다. 출판사가 꾸준히 프로모션을 하고, 웹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독자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키는 등 작가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10년 이상 모든 노력을 경주한 결과다. 모두 15권으로 구성된 전집 중 13권은 이미 출간된 책이다.

최근 신작 ‘웃음’(전 2권)이 출간된 베르나르 베르베르 또한 열린책들에서만 책을 내고 있다. 1993년 6월 ‘개미’가 나온 후 밀리언셀러가 된 그의 작품은 벌써 10여 종에 육박한다. 교보문고가 분석한 2009년 소설 판매 결과에 따르면, 베르베르는 그때 이미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가 됐다. 그의 모든 책은 스테디셀러기에 그의 작품 중 밀리언셀러에 오르지 못하는 것은 없으리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열린책들은 이 밖에도 파트리크 쥐스킨트 등 여러 작가의 전작을 출간하며 작가의 미래에 출판사의 운명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도 한 작품만 제외하고 모두 민음사에서 출간했다. 요시모토는 한국에서의 출간 일정을 직접 챙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쿠니 가오리 또한 소담에서 거의 모든 작품을 펴냈다. 이들 작가가 국내 독자의 꾸준한 사랑을 누리는 것은 불문가지. 이에 비하면 ‘공중그네’ ‘남쪽으로 튀어’ 등으로 한때 인기절정이었던 오쿠다 히데오는 출판사들이 과도한 선인세 경쟁을 벌인 끝에 서로 나눠 출간하면서 인기가 싸늘하게 식고 있다. 알랭 드 보통 또한 마찬가지다. 더구나 그의 책을 여러 권 펴낸 출판사들이 부도 위기를 겪는 바람에 그의 철학적 에세이는 예전 명성에 걸맞지 않게 존재 자체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밀란 쿤데라 명성 창출한 출판사의 뚝심
우리 작가들은 유명 문학출판사에서 돌아가며 소설을 펴내는 것을 두고 자신의 명망이 높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기 있는 작가에게는 수많은 출판사가 달려들어 원고를 달라고 아우성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요구를 즐기다 보면 어느 순간 힘이 빠져 잊힌 작가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중견 작가 중에는 여러 출판사를 전전하다 뒤늦게 한 출판사에 자리 잡아가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러니 처음부터 한 출판사와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은 어떨까. 소셜미디어를 통해 작가의 브랜드 이미지를 확산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 시대니 말이다.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베스트셀러 30년’ 등 다수.



주간동아 2011.12.19 817호 (p76~76)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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