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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 기자의 感情이입

“공맹의 철학이 곧 민주주의 이젠 정치가 나 같은 사람 원해”

현실 정치 출사표 한학자 청곡 김종회 선생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공맹의 철학이 곧 민주주의 이젠 정치가 나 같은 사람 원해”

“공맹의 철학이 곧 민주주의 이젠 정치가 나 같은 사람 원해”
전통 한복을 입고 한학(漢學)을 꿰찬 사람을 접하면 누구라도 경외감과 동시에 거리감을 느낀다. 조금은 낡은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는 선입견과 풍수나 주역을 통해 세상을 한 수 앞서 볼 것이라는 기대감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청곡(淸谷) 김종회(47) 선생을 처음 접한 것은 4년 전 방송된 한 TV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다. 전북 김제에 위치한 54년 역사의 ‘학성강당(學聖講堂)’에서 숙식하며 사서삼경을 공부하는 젊은 학생들을 조명하는 방송이었다. 그는 아버지인 화석(和石) 김수연(85) 선생과 함께 등장했다. 누구라도 “이런 첨단과학 시대에 웬 한학?”이라고 코웃음 칠 만한 소재였지만 그들은 무척이나 진지하고 행복하게 우리의 전통학문과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있었다.

실제 그는 아버지처럼 상투를 틀진 않았지만 한학은 물론 풍수와 주역에도 통달한 젊은 고수였다. 고루한 아버지에 대항할 논리를 찾고자 더 열심히 용맹정진했다는 그는 전통 교육과 제도권 학문 모두를 섭렵했다. 성균관대 유교학과 석사학위와 원광대 한의대 박사학위는 그 산물이다. 서당훈장이라 생각했던 그가 정치를 모색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김제로 향했다. 일종의 뉴스라 생각한 것이다.

“유학의 목표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이에요. 나아가 교육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겁니다. 그런데 교육은 다시 정치와 통하죠. 공부의 목적이 곧 세상을 다스리는 정치(政治)인 겁니다. 유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당연한 선택이에요. 저 같은 사람이 필요한 시대니까요.”

그는 이제 양복으로 바꿔 입었다. 주위 사람들이 “넥타이가 어색하다”고 한마디씩 거든다. 평생 유학자의 길을 걸으며 한복만 입고 산 사람이 양복을 입는 ‘대의정치’라니.



“유학에 대한 편견이 깊어요. 사농공상에 따른 차별, 남녀유별…. 천만에요. 이런 구태와 세습을 철저히 부정하는 것이 공맹(孔孟)의 정신입니다. 깨달은 성인군자가 정치하는 게 유학의 기초고, 왕이 제구실을 못하면 바꾸자는 게 역성혁명입니다. 공맹의 철학이란 곧 민주주의예요.”

세상 성찰하는 유교가 인문학의 절정

그러고 보면 한참 인기 있는 TV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성균관 유생들 모습이 살짝 드러난다. 작가는 그들을 왕권을 견제하고 사대부 특권을 유지하려는 집단으로 그렸지만 원래 유학이란 ‘역사’를 신으로 모신 동양식 민주주의의 정점인 셈이다. 그런데 그는 어째서 지금 유교를 꺼내든 것일까.

“시대가 변했어요. 생산성에 초점을 맞춘 서구 산업사회가 끝나갑니다.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가 됐다고 하지만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리고 자살률은 세계 최고가 됐어요. 이제는 개인의 다양성과 감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산업자본 시대가 가고 문화자본 시대가 온 거죠. 스티브 잡스를 보세요. 세상을 성찰하는 인문학이 결국 우리를 구원할 겁니다. 유교가 바로 인문학의 절정이거든요.”

그가 아버지와 함께 일군 학성강당을 거쳐 간 학생만 6000여 명을 헤아린다. 지금도 한학을 배우고 싶은 이들이 꾸준히 이 전통 서당으로 몰려오는데, 이곳에서는 서예에서부터 전통무예인 ‘태격’까지 빡빡한 수업일정을 채워야 한다. 결국 1주일 만에 되돌아가는 이도 있고 10년째 머문 학생도 있다. 화석 선생의 방침은 “학문이란 스스로 깨치는 것”이라며 ‘오는 놈 안 말리고 가는 놈 안 붙잡는 것’이다. 수업료도 없다. 돈 받으면 훈장이고 안 받으면 선생이기 때문이란다. 철저하게 전통방식 그대로다.

이렇게 살던 그가 현실정치에 불만을 느꼈으니 정치에 목소리를 내는 것일 터. 그렇다면 어떻게 ‘요순시대’를 구현한단 말인가.

“어이쿠. 저는 현대사회가 결코 요순시대에 비해 뒤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산업화와 민주화를 제대로 이룬 나라도 흔치 않아요.”

익히 알던 바지만 유학자가 하는 얘기라 조금 낯설게 들린다.

“의외겠지만 저는 무척 낙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옛날얘기 하나 할까요? 제가 어릴 적이니 40년 전이에요. 이런 시골에서 돈도 배경도 없는 사람이 예쁜 딸을 낳는 것은 죄악이었어요. 뺏겨도 할 말이 없었으니까요. 때리면 맞아야 했고 고소당하면 다 뺏겼죠. 언어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비인간성이 횡행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을 보세요. 얼마나 좋은 세상입니까? 옛날이 좋다는 사람은 전부 기득권자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현대사회의 문제는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그는 불균형의 원인을 이렇게 좋아진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대중의 한도 끝도 없는 욕심에서 찾았다.

“발전을 포기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현실에 만족할 줄도 알아야 정신적 안정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바로 인간성 회복의 첩경이죠. 자신을 되돌아볼 줄 모르는 무한경쟁 속에선 시스템 종속과 인간 사회의 불신밖에 남는 게 없어요.”

교육을 통해 만족을 알게 되면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다는 그의 설명은 친절하고도 논리 정연했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 현장에 길들여진 기자에겐 ‘인간의 선한 마음 회복’이라는 그의 주장이 조금은 공허하게 들렸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이란 민감한 주제를 던져봤다.

“그분은 산업자본 시대의 입지전적 인물이죠. 하지만 시대를 읽지 못했어요. 생산력 제고를 통한 비약적 경제성장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어요. 지혜와 인문학이 주도하는 문화자본 시대를 보지 못한 거죠. 강력한 카리스마가 아닌, 자기를 낮추고 소통해야 하는 시대인데….”

내년은 水의 시대…패러다임 교체기

그의 시대 비평에는 막힘이 없었다. 낯익은 경제학 이론이 나오고 첨단과학 용어도 등장했다. ‘안철수-박원순 현상’은 분열된 시대의 통합 키워드로, 혹은 정당정치 시대의 종언으로 해석했으며, 이제는 서구에 눈을 돌리지 말고 지방에 주목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도대체 이런 복잡한 주장은 어떻게 귀결되는 것일까.

“2012년 임진년은 바야흐로 ‘물(水)’ 시대의 본격적 개막이에요. 천하의 모든 흐름은 음양과 오행으로 설명 가능합니다. 고대가 나무(木)와 철기(金)의 시대였다면 현대는 불(火)의 시대였습니다. 원자력이 대표적이죠. 강한 남성의 시대였고 획일적인 생산력의 시대였어요. 하지만 이제는 물로 대표되는 통합과 통섭의 시대입니다. 인터넷도 물이고 여성도 물입니다.”

“공맹의 철학이 곧 민주주의 이젠 정치가 나 같은 사람 원해”
유학자의 눈에 비친 2012년 모습은 패러다임의 교체기임을 나타내는 셈이다. 실제 전 세계적으로 정치체제는 물론, 메가트렌드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그런데 오히려 그의 걱정은 여기가 시작이었다.

“문제는 화말수초(火末水初) 시대엔 화극의 찌꺼기가 극성이라는 겁니다. 동트기 직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요. 전 지구적인 기상이변과 전염성 질병도 드셀 겁니다. 이런 과도기를 어떻게 능동적이고 슬기롭게 대처하는지, 이것이 바로 선비의 과제가 아닐까요?”

유교는 인문학 시대의 중심 철학으로 기능할 수 있을까. 신세대 유학자와 대화를 통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이 그리 멀리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출사표’를 환영한다.



주간동아 2011.12.12 816호 (p52~53)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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