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6

2011.12.12

블랙 요원 or 비밀공작 대북정보 수집 타는 목마름

한국 정보기관 ‘휴민트’에 의존 고질적 한계…‘정치바람’ 불면 그것마저 날아가기 십상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1-12-12 09: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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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 요원 or 비밀공작 대북정보 수집 타는 목마름

    2009년 3월 20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배포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평양 김일성대 수영장 시찰 모습. 수척해진 얼굴 탓에 건강 이상설에 무게를 실었던 사진이다.

    “양치질을 할 정도의 건강 상태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짧은 한 문장이 일으킨 파장은 컸다. 2008년 9월 12일 언론을 통해 공개된 정부 고위관계자의 발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문제가 초미의 관심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나온 이 말은 ‘와병 중인 것은 맞지만 반신불수 등 최악은 아닌 상태’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커진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었다. “김 위원장이 쓰러진 뒤 2, 3일 후 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안다”고까지 덧붙인 당시 발언이 평양 권력핵심층에 대한 우리 측 정보당국의 첩보 수집 능력을 노출한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진 것이다.

    쉽게 말해, 이렇듯 민감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소스(source)가 김 위원장 주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인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비판의 요지였다. 이는 백악관을 비롯한 미국 정부가 그의 건강문제에 대해 말하기를 꺼린 것과 비교해봐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이 무렵 전·현직 안보당국 인사들은 질타하고 나섰다.

    후계자 둘러싼 10년 정보전쟁



    휴민트(Humint·Human Intelligence)와 테킨트(Techint·Technical Intelligence). 우리말로는 통상 인적정보와 기술정보로 옮기는 이 용어는 정보기관이 확보하는 각종 정보를 그 수집 방식에 따라 분류하는 말이다. 테킨트는 위성 등을 통해 수집하는 영상정보와 전화통화·이메일을 감청하는 신호정보로 나누고, 휴민트는 언론이나 책, 보고서 등의 공개 출처 정보와 공작원 및 내부협력자를 통한 비밀 출처 정보로 나눈다. 분석 작업에 사용하는 정보의 85~90%는 공개 출처에서 나온다는 게 정보 전문가들의 설명이지만, 언제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앞서 ‘양치질 발언’의 경우처럼 은밀한 경로를 통해 입수한 휴민트다. 오류 가능성도 높지만 파괴력이나 민감성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각국 정보기관은 대외적으로 해외공관의 외교관 신분을 지닌 화이트(white) 요원과 아예 민간인으로 신분을 감춘 블랙(black) 요원을 운용한다. 화이트 요원의 경우 정보기관 사이에는 그 신상과 규모를 암묵적으로나마 공유하는 것이 원칙. 꼭 우방국이 아니어도 정보기관 사이에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 정보를 교환하는 것은 일상 업무에 가깝고, 많은 경우 상대국에 연락관(liaison officer)을 두기도 한다. 반면, 한국의 경우 가장 많은 정보 수요가 발생하는 상대는 단연 북한이지만, 북한에는 화이트 요원을 파견할 방법이 없다. 휴민트의 상당 부분을 블랙 요원이나 비밀공작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러한 대북정보업무는 공식적으로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과 국방부 정보본부 산하의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가 담당한다. 제도적으로만 보자면 ‘국가종합정보기관’인 국정원은 군사정보에 특화된 ‘부문정보기관’인 정보사에 대해 압도적 우위를 갖는다. 군 정보당국이 수집한 정보도 국정원의 종합분석 과정을 거쳐 청와대에 보고하도록 규정해놓았기 때문.

    잇단 간첩사건 흔들리는 탈북자 사회

    블랙 요원 or 비밀공작 대북정보 수집 타는 목마름

    흑금성 박채서 씨가 1996년 가을 북한을 방문해 애틀랜타올림픽 유도 여자48kg급 금메달리스트인 계순희와 기념촬영을 한 모습.

    정보사가 추진하는 주요 공작사업은 국정원장에게 보고해 부호를 발급받아야 하며, 부호를 받지 못한 이른바 ‘비인가 공작’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불법이다. 더욱이 군당국이 공작사업을 위해 사용하는 자금 역시 국정원 예산에서 나오므로 국정원은 해당 기관에 대한 감사권도 갖고 있다. 쉽게 말해 구조적 종속관계인 셈이지만, 이론은 이론일 뿐 역대 정권은 정보의 교차 확인이나 권력 집중 방지를 위해 중앙정보기관과 군 정보당국 사이의 경쟁을 내심 방조해왔다.

    비교적 최근의 사례로는 북한 후계문제를 둘러싸고 2001년 이후 두 기관이 펼쳐온 정보경쟁이 손꼽힌다. 그해 5월 김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이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체포돼 후계자 지위에서 멀어졌다는 관측이 쏟아지자, 두 기관은 과연 진짜 후계자는 누가 될지를 두고 조직의 역량을 총동원한 대대적인 정보전쟁을 벌였다. 2005년 무렵부터 김정남이 체류하던 마카오 현지에 각각 요원을 파견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초기엔 단연 군 정보당국이 기세를 올렸다. 김정남의 이메일을 확인하는 등 다양한 공작을 통해 수집한 직접 정보를 근거로 정보사 측은 김정남이 여전히 후계자 후보군에서 탈락한 것은 아니라는 요지의 보고서를 수차례 작성했다고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러한 활동을 두고 국정원 측은 “군사정보에 한정된 군 정보기관의 업무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는 후문.

    반면, 국정원의 경우 2000년대 초반부터 당시에는 ‘김정운’으로 알려졌던 3남의 후계 승계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게 전직 정보·안보당국 관계자들의 회고다. 이러한 설명이 김정은으로의 후계체제가 공식화한 후 윤색된 결과물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청와대 등에 보고된 관련 자료 역시 그 같은 맥락을 벗어나지는 않았다는 것. 2002~2003년을 전후해 2남 김정철의 후계 가능성을 시사하는 인민군 강연 자료가 확인되는 등 후계체제를 둘러싸고 평양 권력층이 요동치는 과정에서 다양한 혼선이 빚어지기는 했어도, 결과적으로는 국정원 측 판단이 옳았다는 평가다.

    후계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정보기관이 빠지기 쉬운 ‘휴민트의 함정’이 잘 드러난 경우라고 전직 국정원 고위 관계자들은 평가한다. 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이들은 자신의 소스가 가장 가치가 높다고 생각하게 마련이지만, 이러한 정보에는 해당 정보원의 희망사항이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소지도 높다는 것. 어느 국가든 정보기관을 수집파트와 분석파트로 분리해 운영하는 것은 이러한 경향성을 최소화하려는 장치다.

    반면 일각에서는 이러한 해석이 군 정보당국이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휴민트를 평가절하하려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나온다. 정보사의 경우 비교적 근래까지도 직접 북한 현지에 요원을 들여보내는 공작을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5월에는 군사기밀을 북한에 넘겨준 혐의로 구속 기소된 국가안전기획부 대북 공작원 출신 ‘흑금성’ 박채서(57) 씨의 재판 과정에서 “1999년 현역 영관급 장교 4명이 북한 내부와 중국 국경에서 북측에 체포됐다”는 법정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1998년 3월 이른바 ‘북풍(北風)사건’에 휘말리면서 신분이 드러난 박씨 역시 정보사 장교 출신이기도 하다.

    수십 년 전문성 축적하는 ‘제국의 운용술’

    블랙 요원 or 비밀공작 대북정보 수집 타는 목마름

    2007년 2월 서울 용산구 국방부청사에서 열린 제11차 한미안보정책구상(SPI)회의에서 미국 측 수석대표인 리처드 롤리스 미국 국방부 부차관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씨의 사례를 통해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정권의 향방에 따라 수뇌부는 물론 대북정보업무를 담당하는 전문 인력의 경우에도 신분 변화가 발생하곤 하는 국정원의 조직 특성이야말로 휴민트 공작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것이 전직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십 년 동안 보안과 예산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게 이러한 비밀업무의 전제조건이지만, ‘코드 인사’가 춤을 추는 한국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는 것. 오히려 이러한 공작을 국내 정치에 악용하는 경우까지 발생했음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 아니냐는 반문도 나온다.

    이 때문에 한국 정보당국의 휴민트는 상당 부분 북한을 드나드는 해외 인사나 조총련계 재일교포, 탈북자를 접촉해 수집하는 정보에 의존하고 있다. 국가정보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준비밀출처’ 정보다. 서두에서 소개한 ‘양치질 발언’ 역시 김 위원장 주변에 우리 측 ‘스파이’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러한 간접경로를 통해 흘러나온 정보라는 것이 정설. 최근 수년간 탈북자가 급증하면서 국정원이 이들을 활용한 북한 내부 정보 수집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 역시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 역시 탈북자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시선 변화’로 간단치 않은 한계를 보인다는 엘리트 탈북자 그룹의 평가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2008년 8월 공개된 원정화 사건 이후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 사건’이 줄지어 발표된 이래 이들을 잠재적 간첩으로 보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다. 탈북자들의 국내입국심사기간 확대를 검토하는가 하면, 정착기관에서 일하던 북한 출신 근무자들이 자리를 잃는 등 ‘심상치 않은 우연’이 이어졌다는 것. 한 탈북 관료는 “이러한 기류 변화 또한 탈북자 관리업무에 오랜 기간 종사해왔던 전문 인력이 계속되는 상시 인사 과정에서 자리를 옮긴 것과 무관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결국 모든 질문의 핵심은 정보기관의 전문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의 문제다. 한 부서에 장기간 근무한 정보요원들이 상부의 통제를 피해 관료주의나 부패에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마땅하지만, 최소한의 원칙도 없이 정권 향방에 따라 기관의 성격이나 임무 자체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는 것. 한 전직 국정원 고위관계자는 “전문성의 인정과 존중이야말로 정보 역량 성장의 가장 근본적인 기반”이라고 잘라 말했다.

    리처드 롤리스. 2002년부터 미국 국방부 동아태담당 부차관보로 일하며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그는 원래 정보기관 출신이다. 공식기록에 따르면, 1972년에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입사한 그는 1981년부터 6년간 주한미대사관에서 화이트 요원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에도 ‘평화봉사단(Peace Corp)’으로 전라도 지역에서 2년가량 일하는 등 일찍부터 한국과 인연을 맺었고, 박정희 정부의 핵개발 계획을 미국에 보고한 최초의 정보요원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비록 CIA 한국지부장 자리에 오르진 못했지만 이렇듯 수백 차례 서울을 드나들며 명실상부한 한국통(通)으로 성장한 그는 친정을 떠나 국방부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그간 쌓아온 전문성을 바탕으로 미국의 국익에 충실히 복무했다. 노무현 정부와 부시 행정부라는, 역사상 가장 ‘궁합’이 맞지 않는 양측 수뇌부 사이에서 불거진 주한미군 기지이전과 전략적 유연성 등 첨예한 문제의 이해조정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그리고 그는 이들 대부분의 이슈에서 최종적으로 미국 측 견해를 관철해냈다. 수십 년 축적한 전문성을 다시 수십 년 동안 써먹는 ‘제국의 운용술’을 한국의 정보기관에 바라는 건 헛된 기대에 불과한 일일까.

    참고자료 : ‘국가정보론’(문정인 외), ‘국가정보기관 무엇이 문제인가’(윌리엄 오덤), ‘국가정보’(마크 로웬탈), ‘국가정보의 이해’(아브람 슐스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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