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6

2011.12.12

두 남자, 파국은 짧고 밀월은 길다?

손학규-박지원 야권통합 두고 결별…대권 레이스 시작하면 관계 복원될 듯

  • 전예현 내일신문 정치팀 기자

    입력2011-12-12 09: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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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남자, 파국은 짧고 밀월은 길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왼쪽)과 손학규 대표.

    정치권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고 한다. 정치 상황과 여건의 변화, 그리고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정치인의 행태에서 나온 말이다. 2011년 12월,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박지원 의원의 관계는 이 격언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오랜 기간 밀월관계였던 두 사람은 야권통합 문제를 놓고 대립하다 결국 파국을 맞았다. 박 의원은 최근 “당내 통합도 못하면서 어떻게 야권통합을 하겠느냐”며 당 주요 회의에서 손 대표를 향해 날을 세웠다. 몇 달 전만 해도 “박지원은 손학규를 좋아하고 존경한다”고 말하던 모습과는 정면으로 배치한다. 과연 두 사람 사이에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손학규-박지원의 밀월관계는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사람이 가까워진 데는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영향을 끼쳤다. 당시 여권의 대선후보 경선판은 ‘친노 진영’과 ‘조직력의 정동영’이 주도했다. DJ는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을 찾아와 고군분투하는 손학규를 안쓰러워하는 마음’을 사석에서 가끔 표현했다고 한다. 동교동계 한 관계자는 “DJ의 마음을 빠르게 읽은 박지원 의원이 자연스럽게 손학규에게 우호적이 됐다”고 말했다.

    이유 있는 ‘밀고 당기기’

    지난해 10월 치른 민주당 전당대회는 두 사람이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 전당대회 당시 박 의원 측 일부 인사가 손학규 캠프에 합류해 조직 관리를 도왔다. 당 대표와 원내대표로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그러다 올해 초 ‘월권 논란’으로 두 사람 사이에 긴장 국면이 조성됐다. 2010년 말 한나라당의 예산안 강행 처리에 맞서 손 대표는 ‘노숙 투쟁’을 벌였고, 여야에는 냉기류가 흘렀다. 그런데 올해 2월 당시 원내대표였던 박 의원이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국회 등원 및 영수회담에 전격 합의했다.

    영수회담 합의로 민주당은 발칵 뒤집혔다. 긴급 소집된 ‘한밤 최고위원회의’에서 손 대표의 최측근인 차영 당시 대변인은 박 의원과 설전을 벌이다 회의장을 뛰쳐나갔다. 이후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거센 비판이 일자, 박 의원은 “대표실과 평소 소통을 잘했고 작은 일 하나도 의논하는 관계”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월권’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주장이었다. 당내 논란이 컸지만 박 의원은 손 대표와의 정면충돌을 피한 채 한발 물러섰다.

    원내대표 임기를 마친 박 의원은 이후에도 “손 대표가 대통령이 될 경우 비서실장을 하고 싶다”며 ‘대선주자’를 꿈꾸는 손 대표와 ‘킹메이커’가 되고 싶은 자신의 의중을 은연중에 과시하면서 손 대표 편들기에 나섰다.

    ‘손학규 대통령, 박지원 비서실장’ 발언 이후 손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손학규의 수도권 지지기반과 ‘정권교체’라는 대의명분, 박지원의 호남세력과 ‘야전사령관 실전 감각’을 결합하면 대선에서 환상의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직력으로 무장한 박 의원이 손 대표에 이어 민주당 대표직을 맡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손 대표가 야권통합을 서둘러 추진하면서 콘크리트처럼 견고해 보이던 두 사람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혁신과 통합’ ‘한국노총’과의 통합에 공을 들인 손 대표는 모든 후보가 출마해 한 번의 선거로 통합 지도부를 구성하자는 ‘원샷 경선’을 제안했다. ‘혁신과 통합’과 관련해서는 일반 시민의 참여를 대폭 늘리겠다는 목적하에 인터넷 투표를 하자고 주장했다. 이 같은 흐름에 박 의원 측은 충격을 받았다. 대의원 중심으로 준비해온 대표 경선 계획 자체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경선 규칙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박 의원의 지도부 입성은 가능하지만, 원내대표와 비대위원장을 지낸 박 의원의 목표는 ‘당 대표’였다. 여러 최고위원 중 한 명으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치르고 싶지는 않았던 것.

    결국 박 의원은 손 대표를 겨냥해 벼랑 끝 전술로 반격에 나섰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여러 대중매체에 출연하며 손 대표 비판에 열을 올렸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곧 뉴스가 됐다. 결국 민주당은 손 대표 대신 정세균 최고위원을 앞세워 ‘통합협상위원회’를 구성하고 당내 의견 조율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손 대표의 리더십은 박 의원의 난타에 큰 상처를 입었다. 박 의원이 쌓아온 명성도 “통합에 브레이크를 건다”는 비난에 얼룩졌다. 손 대표가 ‘혁신과 통합’의 주축을 이루는 임시정당인 ‘시민통합당’ 창당대회장을 방문한 12월 7일, 박 의원은 손 대표와의 ‘결별’을 공식 선언했다.

    전장에서는 돌아선 친구도 잡아

    표면적으로 손학규-박지원의 관계는 야권통합 논의 과정에 서로에게 입힌 상처가 너무 커 파국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측근은 밀월관계가 한순간에 끝장나지는 않으리라 전망한다. 두 사람이 최종 목표로 하는 2012년 대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올해 63세인 손 대표는 내년 대선을 건너뛰면 영영 기회를 잡기 어렵다. 수도권을 기반으로 정치적 성장을 거듭해온 손 대표가 대선 가도에서 DJ의 ‘영원한 비서실장’인 박 의원의 존재감을 외면하긴 어렵다. 손 대표는 최근 자신에 대해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내며 탈당했던 이해찬 전 총리에게까지 “이제 민주당으로 오시라”라며 고개를 숙였다.

    야권통합 과정에는 더 적극적인 구애로 ‘혁신과 통합’의 굳은 마음을 녹여냈다. ‘전쟁에 나선 장수는 돌아선 친구도 잡아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격언을 손 대표가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선을 코앞에 두고 손학규-박지원의 관계 복원이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관측이 많다.

    또한 박 의원이 2012년 대선 레이스에서 다시 손 대표를 선택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DJ에게 정치를 배운 그는 어떤 사연이 있든 ‘전장’에서만큼은 동지 편에 서왔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는 ‘참여정부의 황태자’라 부르는 유시민 경기도지사 후보의 당선을 위해 빗속에서 노래까지 부른 그다.

    그는 또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박원순 후보 측의 요청으로 선거일을 며칠 앞두고 서울지역 호남향우회를 누볐다. 박 의원의 한 측근은 “마음 같아서는 민주당을 향해 ‘호남 기득권’이라고 비판해온 사람을 돕고 싶었겠느냐”며 “그래도 박지원은 본인을 필요로 하는 선거에서 절대 아군을 외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의원의 이런 전력으로 볼 때 그가 내년 총선과 대선에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구실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박 의원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 꿈은 정권교체를 돕는 것이다. 내가 쌓아온 모든 능력을 발휘해 대선 승리에 기여하고 싶다. 야권에서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평양에 가서라도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을 주겠다”고 말해왔다. 야권통합 과정에 파국을 맞은 손학규-박지원 두 사람의 밀월관계가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펼쳐질 내년에 다시 복원될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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