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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구원투수 박근혜, 결정구는 뭐냐?

난파 직전 한나라당 살리는 거의 유일한 카드…‘대안과 비전’ 제시 시간 많지 않아

  • 이재명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구원투수 박근혜, 결정구는 뭐냐?

구원투수 박근혜, 결정구는 뭐냐?

12월 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홍준표 대표, 황우여 원내대표, 이주영 정책위의장(오른쪽부터) 등 당 지도부가 사회를 맡은 황영철 원내대변인(뒷모습)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타이타닉’ 한나라당호(號)가 가라앉고 있다. 배 밑바닥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169석의 거대 여당에서 각자도생을 위한 이탈이 본격화하는 중이다. 일부는 당 해산을 공식 요청하고 나섰다. 이른바 ‘창조를 위한 파괴’다. 이들은 당이 기득권을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피를 수혈할 수 없다는 절박감을 드러낸다.

원희룡 전 최고위원이 ‘당 해산, 재창당’파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당내 시선은 곱지 않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이재오 전 특임장관, 정몽준 전 대표의 측근 인사들이 주축인 탓이다. 이들의 재창당 요구가 ‘박근혜 흔들기’로 비치는 것이다. 친박(친박근혜)계에선 “재창당을 요구하는 의원 가운데 19대 국회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는 듯하다”며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전쟁’ 당시 이른바 ‘협상파’라 불린 당내 소장그룹은 당 쇄신 논의에선 가장 과격하다. 몇몇 의원은 ‘선도(先導) 탈당론’까지 주장한다. 집단 탈당으로 당내에 충격파를 던지고, 본격적인 ‘헤쳐모여’의 마중물 구실을 하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선도 탈당’이 현실화하더라도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무엇보다 이들은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소장그룹은 올해 4·27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한나라당 주류의 한 축이었다. 당내 비주류인 황우여 의원이 원내대표 자리를 거머쥐는 올해 ‘최대 이변’도 이들의 작품이다. 이후 ‘반값 등록금’ ‘무상 보육’ ‘부자감세 철회’ 등 당의 주요 정책을 주도했다. 다시 말해 올해 한나라당의 성적표는 쇄신파의 성적표이기도 한 셈이다. 당내에서 “누가 누구 보고 책임지라는 것이냐”는 반발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이 정두언, 김성식, 정태근 의원으로 대표되는 쇄신파의 지역구는 서울이다. 내년 총선 위기감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이들에게 당내 쇄신은 내년 총선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그것도 ‘조용한 쇄신’ ‘차분한 쇄신’으로는 안 된다. 유권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만한 ‘폭풍 쇄신’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선도 탈당론’까지 나오지만 한나라당의 또 다른 축인 영남 의원들에겐 ‘자기들만 살겠다는 꼼수’로 비칠 뿐이다.



매일같이 알맹이 없는 ‘말잔치’

재창당파, 탈당파 등이 뒤엉켜 매일같이 당이 출렁이지만 거의 ‘말잔치’로 끝나는 이유는 한나라당 의원이 대부분 이들의 주장에 겉으론 동조하면서도 심정적 지지를 보내지 않는 탓이다. 그 결정판이 12월 7일 있었던 의원총회였다.

‘홍준표 체제’를 지탱하던 친박계의 유승민 전 최고위원이 이날 기습적으로 사퇴를 선언하면서 홍 대표 체제의 붕괴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선출직 최고위원 5명 가운데 4명이 물러난 마당에 누군들 버틸 수 있겠는가. 하지만 홍 대표는 기사회생했다. 홍 대표 특유의 재신임 승부수가 먹힌 측면이 있지만, 의원 대부분은 ‘재창당파나 쇄신파에게 주도권을 넘겨줄 것인가.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변화를 선택하는 데 주저했다.

당의 무기력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역설적으로 가장 긴장하는 쪽은 친박계다. 그리고 박근혜 전 대표다. 아무리 대안이 없어도 ‘홍준표 재신임’은 ‘초식공룡’ 한나라당의 한계를 다시 한 번 국민에게 각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당의 대주주인 박 전 대표에게는 혁신과 거리가 먼 수구적 이미지가 더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 전 최고위원이 사퇴 기자회견을 할 때만 해도 박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인 최경환 의원 등은 진화에 나섰다. 최 의원은 홍 대표와의 통화에서 유 전 최고위원의 사퇴가 박 전 대표의 뜻이 아님을 전했다. 친박계 중진도 홍 대표의 사퇴를 만류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의원총회에서 ‘홍준표 재신임’이 결정되자 친박계는 다시 한 번 혼란에 빠졌다.

유 전 최고위원의 사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에 당 지도부가 무기력하게 대응한 것을 명분으로 삼았다. 하지만 속내는 박 전 대표가 지금이라도 당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소신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당수 친박계 의원은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박 전 대표보다 더 신비주의로 포장된 ‘안철수’란 유령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혼자 링에 올라갈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상황은 급변했다. 친박계는 홍 대표가 의원총회의 재신임에도 이미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홍 대표의 ‘나 홀로 쇄신’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이다. 박 전 대표의 전면 등장은 이제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하고, 선수를 쳐야 한다.

‘박근혜 대세론’은 이미 무너졌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지지율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안 원장이 내년 대선에 뛰어들든, 뛰어들지 않든 그의 선택은 중요치 않다. 박 전 대표의 위상이 꺾였다는 사실은 변치 않기 때문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나 정몽준 전 대표 등 한나라당 내 잠룡은 이런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박 전 대표에게 경선을 요구할 태세다. 친박 진영도 이를 마냥 내칠 수 없다.

탄핵 역풍보다 훨씬 힘겨운 시험대

구원투수 박근혜, 결정구는 뭐냐?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이런 점에서 친박계는 오히려 고민 하나를 덜었다. 박 전 대표가 언제 나설지에 대한 고민은 끝난 셈이다. 바로 지금 나서야 한다는 데 당내 컨센서스가 모아졌기 때문이다. 이제 질문은 오직 하나다. 어떤 방식으로 나설지다. 비상대책위원장, 선거대책위원장, 당대표 등. 직책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더는 수렴청정의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은 명실상부 박 전 대표의 당이고, 유권자는 박 전 대표를 보고 한나라당을 평가할 수밖에 없다.

홍 대표는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나라당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14년을 버텼다. 그렇게 만만한 당이 아니다.” 이런 ‘뿌리 깊은 당’이 현재 당 안팎에서 무너질 것을 요구받고 있다. 그것도 당명이나 바꾸는 겉포장 수준이 아니라 인물과 정책 등 모든 것을 확 뒤집는 변화 요구에 직면했다. 누가 뭐래도 키는 박 전 대표가 쥐고 있다. 그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 때보다 훨씬 힘겨운 시험대에 올라 있다. 당시에는 ‘낮은 자세’와 ‘처절한 반성’만 있으면 됐다. 지금은 대안과 비전을 내놓아야 한다.

보수 우파는 무엇으로 국민의 마음을 되돌릴 것인가. 진보 좌파와 무엇을 놓고 경쟁할 것인가.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 이도는 말한다. “참고 기다리며 오직 인내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설득할 것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에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주간동아 2011.12.12 816호 (p24~25)

이재명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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