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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충천

선배 기자를 떠나보내며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선배 기자를 떠나보내며

선한 눈빛을 가진 한 선배가 있었다. 미소를 머금고 내 얘기에 귀 기울이는 모습은 ‘그래? 그렇구나!’라며 맞장구쳐주는 듯했다. ‘이해받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고 더 신이 나서 얘기했다. 한참 동안 얘기를 듣던 선배는 나직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흑과 백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라는 선택을 강요받을 때가 많지. 하지만 우리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처지에서 ‘팩트’를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이잖아. 팩트가 만일 ‘회색’이면 우리는 용기를 내 ‘회색이 팩트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해. 그런데 만일 어느 한쪽 편에 치우친다면 어떨까. 팩트를 놓치고 진실과 멀어지지 않을까. 네가 어떤 판단을 내리기 전에 스스로 어느 한쪽에 치우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

‘이것은 맞고 저것은 틀리다’를 강변하는 내게 선배는 또 이렇게 말했다.

“세상일에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은 없는 것 같아. 같은 사안이라도 보는 사람의 처지와 견해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니까. 하나의 사건을 두고 모두가 같은 견해를 갖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한 일 아닐까.”

그 선배는 “사실을 곡해하지 않고 진실에 다가서려면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내 주장을 강하게 피력하는 것에 대한 그의 완곡한 충고는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조언은 기자인 내가 지켜야 할 원칙이 됐다.



선배 기자를 떠나보내며
그로부터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에게 병마가 찾아왔고, 결국 얼마 전 하늘나라로 떠났다. 미소를 머금은 선배의 영정 앞에 섰을 때 2년 전 그가 해준 조언이 마치 유언처럼 떠올랐다. 선배는 떠났지만, 선배가 남긴 그 귀한 뜻은 ‘주간동아’ 지면에 언제나 살아 있을 것이다. ‘내가 옳다’는 흑백논리가 판치는 현실에서 앞으로도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팩트’를 좇아 진실을 보도하는 일에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공종식 선배! 부디 영면하소서.



주간동아 805호 (p11~11)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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