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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으로 들어온 한 권

세계무역센터 무너지기 전 오만했던 도발?

디자인과 진실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세계무역센터 무너지기 전 오만했던 도발?

세계무역센터 무너지기 전 오만했던 도발?

로버트 그루딘 지음/ 제현주 옮김/ 북돋움/ 328쪽/ 1만6800원

디자인은 일반적으로 ‘판매를 위한 물건을 설계하거나 그 외양을 꾸미는 일’로 인식되며, 또 그렇게 정의되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차를 마시는 행위, 그림을 그리는 행위, 건축물을 설계하는 행위, 가족이 쓸 가구를 직접 만드는 행위, 기업을 경영하는 행위 등 도저히 연관성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수많은 행위가 모두 디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 디자인을 창조했지만 이젠 디자인이 인간을 지배한다. 자가 성장과 확대를 거친 디자인은 더는 자연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또한 날이 갈수록 풍성해지면서도 더더욱 모호한 혼합물이 돼버린다.

특히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압박감을 주는 디자인은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재앙으로 이어지곤 한다. 2001년 9·11테러로 무너진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를 디자인 측면에서 살펴보자. 이 건물의 디자인을 의뢰한 뉴욕항만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지음으로써 뉴욕의 경제적 번영을 과시하고자 했다. 처음부터 탐욕이 들어갔다는 얘기다. 건물에 입주할 사람의 안전이나 삶의 질보다 경제적 측면에 관심을 갖다 보니 처음 80층으로 생각했던 건물이 110층으로 바뀌고, 주변 지역 스카이라인을 왜곡해 맨해튼의 볼썽사나운 ‘쌍둥이 빌딩’이 됐다. 여기에 임대면적을 극대화한 탓에 적절한 보강 구조와 대피시설을 마련하지 못했다. 실제로 사람을 조금이라도 더 건물에 넣으려고 비상대피계단을 건물당 6개에서 3개로 줄였다. 9·11테러 당시 비상대피계단을 통해 대피한 사람은 20여 명에 그쳤다.

세계무역센터를 설계 건축한 일본 출신의 건축가 야마사키 미노루는 세계무역센터 앞을 ‘메카’ 같은 휴식처로 만들겠다며 실제 메카와 닮은 공간을 마련했다. 그뿐 아니라 건물 표면을 이슬람 문양으로 장식했다. 이런 모습은 이슬람 근본주의자에게 오만한 도발로 받아들여졌고, 결국 끔찍한 테러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르네상스시대에 새롭게 지어진 로마시대 성 베드로 대성당도 과잉 디자인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여러 명의 교황과 건축가가 성당 디자인을 두고 수십 년간 논쟁을 벌이며 설계도를 고치고 또 고쳐 사실상 누더기로 만들었다. 1626년 헌당식이 거행됐을 때 브라만테와 미켈란젤로의 독특하고 우아한 생각이 어느새 바로크 양식의 덩치 큰 건물로 변해 있었다.



디자인은 단순히 외형을 꾸미거나 고안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스스로의 삶과 행위, 환경에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이자 결과물이다. 저자가 지식을 기반으로 성공적인 디자인을 선보인 인물로 꼽은 토마스 제퍼슨은 미국 독립선언문 초안을 작성했고 대통령도 역임했다. 그의 삶은 반복적인 자기 디자인의 연속이었다. 몬티첼로와 포플러 수목원의 집 두 채, 버지니아대 주요 건물들을 직접 디자인했으며, 심지어 자기 묘비까지 디자인했다.

“좋은 디자인은 정직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세상과 호흡하도록 해준다. 반면, 나쁜 디자인은 얕은 식견, 혹은 속임수에 가까운 착취적 생산 전략의 징후다. 좋은 디자인이 진실을 말한다면, 나쁜 디자인은 거짓을 말한다. 나쁜 디자인의 거짓말은 어떤 식으로든 힘의 남용과 연결돼 있기 마련이다.”

저자는 일본의 다도(茶道)에서부터 이탈리아 미술의 마니에리즘, 기업의 재디자인과 지식사업에 이르기까지 서로 연관 없는 듯한 주제를 넘나들며 디자인이 우리 일상에 어떤 구실을 하는지 종횡무진 들여다본다.



주간동아 803호 (p154~154)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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