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1

2011.08.22

“자연의 산뜻함·동물의 감정 소프라노 리코더를 사용했죠”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 이지수 음악감독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송지은 인턴기자 연세대 아동가족학과 4학년

    입력2011-08-22 11: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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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의 산뜻함·동물의 감정 소프라노 리코더를 사용했죠”

    이지수 음악감독은 사진촬영을 완곡히 고사해 본인이 직접 제공한 사진을 사용했다.

    청둥오리 떼 가운데 가장 비행을 잘하는 파수꾼을 선발하는 대회가 열린다. 마당을 나온 암탉 잎싹이 정성 들여 키운 청둥오리 초록이도 대회에 참가한다. 초록이는 유력한 우승 후보 빨간머리와 결승선까지 숨 막히는 레이스를 펼친다. 넓은 바다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약 10분간 경기가 펼쳐지고, 관객은 손에 땀을 쥐며 초록이를 응원한다. 경기가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빨간머리와 초록이가 엎치락뒤치락하자 긴장감이 고조된다. 마지막 순간, 간발의 차로 초록이가 결승선을 통과하며 우승! 엄마 잎싹과 관객은 함께 환호한다.

    섬세한 선율로 애니메이션에 생명 불어넣어

    100만 부 넘게 팔린 황선미 작가의 베스트셀러 ‘마당을 나온 암탉’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개봉 14일 만인 8월 10일 100만 관객을 달성했다. 국내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이다. 영화 흥행 뒤에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앙증맞은 그림이 있었다. 하지만 극에 박진감과 감동을 더한 음악이 없었다면 영화는 2% 부족했을 터. 영화 러닝타임 90분 가운데 70분가량에 음악이 들어갔다. 90분 기준에 50분 정도 음악이 들어가는 실사영화보다 1.5배 정도 많은 분량이다.

    애니메이션은 실사영화보다 음악 비중과 중요도가 높은 편이다. 실사영화는 촬영 중에 자연스럽게 삽입되는 소음을 그대로 살리면 음악 없이도 어색하지 않은 장면이 많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음악이 없으면 청각적으로 완전히 ‘빈 장면’이 생겨버린다. 이 빈 틈을 섬세한 선율로 채워 밋밋한 애니메이션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영화음악 작곡가가 하는 일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음악감독을 맡은 이지수(30) 씨는 영화음악계의 ‘젊은 거장’이다. 그는 드라마 ‘겨울연가’ ‘봄의 왈츠’, 영화 ‘올드보이’ ‘안녕, 형아’에서 음악 작업을 맡았다. 2003년에는 ‘올드보이’가 칸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시상식 극장에 그가 작곡한 ‘우진의 테마’가 울려 퍼지는 영광도 누렸다.



    “어릴 때부터 클래식 작곡가가 되고 싶었어요. 언젠가 영화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죠.”

    그는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어머니 덕에 집에는 늘 클래식 음악이 흘렀고, 심심하면 집에 있는 클래식 음반을 하나씩 듣는 것이 그의 낙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대 음악대학원에 다니던 학생에게 피아노 과외를 받으면서 정식으로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서울대 작곡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2년,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피아노 치는 배용준을 대신하는 손 모델 아르바이트생으로 촬영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우연히 겨울연가 OST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 겨울연가의 메인 테마곡 ‘처음’을 만들었다. 이후 그의 재능을 알아본 감독의 러브콜이 이어졌고, 2003년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등 유명 작품의 영화음악 작업을 연달아 맡으며 유명해졌다.

    “클래식을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레 영화음악에도 관심이 갔고, 중고등학생 때부터 미디음악(각기 다른 악기를 전자언어로 서로 어우러지게 만드는 컴퓨터 네트워크)을 혼자 틈틈이 공부했어요. 준비하는 자에게 복이 온다고, 꾸준히 공부한 덕에 기회가 찾아왔을 때 재빨리 잡을 수 있었죠.”

    100번 보고 수정해 음악 완성도 높여

    “자연의 산뜻함·동물의 감정 소프라노 리코더를 사용했죠”

    이지수 음악감독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음악 선생님이 들려준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을 듣고 음악에 빠져들었다.

    꽤 많은 작품에 음악으로 생명을 불어넣은 ‘프로’지만, 애니메이션 작업은 처음이라 ‘마당을 나온 암탉’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애니메이션 음악은 템포를 잘 조절해야 하고, 등장인물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맞춰서 음악을 집어넣어야 하기 때문에 신경 쓸 부분이 훨씬 많아요. 하지만 실사영화에서는 담을 수 없는 환상의 세계를 표현하다 보니, 음악 범위가 넓어져 한편으론 더 재미있기도 하죠.”

    ‘마당을 나온 암탉’은 한국 우포늪을 배경으로 닭, 오리, 수달 등 동물이 등장한다. 자연의 산뜻함과 동물의 변화하는 감정을 음악으로 잘 전달하는 것이 포인트. 그래서 이 음악감독은 드럼, 기타, 베이스, 건반을 포함한 밴드와 현악기, 관악기 등을 포함한 오케스트라, 그리고 리코더를 적절히 섞었다. 오케스트라를 가장 많이 썼지만, 중요한 장면에선 리코더를 적절히 활용했다.

    “리코더가 보기보다 기교가 뛰어난 악기예요. 크기에 따라 낼 수 있는 느낌도 다르죠. 예를 들어 초록이랑 잎싹이 숲을 즐겁게 걷는 장면에선 자연 색깔이 잘 나타나는 소프라노 리코더를 사용했어요. 초록이가 파수꾼이 돼 잎싹 곁을 떠날 때는 좀 더 낮고 구슬픈 느낌을 주는 알토 리코더를 사용했고요.”

    이 음악감독이 가장 공들인 장면은 비행 대회다. 10분에 달하는 긴 시간 동안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음악의 기승전결을 꼼꼼히 짜고, 박진감을 극대화하려고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을 많이 사용하는 등 록(Rock)적인 느낌을 가미했다. 감동과 웅장함까지 챙기려고 오케스트라도 적절히 조합했다.

    “밴드와 오케스트라를 조합하면 어떤 것이든 표현할 수 있어요. 최고의 조합이죠.”

    이 영화의 오케스트라 녹음은 체코에서 했다. 한국에도 좋은 연주자가 많지만 클래식 음악을 녹음할 만한 마땅한 장소를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에게 영화 스토리와 표현해야 할 느낌을 일일이 설명하면서 OST 녹음 전체를 꼼꼼히 모니터링했다. 녹음 장소에 스크린이 있어서 지휘자가 미리 만들어놓은 영상을 보며 그에 맞게 지휘할 수 있었다. 좀 더 완벽을 기하려고 현장에서도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구간 반복으로 봤지만 다 합치면 애니메이션을 100번 정도 본 것 같아요. 볼 때마다 아쉬운 부분이 있어서 빼고 넣고 하는 과정을 많이 거쳤죠. 하지만 이렇게 수정하면 할수록 음악적, 극적 완성도도 높아졌으니 보람 있는 작업이었지요.”

    그는 열악한 한국의 애니메이션 시장이 안타깝지만, 이번 흥행을 보면서 희망을 찾았다. 앞으로는 실사영화 음악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음악도 많이 작곡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좋은 음악으로 울림을 주는 작곡가이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영화 ‘시네마천국’의 엔니오 모리코네, ‘E.T’의 존 윌리엄스, ‘천공의 성 라퓨타’의 히사이시 조는 모두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고 영화음악의 거장이 된 사람이에요. 음악으로 사람 마음을 울리고, 그 곡으로 전 세계 투어 콘서트도 열죠. 저도 그들을 닮고 싶어요. 언젠가 제 음악으로 세계를 돌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할 수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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