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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SKT, 하이닉스 인수전서 발 빼나

구주 매각 논란에 새 주인 찾기 시계 제로…채권단과 인수 후보기업 간 갈등 심화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SKT, 하이닉스 인수전서 발 빼나

SKT, 하이닉스 인수전서 발 빼나

SK텔레콤은 “하이닉스 매각이 구주 중심으로 이뤄지면 입찰에 불참하겠다”고 밝혔다.

“하이닉스 주식 매각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추진하려 했으나, 채권단의 구체적인 입찰 조건 논의과정에서 결정되지 않은 사안 등이 보도돼 많은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죄송하다.”

8월 16일 한국정책금융공사 유재한 사장은 하이닉스 주식 매각과 관련한 책임을 지고 금융당국에 사의를 표명했다. 유 사장은 하이닉스 주주협의회(이하 채권단)의 하이닉스 지분 구주(채권단 보유 주식) 매각이 논란을 일으키자 적극 해명에 나섰지만, 오히려 혼란만 증폭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결국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한 것이다. 유 사장의 사의 표명으로 하이닉스 매각을 둘러싼 채권단과 인수 후보기업 간 갈등은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인센티브 주겠다” 발언으로 논란 촉발

일반적인 인수합병(M·A) 과정에선 인수 의사를 밝힌 후보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적 비판은 기본이요, 경우에 따라서는 소송전도 불사한다. 지난해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그룹 간 벌어진 현대건설 인수건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하이닉스 인수건은 인수 후보기업 간 다툼보다 채권단과 인수 후보기업의 갈등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갈등 원인은 인수 룰(rule)에서 비롯했다. 채권단은 6월 21일 하이닉스 매각공고를 하면서 “보유 중인 15% 지분(구주)의 전부 또는 일부를 매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회사가 발행하는 신주의 인수를 매각 대상 주식의 매각과 병행한다”는 문구를 뒀다. 시장에선 구주와 신주를 포함해 지분 17.5∼20% 선에서 하이닉스 매각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기존 구주 매각 방식은 인수대금이 모두 은행 및 한국정책금융공사에 들어가 회사에 남는 돈이 없다. 하지만 구주 매각을 하면서 신주 발행으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하면, 신주 비율만큼의 현금을 회사에 유보할 수 있다. 이를 운영 자금이나 인수 후 연구개발(R·D) 자금으로 쓸 수 있으므로 인수자는 상당한 부담을 덜 수 있다. SK텔레콤이나 STX가 주변의 우려에도 하이닉스 인수에 뛰어든 것도 이처럼 매각 조건이 입찰 참가자에게 유리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권단 편에선 구주를 비싼 가격으로 팔아 많은 매각 차익을 내는 것이 이득이다. 예비실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시장 안팎에선 채권단이 신주 발행을 하지 않고, 구주를 많이 인수하는 기업에 가산점을 준다는 소문이 돌면서 상황이 숨 가쁘게 돌아갔다. 6월 21일 유 사장이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채권단은 구주를 팔아야 하는 처지니 구주를 많이 인수한 쪽에 인센티브를 줄 생각”이라고 말한 것이 논란의 시발점이 됐다.

한국정책금융공사 관계자는 “가산점을 준다는 게 아니라 구주 인수를 많이 하면 자금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정을 한다는 의미”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SK텔레콤은 8월 9일 “신주 발행 없이 구주 중심으로 매각이 이뤄지면 본입찰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채권단에 강한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매각 공고 당시의 룰을 변경한다면 하이닉스 인수를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사실상 최후 통첩이다.

SK텔레콤과 STX의 하이닉스 인수를 위한 예비실사가 한창인 가운데 SK텔레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미국 신용등급 하락의 여파로 하이닉스 주가가 떨어지면서 ‘또다시 매각이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대두됐다. 그러자 유 사장은 8월 11일 기자회견을 갖고 “하이닉스를 매각할 때 구주를 많이 인수하겠다고 적어 내는 기업에 가산점을 줄 계획이 없다”고 해명에 나섰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싸늘했다. 그날 유 사장의 말을 복기해보자. 그는 “구주를 많이 인수하는 기업에 프리미엄을 줄 계획이 없고, 잘못된 루머일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구주 가산점을 완전히 배제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고려한 적도 없다”며 “경영권 프리미엄 총액을 따져서 (경영권 프리미엄 총액이) 더 많은 기업이 인수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SKT “불참 언급은 채권단에 대한 경고”

SKT, 하이닉스 인수전서 발 빼나

하이닉스 주주매각이 논란이 되자 채권단을 이끌어 왔던 한국정책금융공사 유재한 사장이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유 사장의 발언을 두고 “조삼모사식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터져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경영권 프리미엄은 구주에만 붙는다. 결국 채권단이 보유한 구주 지분을 비싼 가격으로 많이 산 사람이 유리하다는 의미다. 당장 투기자본감시센터는 “무슨 말인지 헷갈리게 했지만, 한마디로 ‘채권단이 가진 구주를 최고로 높은 가격에 사라’는 말을 비비 꼬아 다르게 표현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인수 후보기업들 역시 “신주 발행으로 호객행위를 해놓고선 이제 와 나 몰라”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 인수 후보업체 관계자는 “채권단이 공적자금 회수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자기 배만 불리는 머니게임을 하자는 것 아니냐”며 비판했다.

“한때 채권단은 하이닉스 지분의 80% 가까이 갖고 있었다. 2005년 5월 이후 다섯 차례에 걸쳐 ‘블록딜’을 하면서 하이닉스에 출자한 원금 4조9000억 원을 거의 다 회수했다. ”

특히 하이닉스 지분 2.6%를 보유한 한국정책금융공사가 민간 은행들보다 구주 매각에 적극적인 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또 다른 인수 후보업체 관계자는 “산업은행에서 분리한 한국정책금융공사가 9월 정기국회와 감사를 앞두고 뚜렷한 실적을 보여주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채권단은 “자금 회수를 위해 경영권 프리미엄을 최대한 키우는 것은 당연한 조치”라는 반응이다. 인수 후보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신주 발행을 허용했는데, 이제는 이들이 아예 헐값에 가져가겠다는 심보라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췄다. 신주 물량을 늘리는 것도 지금 상황에선 적절치 않다며 소극적인 자세다. 채권단 관계자는 “하이닉스 주가가 많이 하락했는데 여기서 신주를 발행하면 주식 가치가 희석돼 주가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SK텔레콤은 비록 “신주 발행 없는 구주 매각 중심”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지만, 본입찰 불참 여지를 둔 상태다. 그러다 보니 채권단 일각에선 “본입찰 불참 운운하는 SK텔레콤이 애초부터 인수 의사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구주 매각에 따른 부담은 SK텔레콤보다 STX가 더 큰데 SK텔레콤이 지나치게 오버한다는 것. 채권단 한 관계자의 주장이다.

“SK텔레콤의 인수 참여설이 처음 나왔을 때 내부적으로도 반대가 많지 않았나? 대내외적으로 인수 리스크가 커지니 발을 빼려고 명분 쌓기를 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하지만 SK텔레콤은 “인수 의향은 충분히 있다”며 정확한 매각 방식과 인수 조건이 나올 때까지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본입찰 불참을 언급한 것은 채권단에 대한 경고의 의미이지, 기정사실화한 것은 아니라는 뜻. 6주간의 일정으로 실시하는 예비실사가 9월 초 마무리되면, 채권단은 입찰제안서를 접수받고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구주 매각 논란이라는 암초를 만난 하이닉스 매각이 유 사장의 사의를 계기로 돌파구를 찾을지 관심이 쏠린다.



주간동아 2011.08.22 801호 (p32~33)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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