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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면 죽는다”… 모바일 특허전쟁

삼성전자, 통신표준특허 자부심 애플과 전면전…생존경쟁 갈수록 치열

  • 김현수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kimhs@donga.com

“밀리면 죽는다”… 모바일 특허전쟁

“밀리면 죽는다”… 모바일 특허전쟁
시작은 애플이 먼저 했다. 애플은 4월 15일 “갤럭시S가 아이폰의 디자인을 베꼈다”며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 삼성전자를 제소했다. 삼성전자는 당장 맞소송에 들어갔다. ‘애플은 우리 부품을 사가는 고객’이라며 말을 아끼던 과거의 삼성전자가 아니었다. 애플이 제소한 뒤 일주일 만에 한국·일본·독일 법원에 맞소송을 냈다. 6월 말에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해외에서 생산한 애플 제품의 미국 내 수입금지 신청까지 냈다. 애플도 한국 법원에 삼성전자를 제소했다. 두 회사의 특허전은 글로벌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보고 있기만 할 애플이 아니다. 7월 초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 삼성전자의 스마트 기기 4종에 대한 미국 내 판매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것. 해당 제품은 삼성전자의 미국 내 출시 스마트폰인 인퓨즈(Infuse) 4G, 갤럭시S 4G, 드로이드 차지와 태블릿PC인 갤럭시탭 10.1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애플의 가처분 주장이 법적 근거가 없다”며 “삼성전자 고객에게 제품을 공급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도록 적극적으로 대응해 삼성전자의 권리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맞불을 놓았다.

애플은 삼성전자가 아이폰을 베낀 사례로 갤럭시S의 둥근 모서리, 은빛 테두리,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의 둥근 모서리 등을 거론한다. 스마트폰 혁명을 일으킨 아이폰의 디자인을 삼성전자가 그대로 차용했다는 주장. 반면 삼성전자가 주장하는 애플의 특허 침해 건은 주로 통신기술이다. 1989년 휴대전화 사업에 뛰어든 전통 제조사인 삼성전자는 신생 모바일 회사인 애플에 비해 통신 분야 특허 보유 건수가 상당하다. 삼성전자는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에서 데이터를 전송할 때 전력소모를 줄이고 효율은 높이는 고속패킷전송방식(HSPA) 통신표준특허, 휴대전화를 데이터케이블로 PC와 연결하는 PC와 휴대전화의 무선데이터 통신 특허 등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한다.

“해보자” 전례 없는 자존심 싸움

묘하게도 삼성전자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 낸 소송을 6월 말 취하했다.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은 애플이 삼성전자보다 2주 앞서 첫 특허 소송을 낸 곳이다. 특허전쟁에서 화해의 제스처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분석과 달리, 삼성전자는 “더 효율적으로 소송에 대응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애플 소송과 삼성전자 소송을 이 법원의 같은 판사가 맡게 됐는데, 그럴 바에는 반소(反訴·카운터클레임)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얘기다. 반소란 소송이 진행되는 도중에 피고가 원고를 상대로 제기하는 소송으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본소송의 절차에 병합해 새로운 소를 제기하는 것을 말한다.

삼성전자가 전례 없이 애플과의 특허전쟁에 나선 데는 통신표준특허에 대한 자부심이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외신에 따르면 현재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통신 분야 특허 5933건을 포함한 총 2만8700건의 특허를 가지고 있으며 작년 한 해만 해도 4551건을 추가했다. 삼성전자, LG전자, 노키아 등 전통적인 휴대전화 제조사는 그동안 수차례 특허전쟁에 휘말리면서 자사의 특허 풀 관리를 철저히 해왔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국내 기업은 뭣 모르고 당하는 편이었지만, 중반부터는 지적재산권 인력을 대폭 강화하고 엔지니어 교육을 철저히 하면서 특허전쟁에 철저히 대비해왔다. 국내의 한 특허 전문 변리사는 “최근 국내 대기업들은 상대가 A로 제소하면 그 상대를 B·C·D로 제소할 수 있을 만큼의 방대한 통신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성해놓음으로써 끝장 싸움으로 가기 어렵도록 전략을 짰다”고 귀띔했다.

삼성전자 직원 사이에서 도는 농담이 있다. 반도체사업부에선 ‘애플 님’, 무선사업부에선 ‘애플 놈’이라는 것. 애플은 올 초 휴렛팩커드(HP)를 제치고 세계 반도체를 싹쓸이하는 업계 최고의 ‘큰손’으로 등극했다. 시장조사 전문업체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아이폰4 원가에서 삼성전자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30%에 이른다. 아이폰 아이패드가 많이 팔릴수록 반도체사업부는 ‘만세’를 외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안드로이드 진영의 최전선에 있는 무선사업부에서 애플은 단 몇 cm의 영역도 뺏기기 싫은 ‘적’이다. 회사 내에서 애플을 바라보는 두 가지 상반된 시각 때문에 삼성전자는 공식적으로 애플을 언급하길 꺼렸다.

그럼에도 삼성전자가 애플과의 특허전쟁을 ‘전면전’의 각오로 임하는 것은 모바일전쟁이 그만큼 치열해졌다는 방증이다. 스마트폰 플랫폼을 두고 벌이는 세기의 전투에서 애플과 안드로이드 진영의 대표격인 삼성전자가 시장, 법원 가리지 않고 생존싸움을 펼치고 있다는 얘기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는 각종 시장조사에서 30% 안팎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하며 애플을 위협한다.

애플에게 질 수도 없고, ‘큰손’ 고객을 잃을 수도 없는 삼성전자는 이런 난처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조직 개편을 감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조직 개편에서 사업부 소속의 해외법인체제를 ‘지역 총괄’ 개념으로 바꾸며 각 지역시장 총괄을 부품과 세트 부문으로 나눴다. 이달 초 이례적인 조직 개편 때도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 등 부품사업부만 따로 모아 DS(디바이스 솔루션) 총괄사업부를 만들었다. 장기적으로 세트(완제품)와 부품 부문으로 회사를 나눠, 세트 부문에선 글로벌 기업과 마음껏 전면전을 치르고, 부품 부문에선 고객을 효과적으로 대접하겠다는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난처한 상황 대비한 조직 개편

애플과 삼성전자가 세계 법원을 누비며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 다른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전쟁 틈새에서 살아날 궁리를 하고 있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은 애플과 삼성전자의 사이가 벌어지면 애플의 반도체 공급처로 인텔이 부상할 수 있다는 전망을 끊임없이 내놓는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노키아는 특허를 내세워 살길을 강구 중이다. 삼성전자처럼 전통 휴대전화로 대량의 통신특허를 보유한 노키아는 애플과 2년이 넘는 특허전쟁에서 승리한 바 있다. 언제 노키아의 화살이 적진인 안드로이드 진영으로 날아갈지 모른다. 서로 적인 줄만 알았던 애플과 MS, 리서치인모션(RIM)은 이례적으로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캐나다 통신장비업체인 노텔네트웍스의 6000여 건 특허를 45억 달러(약 4조8000억 원)에 사기로 했다. 이 3개 기업은 경쟁자지만 날로 커가는 안드로이드 진영 앞에서는 동지가 된 셈이다.

또한 MS는 안드로이드 OS에 들어가는 기술에 자사의 특허가 포함됐다며 세계 5위권 안에 드는 대만 휴대전화 제조사 HTC로부터 라이선스 비용을 받기로 한 데 이어, 모토로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 관련 협상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역사에 기록될 만한 세기의 모바일 플랫폼 전쟁이 시장과 특허 법원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며 “살아남기 위한 피 터지는 전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1.07.18 796호 (p54~55)

김현수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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