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6

2011.07.18

‘무한도전’이냐 ‘무모한 도전’이냐

STX 강덕수 회장 ‘하이닉스’에 눈독…인수자금 마련보다 인수 후 운영이 더 문제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1-07-18 09: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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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도전’이냐 ‘무모한 도전’이냐
    6월 21일 하이닉스 주주협의회는 하이닉스 매각 공고를 내고 인수의향서를 받았다. 당시만 해도 현대가(家)의 고토 회복을 꿈꾸는 현대중공업과 시너지 효과가 가장 크다고 평가받는 LG전자를 유력한 인수 후보로 꼽았다. 하지만 하이닉스 인수의 리스크가 워낙 커 뚜껑을 열어봐야 판도를 알 수 있다는 시각이 우세했다(주간동아 792호 ‘하이닉스 새 주인 현대重? LG?’ 기사 참조). 예상대로였다. 유력 후보였던 현대중공업과 LG전자는 일찌감치 손을 뗐다. 7월 8일 인수의향서 접수를 마감한 결과, 하이닉스 매각은 STX그룹과 SK텔레콤의 양자 대결로 좁혀졌다.

    STX그룹과 SK텔레콤이 하이닉스 인수전에 뛰어들자 시장이 보인 첫 반응은 의아하다는 것이었다. 조선이나 통신 모두 반도체와는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은 탓이다. 골드만삭스는 7월 11일 “잠재 인수 대상인 STX그룹과 SK텔레콤은 사업 포트폴리오상 하이닉스와의 시너지가 제한적”이라는 내용의 부정적인 보고서를 내놓았다.

    하이닉스 매년 3, 4조 원 투자 필요

    당장 3조 원에 달하는 하이닉스 인수 대금을 어떻게 마련할지도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그나마 자금 여력이 풍부한 SK텔레콤은 단독 인수가 가능하다. 하지만 자산총액 기준 재계 14위인 STX그룹이 17위인 하이닉스를 인수하려면 그룹 전체가 사활을 걸고 나서야 한다. STX그룹은 인수 자금의 절반을 내부에서, 나머지 절반은 재무적 투자자(FI)를 영입해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STX그룹의 3월 현재 현금성 자산은 3조 원. STX, STX Pan Ocean(팬오션), STX조선해양, STX엔진, STX에너지, STX중공업 등 국내 6개 주요 계열사가 1조2000여억 원, 나머지는 해외 계열사인 STX유럽과 STX대련이 보유한 것. 7월 8일 인수의향서 제출과 함께 STX유럽이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된 STX OSV 지분 일부를 매각해 2500억 원의 자금을 마련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STX그룹 이종철 부회장은 7월 7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하이닉스 인수를 위해 따로 차입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 대신 중동 아부다비 투자청 산하 펀드로부터 재무적 투자를 받을 계획이다. 아부다비 투자청은 반도체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아부다비 투자청 산하 국영기술회사인 ATIC는 다른 업체가 설계한 반도체를 생산해 공급하는 파운드리 업체를 운영한다. 이 때문에 반도체 업계 일각에선 “아부다비 투자청이 FI로 참가한다고 하지만, 향후 여러 사정에 따라 STX그룹으로부터 경영권을 가져갈 수도 있다”며 “그럼 국가 핵심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STX그룹이 자금 마련 계획을 밝혔음에도 시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설령 인수하더라도 막대한 투자비가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하이닉스 인수는 대한통운이나 대우조선해양 인수와는 차원이 다르다. 인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자칫 돈 먹는 하마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언제 또다시 ‘치킨게임’이 벌어질지 모르는 반도체시장 상황을 고려한다면 매년 3, 4조 원을 설비에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이닉스 자체 수익으로 투자할 수 있다곤 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가능하냐는 의문이 남는다.

    이러한 현실을 그룹이 모를 리 없다. 당장 STX그룹 일각에서도 “조선업을 잘하는데 왜 반도체냐”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STX그룹 강덕수 회장의 하이닉스 인수 의지는 확고하다. 강 회장은 조선과 해운업으로 수직계열화한 사업구조를 다변화하는 차원에서라도 하이닉스를 반드시 인수하겠다는 각오를 밝힌다.

    그러다 보니 그룹 직원 사이에선 “그래도 강덕수 회장이라면…”이라는 믿음도 일부 탐지된다. 강 회장은 STX그룹을 출범 10년 만에 재계 14위 대기업으로 키운 입지전적 인물이다. ‘인수합병(M·A)의 귀재’라는 별명에서 보듯 그는 사재를 털어 자신이 일했던 쌍용중공업(현 STX엔진)을 인수해 지금의 STX그룹으로 키웠다. 이후 대동조선(현 STX조선해양)과 야커야즈(현 STX유럽),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등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사세를 확장했다.

    인수합병 귀재 또 성공할까

    ‘무한도전’이냐 ‘무모한 도전’이냐

    4월 29일 STX그룹 강덕수 회장은 STX대련 조선해양 종합생산기지에서 창립 10주년 기념행사와 비전선포식을 가졌다.

    STX그룹 측은 이번 하이닉스 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5월 설립한 STX미래연구원을 중심으로 STX그룹의 비전과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을 구상하고 있었으며, 하이닉스 인수건도 그 일환이라는 것. 그룹 관계자는 “강 회장이 회사를 인수할 때마다 시장에선 예상을 뒤엎는 결과라고 했지만, 강 회장은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인수 대상과 시기를 선택해 M·A 효과를 극대화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믿는 게 강 회장뿐이냐”는 비판 또한 만만치 않다. 재계 관계자는 “강 회장이 성공의 덫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고경영자(CEO)라고 반드시 옳은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다. ‘CEO 리스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가. 아무리 미래를 내다본 전략이라지만 현재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CEO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더군다나 대규모 M·A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주주와 주거래은행을 이해시키는 일도 STX그룹으로선 쉽지 않은 숙제다. 재계 14위로 발돋움한 현재가 M·A의 빛이라면, 그로 인한 재무적 부담은 어둠이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해 말 기준 STX그룹의 연결기준 차입금이 7조5373억 원, 부채비율이 458.4%에 이른다고 밝혔다. 2010년 국내 기업의 부채비율 평균이 114.8%임을 고려할 때 높은 수준이다.

    STX그룹은 ‘100% 무차입 인수’를 공언하지만, 정작 인수에 성공하면 투자를 위해 차입이 불가피할 수 있다. 하지만 높은 부채비율을 고려할 때 사실상 차입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STX그룹의 주채권은행은 오래전부터 STX그룹에 대형 M·A를 자제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STX그룹은 크레디트 기업설명회(IR)가 열릴 때마다 차입 축소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자회사 상장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고 차입을 줄이겠다는 구체적인 약속도 제시했다. 하지만 지금껏 제대로 이행한 것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STX그룹의 한 주주는 “5월 열린 크레디트 IR에서도 회사 측은 대규모 투자보다 차입금 감축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지금은 대규모 M·A보다 재무구조를 튼튼히 하는 게 먼저”라고 비판했다.

    그러다 보니 STX그룹의 강한 부인에도 “간 보기 아니냐”는 얘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전례도 있다. STX그룹은 2010년 초 대우건설 매각 당시 인수의향을 밝혔지만, 재무상황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이기지 못한 채 포기를 선언했다. M·A 귀재의 운이 이번에도 통할지,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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