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8

2017.05.17

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금 대신 비트코인? 화폐혁명이 시작됐다!

2010년 첫 거래 피자 두 판 1만 비트코인, 현재 가치 약 223억 원

  • 지식 큐레이터 imtyio@gmail.com

    입력2017-05-15 15: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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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5월 18일 미국 플로리다 주 잭슨빌에 사는 한 비트코인 이용자(laszlo)는 인터넷 게시판에 피자 두 판을 자신에게 배달해주면 1만 비트코인을 주겠다고 올렸다. 이 이용자는 비트코인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실험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비트코인을 받는 피자 가게는커녕 비트코인 존재를 아는 사람도 극소수였다.

    놀랍게도 나흘 뒤 그의 집으로 피자가 배달됐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그의 글을 본 누군가가(jercos)가 잭슨빌의 한 피자 가게로 전화해 배달시킨 것. 약속대로 1만 비트코인이 인터넷을 통해 피자 구매자의 계정으로 입금됐다. 지금 그 피자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피자가 됐다.



    비트코인의 대담한 실험

    피자 두 판 값으로 지불한 1만 비트코인은 현재(5월 9일) 가치로 약 223억 원. 게시판 글을 보고 장난으로 약 3만 원에 피자 두 판을 사서 보낸 ‘jercos’가 1만 비트코인을 지금까지 갖고 있었다면 아마도 백만장자가 됐을 것이다. 도대체 비트코인이 뭐기에 이런 기막힌 일이 가능한 것일까.

    2009년 1월 3일, 당시에는 개인인지 집단인지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나카모토 사토시가 새로운 화폐 ‘비트코인’(Bitcoin · BTC)을 처음 사용했다. 나카모토는 발행 주체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화폐를 꿈꿨다. 거래는 철저히 익명으로 이뤄지되 그 거래 내용은 전부 기록으로 남아 모두가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을 이상적이라 믿었다.



    이렇게 고안된 비트코인은 원화나 달러처럼 중앙은행 같은 특정 기관에서 발행하지 않는다. 비트코인의 모든 거래는 철저히 익명(아이디 · ID)으로 이뤄지지만 누가, 언제, 얼마의 비트코인을 거래했는지는 단 한 건도 예외 없이 암호화돼 기록된다. 우리가 7년 전 피자를 둘러싼 익명의 거래(laszlo와 jercos의 거래)를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정 기관에서 발행하는 게 아니라면 비트코인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또 수많은 비트코인의 거래 내용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데 엄청난 자원이 들어갈 텐데, 그 일은 도대체 누구 담당할까. 바로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혁신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비트코인을 발행하려면 ‘채굴(mining)’을 해야 한다. 채굴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비트코인을 금처럼 땅에서 캐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비트코인 채굴이란 고용량 컴퓨터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복잡한 연산을 수행하는 일이다. 이런 연산을 성공적으로 하면 보상으로 소량의 비트코인이 지급된다. 이 과정을 금을 캐는 일에 비유해 채굴이라고 부른다.

    불특정 다수가 자신의 고용량 컴퓨터로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과정이 바로 일대일로 이뤄지는 비트코인의 거래 내용을 정리하는 일이다. 이렇게 비트코인 시스템 유지에 이바지한 대가로 그들에게 새로운 비트코인이 주어진다. 수많은 컴퓨터를 동원한 다수의 참여로 거래 내용이 기록되다 보니 비트코인은 해킹으로부터도 안전하다.

    예를 들어보자. 해커가 은행 거래 기록을 해킹하려면 은행의 중앙서버에 침투해야 한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관련 정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데다, 그 정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연산 처리(채굴)가 필수다. 그러니 해커가 비트코인 거래 내용을 조작하려면 엄청난 자원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안전한 금융혁신을 가능케 하는 블록체인 기술이다.

    이런 비트코인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즉 비트코인을 얻을 목적으로 고용량 컴퓨터를 비롯한 자원을 투자한다. 이런 개인의 투자가 비트코인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기심에 기반을 둔 개인의 행동이 공동체의 이익으로 귀결되는 모습을 비트코인 시스템이 구현하는 것이다.



    투기 상품인가, 대안 화폐인가

    5월 9일 현재, 1비트코인의 가치는 약 223만 원. 요즘처럼 비트코인 가치가 급등해 너도나도 채굴에 나서면 어떻게 될까. 그럼 비트코인 양이 늘어나 나중에는 가치가 폭락할 것이다. 미국 정부가 필요할 때마다 달러를 계속 찍어 돈 가치가 떨어지는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문제점에 대비해 비트코인은 애초부터 발행량을 2100만 비트코인으로 제한했다. 즉 2100만 비트코인이 모두 발행되면 그 이상 발행은 없다. 2월 기준 약 1600만 비트코인이 채굴됐다. 또 비트코인 시스템은 채굴량이 늘어날수록 연산 난도가 높아져 채굴을 더욱더 어렵게 할 뿐 아니라, 똑같은 기여에 대한 보상도 계속해서 줄어들도록 설정돼 있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이 과연 원화나 달러 같은 기존 화폐를 대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비트코인 가치의 불안정성이다. 비트코인은 2013년 12월 4일 1147.25달러(약 129만 원)까지 올랐다 2015년 1월 14일 177.28달러(약 21만 원)로 폭락했다. 그러다 다시 올해 들어 200만 원 넘게 폭등하고 있다.

    나카모토 등은 비트코인이 일상생활에서 원화나 달러 등을 대체하길 꿈꿨다. 하지만 현재 비트코인은 오히려 금 같은 안전자산 혹은 투기상품으로 여겨진다. 거래가 익명으로 이뤄진다는 특징 때문에 뇌물 수수, 마약 거래 등 국경을 넘나드는 범죄에 비트코인이 악용될 여지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비트코인과 뒤이어 나온 수많은 가상화폐의 미래를 밝게 본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통해 우리는 정부가 발행한 화폐와 그것에 기반을 둔 금융의 폐해가 심각한 상태임을 확인했다. 비트코인은 바로 그런 문제를 해결할 대안 화폐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도발적인 실천으로 볼 수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화폐혁명의 현장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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