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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이스라엘 현지취재 ‘벤처왕국’의 비밀 01

주간동아 현지취재 >> 벤처에 의한, 벤처를 위한 나라

창업 국가 이스라엘, 세계 최고의 기업가 정신으로 경제 기적 일궈

  • 이스라엘=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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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간으로 5월 2일 오전 10시. 이스라엘 전역에 사이렌이 울렸다. 예루살렘의 중심부 킹 데이비드(King David)의 4차선 도로를 가득 메운 차가 일제히 멈춰 서고 운전자들은 모두 차 밖으로 나왔다. 길을 걷던 사람들도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섰다. 모두 고개를 숙였다. 차, 사람, 심지어 그 많던 개도 일제히 멈춰 섰다. 온 지구가 정지한 듯.

2분 남짓 지났을까. 사이렌이 멈추고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제 할 일을 했다. 이날은 유대인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추모일이면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이 지구촌에 알려진 첫날이었다. 지나가는 차마다 창문에서 하얀 바탕에 하늘색 별이 새겨진 이스라엘 국기가 흩날렸다.

잿더미 위에서 경제 기적 꽃피워

“저 역시 ‘홀로코스트 서바이벌’ 2세예요. 우리 가족 중 할아버지와 아버지만 살아남았죠. ‘잿더미에 세워진 나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스라엘 외무부 아시아경제 담당 길 해스켈(Gil Haskel) 씨가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실제 이스라엘에서 만난 사람은 대부분 본인 혹은 가족이 홀로코스트 피해자였다고 고백했다. 이스라엘 기업 ‘네타핌’에서 만난 이치크 인바르(Itzik Inbar) 씨의 어머니는 1940년대 7남매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모로코 출신의 한 유대인 할머니 팔에는 수용소에서 새긴 번호가 아직도 선명했다. 한 ‘홀로고스트 2세’는 “부모가 나치에 당한 기억으로 매일 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고 털어놓았다.



이러한 상처를 품은 이스라엘이 1948년 건국 이후 60여 년 만에 세계 24위의 경제 대국(세계경제포럼 2010~2011 기준)으로 성장한 것은, 그들 말처럼 ‘기적’인지도 모른다. 인구 753만 명(한국 인구의 약 6.4%), 면적 2만 km2(한국 면적의 약 20.4%)인 작은 나라 이스라엘의 2010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만8800달러로 한국(2만591달러)보다 많다. 해스켈 씨는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 주변 모든 나라의 GDP를 더해도 이스라엘에 미치지 못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스라엘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자원이 없는 나라다. 사이가 안 좋은 주변 중동 국가에서 기름을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기름값도 한국의 1.5배다. 해스켈 씨는 “이스라엘은 자원이 하나도 없는 나라다. 가진 거라고는 사해(Dead sea)의 소금밖에 없는데, 알다시피 소금은 가장 저렴한 광물”이라며 웃었다.

세계적으로 이스라엘이 특히 뛰어난 분야는 농업, 군사기술, 그리고 정보기술(IT) 쪽이다.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IBM 등 글로벌 IT 기업은 앞다퉈 이스라엘에 투자했다. 삼성전자도 2007년 이스라엘의 비메모리 반도체 전문 업체인 트랜스칩(Trans Chip)을 인수했다. 2006년 인텔이 코어2 듀오칩을 제작해 ‘무어의 법칙’(반도체 집적회로의 밀도가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법칙)을 극복한 것도 인텔 이스라엘의 아이디어 덕분이다. 세계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이 최초로 투자한 외국 기업은 이스라엘의 IMC다.

스위스의 경영대학원인 국제경영개발원(IMD)은 2010년 58개 국가를 기준으로 ‘세계 경쟁력 순위’를 발표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종합순위 17위를 차지했다. 이때 이스라엘은 ‘전문화한 노동력’ ‘벤처 창업’ ‘연구개발(R·D) 투자 비율’ ‘혁신 수용성’ 등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과학 기술’ ‘경영 전문성’ 등에서는 2위를 차지했다.

전 세계는 ‘이스라엘 경제 기적’에 주목한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대인 600만 명(유럽 전체 유대인의 80%)이 사망했고, 1948년 건국을 선포한 다음 날부터 아랍 연맹과 전쟁을 치러야 했던 이스라엘이 60여 년 만에 이토록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을 앞다퉈 배우려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지난해부터 ‘창업국가 투어(Start-up nation tour)’라는 여행 프로그램까지 만들었다. 기업가, 언론인, 학생 등 비결을 배우러 오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경제 성장의 비밀을 소개하는 관광 프로그램이다.

‘1948년 건국 동기’인 한국 역시 이스라엘에 관심이 많다. 지난해 이스라엘의 경제 성장을 소개한 책 ‘창업국가’는 국내에 최초로 번역돼 그해 8월부터 올 5월까지 총 1만2000부가 팔렸다. 이 책을 번역한 미국 벨연구소 윤종록 특임연구원(전 KT 부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추석 선물로 사회지도층 600여 명에게 이 책을 전했고 삼성, LG, 포스코, KT 등에서 ‘임직원 필독서’로 선정했다”고 전했다.

연구개발 투자 비율·혁신 수용성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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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수준의 이스라엘 바이츠만 과학연구소.

특히 ‘일자리 문제 해결’로 전 세계가 골머리를 앓는 요즘 이스라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월 25일 신년 국정연설에서 ‘일자리(job)’라는 단어를 31번이나 언급했다. 2010년 미국 실업률은 9%가 넘는다. 2010년 한국 실업률은 3.7%대지만 청년 실업률은 8.5%로 전체 실업률의 2배 이상이다. 신규 대졸 실업률은 청년 실업률의 4배가 넘는다. 이스라엘 역시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실업률이 늘어나 2010년 실업률이 7.2%에 달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특별한 점은 ‘실업자가 일자리를 찾지 않고 직접 만들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벤처기업 수는 총 3850개(2009년 기준). 인구 1884명당 1개꼴이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부는 24개 벤처 인큐베이터의 심사를 통과한 청년 창업가에게 자본의 85% 이상을 지원한다. 이스라엘의 2008년 벤처캐피탈 투자 액수는 미국의 2.5배, 유럽 전체의 30배, 인도의 350배였다. 구글 최고경영자(CEO) 에릭 슈미트가 “창업자에게 이스라엘은 미국 다음으로 최고인 나라”라고 했을 정도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학사,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석사를 마친 ‘우수 인재’ 미시 하먼(Mishy Harman·28) 씨는 최근 이스라엘로 돌아와 ‘뮤즈트렉(Muse Trek)’이라는 벤처기업을 설립했다. 뮤즈트렉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블로그를 통해 이용자들이 여행 정보를 올리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회사. 하먼 씨는 “공부를 마치면 이스라엘로 돌아온다는 사실에 의심은 없었다. 최근 벤처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전혀 문제가 안 된다”며 “이스라엘은 실수해도 되는 나라, 뭐든 할 수 있는 나라, 그리고 내가 일으켜야 하는 나라”라고 덧붙였다. 그는 소규모 엔젤 벤처투자가 다수에게 투자를 받았고, 이스라엘 국립박물관 등 6개의 파트너와 협력한다.

‘이스라엘을 배우자’ 세계적 관심

이들의 창업 무기는 IT, 바이오, 의약산업 등 ‘하이테크’ 산업이다. 코트라(KOTRA) 텔아비브 지사에 따르면, 2008년 기준 IT산업이 전체 이스라엘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1.2%였고, IT산업의 수출액은 이스라엘 전체 수출액의 26%를 차지했다. IT산업에서 일하는 이스라엘 인구는 총 노동인구 중 6.9%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받는 평균연봉은 이스라엘 전체 평균연봉의 2.4배에 달한다.

최근 주목받는 분야는 생명과학이다. 이스라엘 생명과학은 신성장 산업 분야로 관련 기업 70%가 창업 10년 미만의 신생기업이다. 현재 이스라엘은 의약품을 세계 100여 개국으로 수출하는데, 2008년 총 매출액이 53억 달러에 달했다. 2009년 미국 인구통계국은 “일반적으로 설립한 지 5년이 안 된 회사가 고용의 대부분을 창출한다”고 발표했다. 생명과학 파이가 점점 커져가는 이스라엘에서 일자리 창출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다. 인텔 출신 ‘창업국가 투어’ 가이드 스티브 그래이(Steve Gray) 씨는 이스라엘 창업 비결을 이렇게 정리했다.

“폭탄이 떨어지면 공장은 무너지지만 머릿속에 든 것은 죽기 전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힘은 이 두뇌에서 나옵니다.”



주간동아 2011.05.16 787호 (p12~14)

이스라엘=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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