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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황금거위? 개살구? 한국 뮤지컬의 속살 05

“배우는 내 운명, 늘 노력하고 발전할래요”

‘천국의 눈물’의 주연 윤공주 씨 “기회 되면 활동 반경도 넓히고파”

  • 박혜림 기자 yiyi@donga.com

“배우는 내 운명, 늘 노력하고 발전할래요”

“배우는 내 운명, 늘 노력하고 발전할래요”
2월 1일부터 시작해 3월 19일 막을 내릴 예정인 뮤지컬 ‘천국의 눈물’은 기획 단계부터 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주)설앤컴퍼니가 처음부터 브로드웨이를 겨냥하고 만든 대형 창작뮤지컬이기 때문. 연출가 가브리엘 베리,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등 세계적인 제작진이 참여하고 브로드웨이 스타 브래드 리틀, 한류 스타 시아준수가 주요 배역을 맡은 것도 한몫했다. ‘천국의 눈물’은 베트남전쟁에서 만난 한국 병사와 베트남 여성 린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2월 2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의 한 갤러리에서 베트남 여성 린과 그의 딸 티아나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윤공주(30)를 만났다. 지고지순한 여인 린과 달리, 싱긋 웃으며 기자에게 인사하는 그의 표정엔 장난기와 애교가 가득하다. 먼저 이번 뮤지컬에 참여한 소감부터 물었다.

“의사소통이 어렵진 않을까 걱정했어요. 그런 부분은 문제가 되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가브리엘 베리의 체계적인 작업방식을 보고 많은 것을 배웠어요. 작은 것 하나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어요. 예를 들어 모든 배우의 연습 일정을 철저히 계산하고 지키죠. 창작 뮤지컬이다 보니 중간에 내용을 수정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흔들림 없이 차근차근 일을 처리하는 태도도 인상적이었어요.”

시골 소녀에서 뮤지컬 배우로

윤공주가 ‘천국의 눈물’ 오디션에 참가한 것은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한 음악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오디션 당시 작품의 구체적인 내용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간단한 내용만 지원자들에게 공개해 그 역시 주요 노래만 듣고 오디션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공주’라는 이름이 특이하다. 윤공주는 “아버지가 1935년생, 어머니가 1943년생으로 연세가 많은 편”이라며 “늦둥이다 보니 예쁘게 크라고 지어준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윤공주는 유년 시절을 경기 일산에서 보냈다. 그는 자신을 논과 밭을 뛰어다니며 자란 전형적인 시골 아이라고 회상했다.



“뮤지컬 배우다 보니 집안에 예술을 하는 분이 없냐는 질문을 받는데, 전혀 그런 분이 없어요(웃음). 문화적인 환경이라고는 TV밖에 없었고요. 그래도 어릴 때부터 끼는 있는 편이어서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자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어요. 중고등학생 때도 장기자랑 자리에는 꼭 나갔고요. 한번은 축제 때 4번이나 장기자랑 무대에 오르기도 했어요.”

그렇다면 윤공주는 언제부터 뮤지컬 배우를 꿈꾼 걸까.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나하나 해오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뮤지컬 배우라 부르더라”고 답했다. 막연히 연기가 하고 싶어 단국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갔고 연극, 뮤지컬 등 연기와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했다. 대학 내에서 올리는 공연이 아닌 프로 무대에 처음 선 때는 2003년.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의 앙상블이었다.

“용돈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찾는데 뮤지컬 오디션이 있더라고요. 노래와 춤도 배우고 돈도 벌 수 있으니 일석삼조였죠. 사실 경제적으로 어려워 다른 친구들처럼 레슨을 받을 수가 없었어요. 기본기 없이 바로 오디션에 도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할 순 없지만, 저는 작품을 연습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웠어요. 물론 체계적으로 레슨을 받는 사람들보다 잘하기 위해서 훨씬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윤공주는 그렇게 하고 싶은 작품의 오디션에 차근차근 도전했고 작품을 연습하는 과정에서 실력도 쌓았다. 최근에는 프로 무대에서 활동하는 대학 재학생이 느는 추세지만, 보통 뮤지컬 배우는 대학을 졸업한 뒤에야 프로 무대에 데뷔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윤공주는 데뷔가 빠른 편이다. 더구나 그는 지금까지 주인공이나 주인공급 배역을 주로 맡았다. 오디션에 그렇게 척척 붙는 비결이 뭐냐고 묻자 윤공주는 “늘 나는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하고는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탈락한 오디션을 다 적으면 기자님도 굉장히 놀랄 것”이라며 웃었다.

‘맨 오브 라만차’의 절망에 빠진 창녀 알돈자, ‘올슉업’의 사랑을 얻으려고 남장을 하는 나탈리, ‘틱틱붐’의 코믹한 수잔. 지금까지 윤공주가 맡은 역할은 그 성격이 확연히 다른 경우가 많다. 그는 “‘윤공주가 저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깨고 싶다”고 말했다. “이 배우는 이런 이미지가 어울린다는 식으로 정의를 내리는 게 탐탁지 않아요. 그냥 이번에 진지한 역할을 하면 다음엔 코믹한 역할을 하고 싶어요. 망가지더라도 그게 좋아요.”

연습벌레·자학공주 별명 고맙죠

“배우는 내 운명, 늘 노력하고 발전할래요”
지인들이 말하는 윤공주의 별명은 연습벌레와 자학공주. 윤공주는 “모든 배우가 다 열심히 연습한다”며 자신이 연습벌레로 불리는 것을 쑥스러워했다. 자학공주는 스스로도 인정하는 별명이다.

“늘 공연이 끝나면 ‘나 못했다’고 자학을 해요. 주변에서 잘했다고 칭찬을 해도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저의 장점이 늘 다른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배우려 하는 태도라고 봐요. 제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여기는 거죠. 이런 태도 때문에 무용을 전공하지 않고도 ‘토요일 밤의 열기’를 연습하면서 발레와 현대무용을 배울 수 있었어요.”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이래 윤공주는 매년 쉬지 않고 공연에 서왔다. 데뷔한 지 햇수로 11년이 되는 그에게 잠시 숨을 돌리며 쉬고 싶은 마음은 없냐고 물었다. 그는 “전혀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연을 할 때마다 배우는 점이 있고, 제 자신이 발전하는 걸 느껴요. 그 점이 좋고 설레요.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돈을 벌고, 또 많은 사람이 사랑까지 해주잖아요. 신기한 일이죠.”

윤공주는 뮤지컬 연기와 드라마, 영화 연기가 표현방식에서 차이가 있을 뿐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 그렇기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른 분야로 활동 반경을 넓힐 의향도 있다. 그는 관객 혹은 시청자가 자신이 연기하는 배역에 몰입해 함께 울고 웃기를 바란다.

“얼마 전 ‘천국의 눈물’을 본 한 관객이 인터넷에 남긴 글을 보고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자신 린이 돼서 울고 웃었다는 내용이었어요. ‘노래를 잘한다’ ‘춤을 잘 춘다’와 같은 칭찬보다 감동적이었죠.”

그는 사람들이 극장에서 뮤지컬을 꼭 한번 보기를 원한다.

“뮤지컬은 백번 설명하느니 한 번 보는 게 나아요. 드라마, 음악, 무대, 조명 등 모든 것이 동원되는 한마디로 종합예술이잖아요. 한번 뮤지컬의 매력에 빠지면 빠져나오기 힘들죠. 사실 우리나라 뮤지컬 티켓 가격이 비싼 편이에요. 저 역시 티켓 가격이 아깝지 않도록 더 열심히 노력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뮤지컬 배우로서의 바람을 물었다. 그는 “길고 가늘게 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며 웃었다.

“늘 지금만 같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배우가 안 됐으면 무슨 일을 했을까 하고 상상해보면 그림이 도통 그려지지 않아요. 배우로서 최대한 오래 활동하고 싶어요. 지금 제가 뮤지컬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 역시 변치 않았으면 합니다.”



주간동아 2011.03.07 777호 (p44~45)

박혜림 기자 yiy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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