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7

2011.03.07

카다피, 당신 엄청 떨고 있지?

불안해소 큰소리 뻥뻥은 ‘역공포적 방어’…극단적인 권력과시 파멸로 이르는 길

  •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의학박사 psysohn@chollian.net

    입력2011-03-07 0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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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다피, 당신 엄청 떨고 있지?
    리비아의 42년 철권 통치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퇴진을 요구하는 민주화 시위가 격화하고 있다. 국민을 상대로 전투기와 헬기를 동원해 폭격을 가한 카다피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으로 보인다. 이웃 나라 튀니지에선 재스민 혁명이 일어난 결과,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이 23년 만에 대통령직을 사퇴하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중동 및 북아프리카의 민주화 물결은 산유부국이 몰려 있는 아라비아반도 왕정국가들로 옮겨붙고 있다.

    불안장애와 우울증 앓는 폭주족

    중동 민주화 혁명은 여러 형태의 불안을 사람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경제적 불안이 대표적이다. 어쩔 수 없이 기름을 사용해야 하는 현대 문명의 사람들은 유가폭등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걱정한다. 연료비가 비싸지면 자동차를 마음껏 타지 못할 것이고, 전력 또한 풍족하게 쓰지 못하니 냉난방이 열악한 방에서 살 것이다. 물가가 치솟아 삶의 질이 후퇴하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중동의 독재체제가 유지된 채 안정을 얻는 것보다 민주화가 빨리 달성되기를 바란다. 비록 그들이 우리와 같은 민족이 아니더라도 인간으로서 인권과 자유, 평등을 얻기 바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정도의 불안은 감당할 용의가 있다.

    더군다나 나 혼자만 겪게 될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 겪을 문제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덜 불안해진다. 개인의 특수성에 기인한 불안은 잠재우기 힘들지만, 집단의 보편성에 기인한 불안은 서로 나눌 수 있기에 덜 괴롭다. 그러나 극소수의 일부 집단은 매우 불안해한다. 바로 독재자 그룹이다. 여기에는 중동 지역의 독재 정치인, 왕족, 귀족 그리고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과 공산당 간부, 북한의 김정일과 김정은 부자와 그들을 따르는 지배계층이 해당된다.



    대북 라디오 ‘열린북한방송’에 따르면, 김정일은 2월 초 자신의 관저 주변에 탱크 수십 대를 배치시켰다고 한다. 북한 전역의 김정일 별장과 관저 등 10여 개 장소에도 100대의 장갑차가 배치됐다고 하니 중동 시위를 바라보는 김정일의 마음이 얼마나 불안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간에게 불안 증상이 심해지면 이상 행동이 나올 수 있다. 평소와 달리 과민해지고 신경질적으로 바뀌며, 사소한 문제에도 긴장하거나 그릇된 해석을 한다. 체제 강화를 위해 주민에 대한 단속을 강화할 것이고, 대외적으로 자신의 정권이 얼마나 견고한지 과시하기 위한 행동을 보일 가능성도 크다.

    카다피가 TV에 나와 큰소리치고 흥분하는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그의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맞을까봐 두려운 아이는 상대방 아이를 먼저 공격하게 마련이다. 속으로 겁을 내는 사람은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고자 과감한 행동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역(逆)공포적 방어(counter-phobic defense)’라 한다. 예를 들어 의사 지망생 중 일부는 자신의 건강에 대한 두려움과 피지배에 대한 염려 때문에 수술대의 환자를 자기 손으로 수술할 수 있는 외과 의사를 지망하기도 한다.

    또한 겉으로 강하고 거칠어 보이는 오토바이 폭주족 청소년 중에는 의외로 불안장애나 우울증 환자가 많다. 높은 곳을 무서워했던 소년이 자라서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경우도 ‘역공포적 방어’의 결과다. 카다피는 도대체 얼마나 무서웠으면 진압봉이나 최루탄 가스가 아니라 총을 들었고, 그것도 부족해 대포와 미사일을 사용했단 말인가. 그의 말로는 분명하다. 마지막 불안을 견디지 못하면 자살이란 방법을 택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독재자만큼 겁쟁이요, 불안한 사람은 없다. 늘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타인에 대한 의심 때문에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킨다. 가족이나 친척과도 100% 편안하게 의사소통할 수 없다. 사실 독재자만큼 적응 능력이 없는 사람도 없다. 물론 새로운 환경 또는 환경의 변화에 처하면 누구나 불안해진다. 예컨대 새로운 상급 학교, 학년, 직장, 거주지 등에 있게 되면 누구나 적응하기까지 불안해하지만 이런 초기의 불안 상태는 어느 정도 감수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낯선 환경에 적응해 어느덧 그것이 더 익숙한 환경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독재자는 지상 최고의 겁쟁이

    카다피, 당신 엄청 떨고 있지?

    사면초가에 몰린 카다피는 반정부 세력에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30~40년간 최고 통치자의 자리를 유지했던 사람이 어느 날 권력을 놓게 되는 환경적 변화에 적응할 수 있을까? 장기간의 권력이 그로 하여금 적응 능력을 퇴보시켰을 것이다. 독재자가 죽을 때까지 권력을 놓고 싶어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권력의 달콤함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하나의 이유가 더 커지게 마련이다. 바로 권력 이후의 적응에 대한 불안감과 자신감 상실이다.

    불안은 전염력이 강하다. 과거에는 옆에 있는 사람들의 불안한 모습을 보고 나도 불안해했다. 그러나 불안은 전염력이 강력한 만큼 주변 사람들에 의해 잘 치유된다. 시험 때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불안한 사람들이 모여서 한번 얘기하기 시작하면, 30분이나 1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공부 시간을 손해 본 만큼 불안을 경감시킨 심리적 이득이 있다. 우리는 오늘도 모여서 밥을 먹으며 중동의 민주화 시위와 그것에 따른 경제적 영향을 걱정한다. 그러다 보면 결론이 다소 부정적인 내용이라 할지라도 감정만큼은 덜 불안해진다.

    독재자들은 과연 누구와 얘기하면서 불안을 해소할 것인가. 별로 없다. 결국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방편으로 극단적인 행동을 계획하면, 말리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자신의 불안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가장 극단적인 힘을 과시하거나 절대 권력을 확인하려 할 것이다. 그것이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길임을 알지 못한 채 무모한 언행을 계속한다. 역사는 한 평범한 개인의 희생과 억울한 사건에 의해 변화되기도 하지만, 오만방자한 독재자의 독선적 결정과 개인 감정의 해소로 전혀 다른 방향의 변화가 이뤄지기도 한다.

    결국 그러한 변화는 백성에 의해 올바른 방향으로 귀결되기에 참으로 다행이다. 오늘도 중동발 경제 불안을 좀 느끼기는 했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잠시 접어뒀다. 그보다는 독재 정권이 빨리 무너져 백성에게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세상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된다. 한국경제를 걱정하는 불안보다 남의 나라 민주주의 확립을 걱정하는 불안이 더 크니, 이는 필자만의 마음만은 아닐 터. 갑자기 1987년 6월 서울 광화문 거리를 가득 메웠던 와이셔츠 부대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독재 타도와 민주주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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