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1

2010.11.08

“사랑하고… 아이 낳고… 여자의 행복엔 장애 없다”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서지원 씨 “난 무성적 존재 아닌 여성, 색안경 낀 시선 바꿔야”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0-11-08 10:5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사랑하고… 아이 낳고… 여자의 행복엔 장애 없다”
    10월 29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 ‘장애여성공감’에서 만난 서지원(30) 씨는 연극 연습에 한창이었다. 서씨가 출연할 연극은 11월 24~27일 마포구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공연하는 ‘거북이 라디오’다. 서씨는 장애여성극단 ‘춤추는 허리’의 배우이자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이다.

    “장애여성의 삶을 직접 연기해요.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 힘들지만 잘 살고 있다’는 메시지를 연극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비장애인들은 빨리빨리 움직이고 분주히 집안일 하며 살지만 우리는 거북이처럼 느립니다. 그래서 제목이 ‘거북이 라디오’예요.”

    하은이네 세 식구의 행복한 보금자리

    11월 2일 오후 강서구 가양동 서씨의 집을 찾았다. 남편 김남중(28) 씨가 걸어나와 기자를 맞았고, 서씨는 무릎을 바닥에 댄 채 반갑게 인사했다. 김씨도 왼쪽 팔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지만 겉으로는 비장애인과 구분하기 어렵다. 방에 들어서니 서씨 부부의 딸 하은이가 활짝 웃고 있다. 방문에는 ‘♥꽃보다 하은♥ 첫 번째 생일 축하해요’라고 쓴 작은 플래카드가 걸렸다. 서씨는 하은이를 바라보며 “여기까지 오기까지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서씨는 1980년 송파구 잠실에서 중증 뇌성마비를 갖고 태어났다. 어머니는 비관했고, 아버지는 스스로 정관수술을 택했다. 더는 아이를 갖지 않고 그에게 잘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장애를 갖고 태어났지만 그가 당당하고 활기찰 수 있는 것은 바로 아버지 덕분이다. 아버지는 두 살 터울인 언니와 서씨를 차별 없이 키웠다. 언니와 외출할 때면 꼭 서씨도 데리고 나갔다. 집안일을 한 딸에게 100원씩 용돈을 줄 때도 언니에게 설거지를 시키면 서씨는 방을 닦게 했다.



    “어렸을 때 안 해본 게 없어요. 부모님도 늘 잘한다, 최고다 칭찬해줬어요. 그러니 남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죠. 친구들이 ‘넌 왜 휠체어를 타고 다니냐’며 놀려도, 놀리는 친구들을 이상한 사람으로 여길 정도였어요.”

    구김살 없이 큰 서씨지만 한 남자와 사랑을 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평범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싸워야만’ 했다. 서씨 부부는 2007년 한 장애인단체에서 만났다. ‘작업’은 두 살 연상의 서씨가 시작했다. “누나랑 만나볼래, 사귀어볼래”라며 농담처럼 건넨 서씨의 말에 김씨도 기분 좋게 응했다. 부끄럼 많은 김씨는 서씨의 매력으로 활달함을 꼽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었다. 하지만 정작 사랑이 깊어진 뒤 서씨가 주저했다. 그는 “난 혼자 밥도 못 먹는다. 이런 나를 감당할 수 없으면 시작도 하지 말자”며 한발 물러섰지만, 김씨는 “오래 고민했고 끝까지 안 갈 거면 시작도 안 했다”며 서씨의 손을 꼭 잡았다.

    둘은 비장애인 연인처럼 서로 아끼고 사랑했다. 성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도 서로 교감하면서 즐겁게 성관계를 해요. ‘너희도 성욕이 있느냐’며 묻는 사람도 많지만 우리도 남들과 전혀 다르지 않아요.”

    하지만 둘의 사랑을 환영하는 사람이 없었다. 동거를 시작한 뒤 주변의 시선은 싸늘했다. 서씨와 절친했던 한 언니마저 “언젠가 남자가 널 버리고 떠날 것”이라고 단언했다. 서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또박또박 “당신들이 나를 어떻게 아느냐, 지켜보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처음 김씨의 부모는 서씨와의 만남조차 거부했다.

    “하은이를 낳고 보니 내 새끼부터 생각하는 부모 마음이 이해돼요. 그래도 시부모님이 저를 보지도, 이야기도 나눠보지 않은 채 무조건 안 된다고 하셔서 무척 속상하고 힘들었죠.”

    2008년 6월 19일 서씨 부부는 다른 장애인 부부와 비밀리에 합동결혼식을 올렸다. 용기를 내 결혼 소식을 알렸다가 뜯어말리는 바람에 식도 못 올리고 헤어진 다른 장애인들의 충고에 따라 비밀리에 했던 것. 서씨는 결혼한 지 한 달이 지난 뒤 전남 진도군 김씨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 김씨 부모는 “왜 연락도 하지 않고 식을 올리는 불효를 저질렀느냐”고 했다. 서씨 부부를 인정해준 것이다.

    하은이를 낳는 일도 무척 힘들었다. 서씨는 한 차례 유산을 했다. 언니와 비슷한 시기에 임신한 그는 “건강하니 괜찮겠지”란 생각에 언니처럼 바쁘게 다니며 결혼 준비를 했다. 하지만 피로 때문인지 어느 날 하혈하다 유산했다. 충격을 받은 서씨는 하은이를 가진 뒤 매일 노심초사했다. 태어나는 날까지 기도가 이어졌다.

    부부의 간절함과 달리 모두가 하은이의 존재를 축복해주지는 않았다. 초음파 검사를 받으러 서씨가 산부인과를 찾았을 때, 간호사는 대뜸 “아이를 지우러 오셨느냐”며 안내를 시작했다. 주변에서도 “불편한 몸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겠느냐”며 걱정부터 했다. 서씨 역시 “나를 닮아 몸이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밤잠을 설쳤다.

    “사랑하고… 아이 낳고… 여자의 행복엔 장애 없다”
    서씨 부부의 간절한 소망을 알았는지, 하은이는 2009년 7월 31일 제왕절개로 건강하게 태어났다. ‘무성적인 존재’로 여겨지던 장애여성 서씨는 그날 엄마가 됐다. 서씨가 남편에게 처음 건넨 말이 “손가락, 발가락이 몇 개인지 확인해보라”였다.

    건강하게 태어난 하은이를 본 기쁨도 잠시. 서씨는 출산 후 한 달 동안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이유로 우울증에 시달렸다. 모유 수유를 꼭 하고 싶었지만 하은이를 오래 안을 수도 없었다. 남편이 유축기로 모유를 짜 하은이에게 먹였다. 하은이에게 손이 많이 가니 결국 친정어머니가 데려가 키웠다.

    “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셔서 고맙긴 해도, 언니 아이를 돌볼 때는 하나하나 언니에게 물으시던 어머니가 하은이 돌볼 땐 내게 한마디도 상의하지 않아 조금 섭섭했어요. 그래도 내 아이인데 직접 키우고 싶었고, 남편도 우리가 해보자고 해서 다시 집으로 데려왔죠.”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5개월 된 하은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매일 울고 떼쓰던 하은이도 집에 온 뒤 부모의 사정을 아는지 방긋방긋 잘 웃고 울지 않았다. 그도 불편한 몸으로 업어주고 안아주며 어머니 노릇을 다했다.

    길 나서면 사람들이 “아이 엄마는 어디?”

    활달한 엄마, 잘 웃는 아빠, 예쁜 하은이는 행복한 가족이지만, 여전히 타인의 시선에는 가족으로 비치지 않는다. 셋이 함께 걸어가면 사람들이 다가와 “아이 엄마는 어디 갔느냐”고 묻는다. 우리 사회에서 서씨는 절대 어머니가 될 수 없고, 돼서도 안 되는 존재다. 서씨가 하은이 엄마인 줄 아는 사람들도 “아기 아빠가 고생이 많다”며 김씨의 수고만 인정할 뿐 애써 서씨의 존재를 지운다.

    “남편의 수고가 많지만, 육아에는 제 몫도 있어요. 저는 하은이와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사랑으로 돌봅니다. 남편도 모르는 게 많아서 하은이를 돌볼 때 일일이 저와 상의하고요.”

    서씨와 대화를 나누며 우리 사회가 감춰놓은 그의 여성적인 매력을, 아이를 사랑하는 모성을 보았다. 우리 대부분은 이 당연한 사실을 외면한 채 장애여성을 무성적인 존재로 터부시하며 살아가고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