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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한국판 SEX&THE CITY-그 여자의 속사정 02

아직도 갈 길 먼 ‘女性개벽’

‘마녀 젖꼭지’에서 ‘핑크 비아그라’까지 여성의 성 잔혹사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아직도 갈 길 먼 ‘女性개벽’

아직도 갈 길 먼 ‘女性개벽’
그래요. 제 이름은 ‘보지’예요. 순간 얼굴을 붉힌 사람이 많다는 것 저도 잘 알아요. 제 주인도 어릴 적 ‘보지 말라’란 말만 들어도 부끄러웠다고 하죠. ‘남자’는 특별한 때 제외하고는 축 늘어져 보잘것없는 모양임에도 겉으로 당당히 드러낼 수 있었지만, 전 항상 검은 수풀로 겹겹이 가려진 존재였어요. 사실 제 모습을 제대로 살펴본 여자는 드물 거예요. 오히려 남자가 더 많이 봤겠죠. 사람들은 저를 ‘꽃’이라고 불러요. 연분홍색의 꽃잎과, 이를 젖히면 조심스레 고개를 드는 노란 꽃술은 제가 봐도 딱 제 모양새죠.

어디까지 저로 봐야 할까요? 정확히는 해부학적 용어로 외음부, 영어로 pudenda (‘부끄러운 것’이라는 뜻), 점잖은 한자어로 음부·음문·국부·치부·옥문, 비속어로 씹이라 불리는 부분이죠. 치골부(불두덩이), 대음순(큰 입술), 소음순(작은 입술), 음핵(클리토리스), 처녀막(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회음부(음부와 항문 사이의 피부) 등으로 이뤄져 있는데요. ‘야설’ 등에서 많이 봤을 법한 이름들 아닌가요? 여자의 최고 성감대가 몰려 있는 곳이자, 남자들이 늘 정복하고 싶은 그곳입니다. 그런데 보통 내음부에 속하는 질과 지스폿(G-spot), 자궁, 난소, 심지어 젖가슴까지도 저로 인식한답니다. 모두 성(性)과 연관됐기 때문이지요.

히스테리 어원은 자궁

제 안에 숨겨져 있는 음핵과 지스폿은 보물과도 같은 존재랍니다. 음핵은 여성 최고의 성감대죠. 흥분됐을 때 마치 남성의 페니스처럼 커지고 딱딱해져요. 성관계 때 발기된 이 부분이 마찰하면서 오르가슴을 느끼게 되지요. 자위행위를 할 때도 보통 이 부분을 손으로 만지면서 쾌감을 느낀답니다. 남자랑 다를 게 하나도 없지요? 지스폿은 치골과 자궁경부 중간쯤 질 벽에 자리한 100원 동전 크기의 부위로, 이곳을 자극받으면 오르가슴에 도달하고 맑은 액체를 사정하기도 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여성 11명 중 4명 정도만 지스폿을 통한 오르가슴을 느낀다고 하니, 지금도 존재 여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요.

참 세상이 좋아졌습니다. 이렇듯 저에 대해 공식적으로 말할 수 있으니 말이죠. 항상 저는 입에 올리기조차 부끄러운 존재였고, 엄청난 억압을 받아왔습니다. 그 역사가 무려 4000여 년에 이르죠.



혹시 ‘돌아다니는 자궁’이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기원전 2000년경 어느 이집트의 산파가 임신부의 자궁이 밖으로 밀려나온 것을 만져보고 ‘자궁이 빠졌다’고 선언했다지요. 그러자 사람들은 자궁은 밑으로도 빠질 수 있고, 위로도 올라갈 수 있고, 어디로든 돌아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여자들이 앓는 온갖 병은 이 돌아다니는 자궁이 다른 장기들과 부딪쳐 일으킨 것이고, 이를 고치려면 남자의 성질을 얻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이런 기이하고 황당한 생각은 플라톤과 히포크라테스 같은 당대의 석학도 믿어 의심치 않은 당당한 의학이론이었습니다. 자궁을 뜻하는 그리스어 ‘휴스테라’는 바로 ‘히스테리’를 의미하지요. 지금도 여자를 비하할 때 자주 쓰는 그 히스테리 말입니다.

아직도 갈 길 먼 ‘女性개벽’

화형당하는 ‘마녀들’. 중세 마녀사냥은 여자의 육체를 짓밟는 끔찍한 행위였다.

그래도 이때만 해도 아주 살아가기 힘들지는 않았어요. 사랑과 쾌락이 중시됐고, 지역에 따라서는 제가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숭배받기도 했으니까요. 물론 여기저기 씨앗을 뿌리던 ‘남자’들처럼 호시절을 보낸 건 아니지만요.

하지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제게 엄청난 시련을 가져다줬습니다. 중세에는 결혼한 부부가 부부간 쾌락을 추구하는 것도 죄악이고 일탈이었죠. 신의 뜻에 따라 ‘정상위’로 자녀를 생산할 목적으로만 해야 했지요. 제가 조금이라도 ‘느껴서’ 맨들맨들해지면 바로 마녀로 여겼어요. 아, 마녀. 정말 끔찍한 기억입니다. 중세에 마녀로 의심받은 여자는 발가벗겨진 채 무수한 남자에게 ‘마녀 젖꼭지’가 발견될 때까지 샅샅이 몸수색을 당해야 했죠. 마녀의 증거라던 ‘마녀 젖꼭지’는 세상에나, 모든 여성이 가지고 있는 클리토리스, 바로 음핵이었어요. 음핵이 평균보다 크든지, 아니면 성관계 때 제가 좀 더 많이 느끼면서 커지고 딱딱해지면 제 주인은 마녀가 됐던 거죠. 평범한 여성들에게 경고와 협박의 의미를 준다는 이유로 산 채로 불길에 죽어가야만 했어요.

“여자는 남자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창조됐다. 반대로 남자가 여자에게 기쁨을 줄 필요는 별로 없다. 여자의 명예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데 있고, 여자의 영광은 남편을 존경하는 데 있으며, 여자의 기쁨은 가족의 행복에 있다.”

철학자 루소가 ‘에밀’에서 한 말입니다. 이는 성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됐지요. ‘이성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극단적인 마녀사냥은 없어졌지만 저는 여전히 드러낼 수도, 제 의사를 표현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만약 제가 ‘남성’을 즐겁게 해주지 못하거나 반항을 하면 ‘정신병’이나 ‘신경증’이라는, 또 성적 쾌감을 느끼거나 적극적인 성욕을 보이면 ‘남자밝힘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모두 정신병원으로 쫓아낼 수 있는 합법적인 방편이었죠. 심지어 19세기 영국 런던의 밤거리에서 자궁이 난자된 채 죽임을 당해도 부도덕하고 더러운 여성에 대한 단죄로 여겼습니다(1888년 런던에서 일어난 성매매 여성 연쇄살인사건. 당시 주요 신문사에 ‘잭 더 리퍼’라는 서명과 함께 ‘연쇄살인은 부도덕한 여성에 대한 단죄이자 그들의 행위에 대한 처벌’이라는 내용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고작 50년 전에 밝혀진 촉촉한 비결

당시 소녀들이 저를 문지르는 등의 자위행위를 하면 어떻게 됐을까요? 치료를 받거나 교정을 받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음핵을 잘라버리는 거였어요. 미국에서 자위행위를 치료하기 위해 음핵 절제술을 받은 기록은 1948년이 마지막이었죠. 다섯 살 난 소녀였습니다. 끔찍하다고요? 지금도 아프리카 등에선 1억 명에 가까운 여성이 ‘할례’라는 이름의 성기 절단 시술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요?

어찌 됐든 어둡고 축축한 곳에만 있었던 제게 조금씩 햇살이 비치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들어서면서입니다. ‘여성이 주도적으로 임신과 출산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피임 운동이 본격적으로 생겨났어요(1914년 미국 간호사 마거릿 생어의 ‘산아제한 평론’). 처음엔 피임을 논하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게도 ‘풍기문란’으로 매도됐으나, 다행스럽게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적으로 인구 과잉이 문제가 되면서 피임 운동이 힘을 얻었죠. 여성에게 피임할 권리를 준 이 운동은 경구용 피임약 개발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만들어냈답니다(1960년 미국 식품의약국 ‘에노비드’ 공식 승인, 1961년 독일 쉐링사 ‘아나보라’ 발매).

그 덕분에 저는 임신과 출산, 육아의 부담 없이 오로지 즐길 수 있는 존재가 됐지요. 사람들도 저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퀴즈 하나를 내볼게요. 성관계를 할 때 제가 촉촉이 젖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피스톤 운동’을 하면 그 자극으로 질 내 모세관 벽에서 혈장이 스며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걸 과학적으로 밝혀낸 건 고작 50년 전입니다(1960년 마스터스·존슨 보고서). 인류가 성관계를 해온 역사는 과연 얼마일까요?

문득 키스 도중 둑이 허물어지듯 제 안에서 엄청난 물이 나와 팬티와 원피스, 앉아 있던 카시트까지 다 적셔버리자 “역겨운 냄새가 나는 이상한 계집”이라며 남자친구에게 버림을 받았던 일이 생각나네요. 1990년대 초에만 해도, 심지어 미국에서도 이런 일이 무척 많았다고 해요. 지금은 여자가 물이 많아야 사랑을 받는데 말이죠.

복잡하고 신비한 미지의 영역

아직도 갈 길 먼 ‘女性개벽’

여성 할례의 악습에 투쟁하는 삶을 그린 영화 ‘데저트 플라워’.

한반도에서도 오랫동안 금욕을 강조하면서 제 존재를 무시해왔습니다. 우리나라를 지배한 불교와 유교 모두 혼전 성교를 금했고, 남성의 잦은 사정은 건강을 해친다고 봤으며, 기혼자의 성교도 원칙적으로 자녀 생산을 목적으로 했죠. ‘여필종부(女必從夫)’는 성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됐어요.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후 경제성장기에도 이런 상황은 계속됐습니다. 안방의 이불 속 은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망측한 일이었죠. 제 욕구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이 시기 호스티스 문화가 성행했다는 건 참 아이러니하지요.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광수 ‘성애론’, 장정일 ‘이브가 눈 뜰 때’, 김진만 ‘섹스 마인드’ 등 남자들이 저서를 통해 자신의 성 경험을 털어놓더니 ‘발칙하게도’ 여성마저 이 대열에 합류한 것입니다. 바로 1999년 탤런트 서갑숙이 성 체험을 기록한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란 책을 출간한 거죠. 성 체험을 통해 여성도 성적 본능이 있으며 쾌락을 추구한다는 걸 만천하에 공개했는데요.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그때만 해도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010년 현재 성 담론과 성 의학의 중심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옮겨졌다고 하니, ‘천지개벽’ ‘상전벽해’란 말이 마구 떠오릅니다. 심지어 ‘핑크 비아그라’ 등 여성의 성기능 장애 치료제까지 연구 중이라고 하네요. 사실 발기되고 사정만 하면 오르가슴을 느끼는 ‘단순한’ 남성과 달리, 복잡다단한 저는 연구할 게 많이 남은 미지의 영역이지요.

여기서 여담 하나. 여자가 오르가슴을 제대로 빨리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나요? 남자가 열심히 ‘피스톤’ 운동을 할 때, 여자가 자신의 손으로 음핵을 만져주면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 주인도 부끄러워서 그렇게 못할 것 같다고 합니다. 제가 아무리 간절히 요구해도, 제 주인의 손은 제게로 오지 않을 듯하네요. 혼자 있으면 또 모르지만요. 아직도 갈 길이 먼 게 맞지요?

참고서적 |‘성학’(김세철·김원회·윤가현·최규만 지음, 군자출판사), ‘여성, 섹슈얼리티, 국가’(이성숙 지음, 책세상), ‘자궁의 역사’(라나 톰슨 지음, 아침이슬), ‘그림으로 보는 성의 여성사’(해리엇 길버트 지음, 까치), ‘버자이너 모놀로그’(이브 엔슬러 지음, 북하우스)



주간동아 2010.11.08 761호 (p30~32)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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