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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은 커도 민동석 할 일은 태산

외교부 제2차관으로 화려한 복귀… “업무에 매진” 단호한 개혁 예고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논란은 커도 민동석 할 일은 태산

“1974년 4월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하얀 눈물을 뺨에 흘리면서 기뻐하던 아버지는 내게 액자를 하나 주셨다. 거기에는 ‘청·신·근(淸·愼·僅)’이라고 적혀 있었다. ‘청렴과 신중함과 근면을 알면 공직자로서의 몸 가질 바를 알리라.’ 나는 항상 이 액자를 거실 전면 중앙에 걸어놓고 뼈에 새기며 외교관 생활을 했다.”

민동석(58) 외교통상부 제2차관은 그의 저서 ‘대한민국에서 공직자로 산다는 것-협상대표는 동네북인가’(나남 펴냄)에서 아버지와의 기억을 회상하며 자신의 신조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래서일까. 민 차관은 10월 29일 ‘주간동아’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동안 공직자로서 최선을 다했다. 이제 명예는 사실상 회복된 만큼 지금까지 신조대로 신중하고 성실하게 일을 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2년간 절치부심 끝 명예 회복

2008년 미국 쇠고기 수입협상 한국 측 수석대표로 이른바 ‘광우병 파동’의 한복판에 섰던 그가 2년 만에 ‘친정’ 외교부에 화려하게 컴백했다. 11월 2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에서 열린 직원 상견례 자리에서 웃음을 띠며 입장하는 모습은 그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케 했다. 2년 만의 웃음이었지만, 곧 단호한 외교부 개혁을 예고했다.



“국민의 실망과 분노는 상상할 수 없는 상태로 지금은 비상한 위기 상황이다. 다른 데서 일하다 보니 조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국가와 조직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평가·대우받는 조직이 돼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겠지만, 직원들과의 첫 상견례에서 그는 ‘광우병 파동’은 언급하지 않았다. 유명환 전 장관 딸 특채 파문으로 외교부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데다, G20 정상회의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굳이 광우병 얘기를 꺼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외교부 차관에 취임해 명예를 회복한 만큼 과거보다는 미래를 얘기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러한 자세는 10월 29일 국회 대통령실 국정감사에서부터 예견됐다. “‘PD수첩 무죄판결을 내린 재판부를 향해 법 상식에 어긋나는 판결을 한 판사를 탄핵소추할 수 있도록 국민청원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한 그에게 차관 자리가 온당하냐”는 야당 의원의 지적에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앞으로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미리 교감을 나눴다는 의미의 발언이었지만, 지난 2년은 민 차관에게 절치부심(切齒腐心)의 연속이었다.

‘이완용과 더불어 2대 매국노’라는 비난을 들었을 때, 정확히 2008년 7월 8일 그는 당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게 사표를 냈다. 대통령이 대국민담화 등을 통해 국민에게 사과했고 청와대 참모들이 무더기로 옷을 벗던 시절이었다. 그의 사표는 반려됐고, 그해 11월 외교안보연구원 외교역량평가단 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그는 MBC ‘PD수첩’ 제작진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 법정싸움을 계속했고,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역량평가단 단장으로 외교안보연구원에 있을 때 민 차관은 혼자 구내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하곤 했다. 뭔가가 생각나면 식사 중에도 메모를 했다. 가끔 만나보면 여전히 PD수첩의 과장보도에 분루를 삼켰다. 그땐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를 곁에서 지켜본 외교안보연구원 관계자는 2년간 그의 절치부심을 ‘외로움 속 인내의 연속’이라 표현했다.

그에게 인내는 달았지만, 그의 전격적인 발탁을 놓고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이미 김성환 외교부 장관이 ‘취임 이후 외부인사를 차관에 영입하고 자신과 같은 경기고 출신자를 중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그의 인선은 ‘전격적’이었다는 분석이다. 이를 의식한 듯 김 장관은 10월 26일 “민 차관은 (경기고) 동문이어서 (차관) 후보에 넣지 않았지만 외부 영입이 여의치 못해 내가 요청했다”고 밝혔다. 반면 같은 날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의 인선 배경에 대한 설명은 미묘한 시각차를 보였다.

“외교부 출신이지만 농림부 경험을 한 만큼 바깥에서 외교부를 보는 객관적 시선을 갖고 있어 외교부 변화에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 자기 소신을 지킨 사람에 대한 배려의 측면이 있다.”

전격 발탁 놓고 다양한 분석

논란은 커도 민동석 할 일은 태산

민동석 차관이 ‘이완용과 더불어 2대 매국노’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시위.

한국외대 노어과를 졸업한 민 차관은 외교관 생활 대부분을 통상 분야에서 일했다. 런던, 제네바, 워싱턴 등에서 근무하며 통상 업무를 섭렵했고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협상 수석대표로 다자간 협상에도 참여했다. 외교부의 비주류로서 객관적으로 외교부 개혁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김 대변인의 설명이 맞아떨어지는 대목. 김 대변인이 “역대 차관 49명 중 외대 출신으로는 최초”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러나 쇠고기 수입 협상과 관련해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은 점을 높이 샀다는 대목에선 다양한 정치적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열심히 일한 공직자에겐 끝까지 배려한다는 대통령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분석은 일반적 해석. 더 나아가면 이명박 대통령의 ‘촛불 트라우마’를 씻는 마지막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 출범 초기 광우병 촛불시위는 국정 운영에 큰 타격을 줬고, 민 차관은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이 대통령도 5월 국무회의에서 “촛불시위 2년이 지났다. 많은 억측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당시 참여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 이같이 큰 파동은 역사에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민 차관뿐 아니라 이 대통령도 인선을 통해 명예회복을 노렸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경윤호 겸임교수의 설명이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당시 광우병 파동의 중심에 섰던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민 차관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정 전 장관은 앞서 6·2지방선거에서 명예회복을 했다. 한나라당 전북도지사 후보로 나서 18%대의 지지율을 기록했고, 한식재단 초대 이사장으로서 활동 중이다. 대통령은 외교부 개혁 적임자를 찾는 동시에 마음의 빚을 갚고 정권의 명예회복을 위한 포석을 한 것으로 본다.”

청와대 내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는 감지된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민 차관 인선을) 대변인 발표대로 봐달라”면서도 “외교부 차관 자리를 놓고 많은 인사가 거론됐지만 민 차관 발탁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민 차관의 앞날이 명예회복에 이은 장밋빛 나날의 연속은 아니다. 민 차관 취임에 맞춰 진보신당이 “농식품부 예산으로 변호사 비용을 댔다”며 횡령 혐의로 고발한 것처럼, 민 차관은 야당과 일부 언론의 주요 공격 대상이다(이 돈은 농식품부 직원이 증인 신문을 받게 되자 직원의 변호사 선임비로 체결한 비용이다). 야당은 이미 “회전문 인사라는 표현으로는 부적절한 각설이 인사”(민주당 이춘석 대변인)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조만간 있을 명예훼손 사건 항소심 판결 결과에 따라 그는 공직자로서의 판단보다는 정치적 판단을 받을 수 있다. “평소 신조대로 업무에만 매진하겠다”는 그의 일성(一聲)이 더욱 귀에 와닿는 이유다.



주간동아 2010.11.08 761호 (p22~23)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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