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0

2010.11.01

우리들만의 김치 집착 증후군

배추 파동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입력2010-11-01 14: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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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만의 김치 집착 증후군

    김치에 과다한 의미를 부여하면 과발효해 맛을 버리게 될 것이다.

    배춧값 폭등 사태가 지나갔다. 이제는 폭락을 걱정한다는 말이 나온다. 배추 한 포기에 1만5000원이던 기간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배춧값이 뛰어 난리가 난 기간은 한 달도 안 될 것이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내 식탁엔 양배추김치 내라”고 했다는 뉴스를 듣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배추김치든 양배추김치든 김치를 꼭 먹어야 하나?’ 서울시에서 배추를 ‘조금’ 싸게 풀었을 때, 한정 판매인 그 배추를 들고 환호하는 소비자를 보면서 나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김치 안 먹으면 죽나?’

    그 당시에 이런 말을 했으면 몰매를 맞았겠지만, 이제 사태가 진정됐으니 욕을 좀 덜 먹겠다 싶어 속내를 말한 것이다.

    배추 파동을 보면서 나는 우리 국민이 김치가 맛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김치에 다소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한국인이라면 김치는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이며, 김치를 먹지 못하는 상황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았다. 물론 예전에도 배추 파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올해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온 국민이 배추 뉴스로 아침을 열고, 김치 걱정을 하는 심야 프로그램을 보면서 잠을 청했다. 나는 이런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까짓 김치, 김장철도 아닌데 잠시 안 먹으면 어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치는 밥을 먹을 때 필요한 반찬일 뿐이고 그 대체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왜 굳이 김치를 먹겠다고 그 난리를 치는가 싶었다. 그러면서 올 초 개봉한 영화 ‘식객2-김치전쟁’이 떠올랐다.

    영화 내용은 일본에서 인정받은 한국 요리사와 한국의 ‘토종’ 요리사가 김치 대결을 벌이는 것이다. 이 영화 제작자는 개봉에 맞춰 일본 산케이신문에 ‘KIM-CHI’란 광고를 냈는데, “김치는 한국 음식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이 당연한 내용의 광고를 왜 일본 신문에 돈을 주면서까지 게재했는지에 대해 제작자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김치에 대한 조사를 많이 했다. 해외에서 김치의 존재를 물었더니 아는 외국인이 거의 없었다. 특히 일본은 한국의 김치를 부정하고, 자국의 기무치를 내세워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김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일본 신문에 광고를 내게 됐다.”



    광고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뜨거웠다. “한민족의 우수성을 일본인에게 알렸다”는 격려가 쏟아졌고, “일본인의 기무치에 한 방 날렸다”며 후련해했다.

    김치는 우리 민족에게 반찬용 채소절임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민족의 우수성을 담보하는 음식이며, 전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자랑스러운 웰빙 음식으로 평가한다. 반찬으로 가장 좋은(저렴하고 맛있는) 음식, 즉 우리 민족의 기호를 넘어 세계인의 기호도 충족시킬 수 있는, 아니 충족시켜야 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김치가 우리 밥상에서 잠시나마 사라지는 걸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것이 바로 배추 사태의 본질이다. 가격 폭등만으로 생긴 난리가 아닌 것이다.

    배춧값도 떨어지고 있으니 이제 좀 냉정해보자. 우리는 왜 김치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일까. 외국의 어느 식품학자가 세계 3대 발효음식이라고 해서인가, 아니면 일본인이 기무치라며 맛있게 먹어서인가. 서양인들이 “핫! 핫!” 하면서도 이를 즐기는 표정이 귀여워서인가, 김치시장이 넓어져 외화 획득에 도움이 될 듯해서인가. 아니면 외국인들이 “맛있다, 건강에 좋다”며 인정해주니 뿌듯해서인가.

    한국인의 밥상에 김치는 꼭 올라온다. 그러나 이 김치를 반드시 맛있게 먹는 것도 아니다. 집 안에서는 물리고 물린 김치가 냉장고에 처박히기 일쑤고, 식당의 김치는 손도 안 대고 잔반통으로 들어가는 것이 예사다. 있는 듯 없는 듯, 먹은 듯 안 먹은 듯한 것이 김치다. 늘 그냥, 거기에 있을 뿐이다.

    김치에 따라붙는 세계적인 웰빙 음식, 한민족의 우수성과 자존심 같은 수식어, 그러니까 우리가 김치에 집착하게 하는 여러 의미는 대체 왜 필요한 것일까. 국민의 집착을 필요로 하는 몇몇 사람의 상업적, 정치적 이득 때문에 우리가 이 채소절임을 두고 난리치는 것은 아닌가. 김치에 양념이 많으면 과숙성해서 맛을 버리듯, 과다한 의미를 부여하고 집착하는 일은 한국 음식문화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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