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9

2010.10.25

차명계좌의 유혹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0-10-22 17: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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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 상속·증여 의혹을 받는 태광그룹, 수백억 원대 부당 대출 및 자문료 횡령 의혹 등으로 내홍에 휘말린 신한금융지주,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는 한화그룹에 강도 높은 수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들 간에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차명계좌를 이용해 불법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차명계좌는 말 그대로 남의 이름을 빌려 계좌를 개설하는 것입니다. 금융실명제가 실행된 지 17년이 지났음에도 차명계좌는 왜 근절되지 않는 걸까요?

    차명계좌의 유혹이 너무나 달콤하기 때문입니다. 수백억 원대의 재산을 보유한 재벌은 차명계좌로 재산을 분산하면 중과세와 상속세를 회피할 수 있습니다. 횡령·탈세 등을 동원해 비자금을 조성하기에도 안성맞춤입니다. 최근에는 주가조작 사건에도 이용됩니다.

    일반 국민 사이에도 차명계좌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계모임, 문중 등 각종 임의단체가 일종의 공동계좌를 통해 자금을 관리하거나, 소득이 없는 어린 자녀 명의로 예금 등을 들어둔 가정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지만 차명계좌인지를 밝히기는 쉽지 않습니다. 계좌 명의자와 자금 소유자가 합의 아래, 계좌 명의자가 직접 금융회사를 방문해 자신의 명의로 계좌를 만들어 실소유자에게 전달하면 차명 여부를 알 도리가 없습니다.

    차명계좌의 유혹
    더욱 문제인 것은 현행 금융실명제법이 사실상 ‘반쪽 법안’이란 점입니다. 현행 금융실명제법에는 차명계좌 개설 관련 형사처벌 조항이 없고 금융기관에 대한 과태료 부과 같은 행정처분 규정만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피의자들이 차명계좌 보유 사실은 쉽게 인정하면서도 다른 혐의를 부인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차명계좌를 악용하는 현상을 막기 위한 규제를 강화해야 합니다. 아울러 차명계좌의 존재에 대해 ‘그럴 수도 있지’가 아니라 ‘그래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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