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5

2010.09.20

우유>>> 너도나도 A급 마케팅 치열해乳!

비슷한 맛에 이미지 놓고 3파전 … 저지방 우유 시장 선점에 눈 돌려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0-09-20 10:2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우유>>> 너도나도 A급 마케팅 치열해乳!
    ‘‘한번 1등=영원한 1등’이란 공식이 통하는 시장이 유(乳)업계다. 그만큼 순위 변동은 흔치 않다는 얘기인데, 흰 우유 시장만 놓고 봐도 그렇다. 1962년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 ‘우유공장’은 서울 중구 정동에 있던 서울우유협동조합공장 한 곳이었다. 1937년 서울우유의 전신인 경성우유협동조합 창립 이후 한국의 우유는 모두 이곳에서 생산됐던 것.

    이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축산물가공이용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1960년 중반부터 부산·대구·인천·광주·충남 천안에서 젖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민간기업인 남양유업, 미락(‘비락’의 전신), 백설유업(영남우유 전신)이 유가공 산업에 뛰어들었고 1970년대 이후에는 매일유업, 빙그레, 부산우유협동조합이 잇따라 우유와 유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우유업체가 늘어난 것은 그만큼 소비가 증가했기 때문. 경제성장과 함께 우유 소비량은 1980년 27만9056t에서 1997년 170만2756t으로 급증했고 현재도 이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 젖소 대부분은 홀슈타인종 … 사료와 생육환경도 비슷

    하지만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일반 우유(백색시유·시중에 유통되는 우유)를 주력으로 생산하던 유가공 업체들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잇따라 문을 닫았다. 이는 1997년 이후 국민 1인당 우유 소비량이 늘지 않은 요인이 컸다. 한국인의 1인당 우유 소비량이 35kg 안팎인 데 비해 유럽, 미국, 오세아니아는 100kg이 넘는다.



    현재 국내 우유 시장 규모는 매출액 기준 2조5000여억 원대. 이 시장을 놓고 서울우유와 남양유업, 매일유업이 ‘빅3’를 구축하고 있다. 시장점유율 집계가 오래되지 않았고 각 회사는 공개를 꺼리지만, 서울우유와 남양유업, 매일유업이 3파전 양상을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3파전 양상은 어떻게 형성됐을까. 업계에서는 흰 우유의 경우 ‘맛의 전쟁’ 대신 ‘마케팅 전쟁’이 3강 체제 형성과 유지의 근간이라고 분석한다. 물론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한 높은 인지도도 빼놓을 수 없다.

    “우유 맛은 차이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 점박이 젖소 대부분이 네덜란드 홀슈타인종(Holstein種)이고 축산농가의 사료도 비슷하다. 업체마다 살균온도와 가공 기계장비로 인해 미세한 맛의 차이는 있지만, 맛에 예민한 전문가나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우유 강덕원 팀장의 설명처럼 우리나라 젖소의 90% 이상은 같은 종이고 사료와 사육방식, 생육환경도 비슷하다. 맛의 차별화보다 마케팅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울우유는 목장주를 위해 존재하는 협동조합이어서 우유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오랜 전통이 더해져 우유 1위 자리를 굳혔다. 물론 전통과 조합 특성에만 기대지는 않았다.

    1980년대 경제성장과 학교급식 등으로 우유 소비량이 증가하던 시절, 서울우유는 1984년 우유 생산-소비 전 과정에 걸쳐 ‘콜드체인 시스템(Cold Chain System)’을 도입해 ‘신선한 우유=서울우유’라는 인식을 소비자에게 심어줬다. 집유(執乳)하는 모든 목장에 원유냉각기를 설치하고 냉장 유통을 시작한 것. 이후 위해요소중점관리시스템(HACCP)을 도입하고 2005년 9월에는 ‘1등급 A우유’를 처음 출시하면서 시장을 선도해나갔다.

    지난해 7월부터는 유업계에서 처음으로 제조일자와 유통기한의 ‘병행 표기’를 시작했다. 유통식품은 유통기한 혹은 제조일자 중 하나만 선택해 표기하도록 돼 있지만, 고객 신뢰를 위해 두 표기를 병기했다는 게 서울우유 측의 주장. 서울우유 측은 병행 표기 이후 소비자의 신뢰가 높아졌고, 이는 판매율 상승으로 이어져 2009년에는 전년 대비 16.3%(1조5000억 원) 매출 신장세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최근에도 대대적인 광고 캠페인을 벌이며 경쟁사와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반면 경쟁사 측은 “부메랑이 될 것” “부럽다” 등 표정이 엇갈린다. 한 유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우유>>> 너도나도 A급 마케팅 치열해乳!

    1 남양유업 우유 생산 공장. 2 1970년대에는 달구지와 자전거가 중요한 우유 배달 수단이었다.

    남양은 잡맛 제거, 매일은 건강우유에 초점

    “유통기한(12일) 내의 우유는 모두 비슷하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은 우유도 바꿔달라고 한다.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았지만 엄청난 양의 우유가 팔리지 않고 폐기처분된다면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다. 회사 수익을 중시하는 민간기업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어서 부럽기도 하다.”

    서울우유가 앞서가는 만큼 업계 2, 3등의 추격전도 치열하다. 남양유업은 ‘우유는 같은 맛’이라는 고정관념에 의문부호를 던지며 차별화를 시도했다. 우유 시장 자체 리서치 결과 젊은 층의 우유 소비가 줄어드는 이유를 ‘우유 특유의 텁텁한 잡맛’ 때문이라 결론내리고, 잡맛을 잡는 데 주력한 것. 남양유업 최재호 팀장의 설명이다.

    “우유를 짤 때 생긴 목장 특유의 냄새와 사료 냄새, 기타 이물질 냄새를 제거한 뒤 맛의 변화가 없도록 우유 내 용존산소를 모두 제거하고 질소로 충전하는 신공법을 개발했다.”

    신공법은 GT(Good Taste Technology)로 명명했다. 결국 2004년 ‘맛있는 우유 GT’가 시장에 나오자 하루 250만 개가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지금까지 남양의 주력상품으로 활약하고 있다. 남양유업은 앞서 1994년에는 뇌세포 DHA 성분이 함유된 우유 ‘아인슈타인 우유’ 개발에 성공, 기능성 우유 시장에서 연매출 1000억 원을 기록하며 1위를 지켜오고 있다.

    매일우유는 소비자들의 위생관념이 높아지고 참살이(웰빙) 바람이 부는 데 착안해 ‘안전한 우유’를 마케팅 포인트로 잡았다. 2001년부터 약 300억 원을 투자해 2003년 ‘매일우유 ESL’을 처음 선보였다. 미국, 유럽 등 낙농 선진국에서 사용하던 ESL(Extended Shelf Life) 공정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것. ESL 공정은 우유팩 살균은 물론, 우유가 팩에 담겨지는 전 과정과 유통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2차 오염을 근본적으로 차단한 무균화 공정이다.

    우유>>> 너도나도 A급 마케팅 치열해乳!
    ESL을 통한 ‘깐깐한 웰빙 우유’ 이미지는 유기농 우유로 이어진다. 2008년 국제 인증요건을 갖춘 15개 목장에서 한정 생산한 ‘매일 상하목장’을 출시한 것.”

    출시 초기 일부 부유층이 선호하던 유기농 우유는 차츰 대중화되면서 생산 초기 하루 4만t이던 원유는 현재 18만t으로 늘었다. ‘매일 상하목장’은 유기농 우유 시장 진출 1년 만에 점유율 50%를 기록하며 1위 자리를 꿰찼다.

    지방 함량을 1%에서 0.8%로 더 줄이고 칼슘을 일반 우유 대비 2배 이상(220mg) 높인 ‘저지방 · 칼슘우유’와 우유를 마시면 속이 부글거리는 증상(유당불내증)을 호소하는 성인을 위해 유당을 제거한 ‘소화가 잘되는 우유’를 선보인 것에도 ‘건강과 웰빙’이라는 마케팅이 녹아 있다고 보면 된다. 현재 국내 시장에서 흰 우유 중 저지방 우유가 차지하는 비율은 6~7%대인 반면,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는 65~85%에 이른다. 국내 유업계가 저지방 우유 시장을 선점하려는 것도 이러한 가능성 때문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