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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금속으로 휴머니즘을 빚다

서울대 디자인학부 유리지 교수

  • 이설 기자 snow@donga.com

차가운 금속으로 휴머니즘을 빚다

차가운 금속으로 휴머니즘을 빚다
시원한 크기의 두툼한 책자가 도착했다. ‘금속공예 40년의 여정, 유리지’. 책장을 넘기니 갖고 싶을 정도로 멋진 작품이 와르르 쏟아진다. 모양도 크기도 개성이 뚜렷해 한 작가의 작품처럼 보이지 않는다. 7월 7일까지 서울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여는 서울대 미술대 디자인학부 유리지(65) 교수의 작품이다.

“화가인 부친이 제게 미술을 권유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미술을 하면서 삶을 풍요롭게 가꿔가라고요. 20대 초반에는 삶 자체를 몰라서 그것을 주제로 삼을 수 없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삶을 해석하는 작업을 해왔죠. 40년간 주제의식도, 작품 경향도 다른 게 당연해요.”

유 교수는 한국 현대 금속공예의 기반을 마련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과를 나와 동대학원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한 뒤 미국 템플대학교 타일러미술대학 대학원에서 유학했다. 1970년대 인체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 80년대에는 간결하고 부피감 있는 작품을, 90년대에는 작가의 감성과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병상에 계신 아버지를 위해 만들기 시작한 ‘장묘’는 국내외에서 화제를 모았다. 은으로 만든 향로와 잔, 띠별 동물조각을 얹은 골호, 나무로 만든 상여, 연꽃 모양이 새겨진 사리함 등으로 이뤄졌다.

“아버지가 오래 병상에 계셨어요. 금속공예 하는 딸로서 해드릴 게 없나 고민하다 보니 뼈 항아리가 떠올랐어요. 그런데 하나하나 꼬리를 물어 장례용품 일체를 만들게 됐고, 작품으로도 만들게 됐죠. 2007년에 일본에서도 초대전이 열려 한국의 장묘와 삶에 대한 감상을 나눴어요.”

공예가로 살아오면서 ‘공예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문제의식도 놓치지 않았다. 장신구, 기념패, 트로피 등 작은 조형물부터 환경조형물, 공공조형물까지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1979년부터 3년간 ‘금사랑’이라는 갤러리를 운영하기도 했다.



“처음엔 공예가는 실용적인 면에서 생활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래서 생활밀착적인 작품에 대한 고민도 하고 갤러리도 운영했죠. 하지만 사회화보다 작가적 정립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갤러리를 그만두고 작품 활동에 치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예 작업은 노동집약적이다. 정해진 완성도가 없어 욕심껏 작업을 하다 보면 수백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장인의 정신으로 작업에 임하다 보면 정신수양이 덤으로 따라온다. 뜻대로 작품이 나오지 않을 때는 마지막 작품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위안한다. 은퇴를 앞둔 그는 어떤 꿈을 꿀까.

“학교를 떠나기 앞서 준비한 회고전이라 더 특별해요. 마흔 살에 강단에 섰는데, 처음에는 교육보다 직업작가에 더 무게를 뒀어요. 하지만 되돌아보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제가 배운 게 더 크다고 봐요. 자신의 미래에 진지하고 성실한 젊은이들을 보는 것만큼 큰 즐거움도 없죠. 저도 이제 직업작가로서 치열하게 살고 싶습니다.”



주간동아 2010.07.05 744호 (p92~92)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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