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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카’ 난폭질주 “짜증난다 짜증나”

伊 특권 상징 관용차 63만 대 육박 … 年 경비만 210억 유로, 혈세 낭비 거센 여론

  • 로마=김경해 통신원 kyunghaekim@tiscali.it

‘블루카’ 난폭질주 “짜증난다 짜증나”

‘블루카’ 난폭질주 “짜증난다 짜증나”
이탈리아는 어느 나라도 넘보지 못하는 이색 세계 신기록(?)을 수년째 보유하고 있다. 문화 유적지나 명품 패션 브랜드, 오페라 극장 수가 아니다. 바로 관용차 수다. 감색이기 때문에 ‘아우토 블루(auto blu)’라 불리며, 통상적으로 ‘블루카’로 번역된다. 권력의 상징인 ‘블루카’는 괴성에 가까운 사이렌을 울리면서 스포츠카보다 빠르게 도심을 질주한다. 버스 전용차선을 침범하는 건 당연지사. 세계적인 카레이서 미하엘 슈마허보다 뛰어난 운전 솜씨로 꽉 막힌 도로를 지그재그로 헤치고 나간다. 로마 시내를 다니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목격하게 된다. 로마 시민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외국 관광객들은 블루카의 ‘깜짝 거리쇼’가 허리케인처럼 지나가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탈리아를 공식 방문하는 외국 정치인들조차 블루카의 ‘극진한’ 예우에 어리둥절해한다고 한다.

이제는 벌금도 면제해달라고?

도대체 관용차 수가 얼마나 되기에 세계 신기록일까. 2010년 상반기 기준으로 약 62만9120대로 추정된다. 지난해보다 0.6% 증가한 것. 그러나 이 수치는 납세자협회에서 조사한 추정치로 이탈리아 정부도 정확한 숫자를 모른다. 2위를 기록한 미국의 7만2000대, 3위 프랑스의 6만1000대, 4위 영국의 5만5000대와 비교하면 이탈리아 관용차가 얼마나 많은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이탈리아 블루카를 일렬로 세우면 나폴리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이을 수 있다고 한다.

증가 폭도 엄청나게 빠르다. 1년 전엔 60만7918대였고 3년 전은 57만4000대, 5년 전은 19만8596대였다. 1991년 관련법에 따르면 관용차 사용은 중앙정부 고위층에 한정됐지만 지금은 주정부, 군청, 중소도시, 구청장, 보건소까지 확대돼 직함에 ‘장’자가 붙은 인사는 모두 특권을 누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특별 경호를 받는 판검사나 공공기관 및 정부 투자공사의 임원도 포함된다.

블루카를 탔다는 것은 ‘귀하신 몸’이 됐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이탈리아 정치인들의 블루카 사랑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한 사람을 모시기 위해 사이렌을 울리며 6~7대의 블루카가 질주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은 마음이 편치 않다. 바로 유지비 때문이다. 기사 월급, 정비, 고속도로 통행료, 연료비 등으로 연간 210억 유로(약 31조5000억 원)란 천문학적 경비가 지출되는데, 이는 모두 국민 혈세로 충당된다.



납세자협회는 “블루카 수를 줄이면 예산 절감은 물론 탄소 배출과 사이렌으로 인한 소음공해까지 줄일 수 있는데, 정치인들은 대중교통은 고사하고 택시도 타지 않는다”며 과시욕에 물든 정치인들의 거드름을 꼬집었다. 블루카를 둘러싼 특권은 최근 그 도를 넘어가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월급에 각종 보너스를 받는 이탈리아 국회의원들이 주차 위반 등에 의한 벌금도 면제해달라는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한 것. 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하루에도 7~8개의 벌금고지서가 날라오니 국회의장이 로마 시에 공식 항의를 해달라”고 억지를 부렸다. 로마 교통경찰 당국은 “의원들이 직책을 앞세워 과속 질주, 버스전용선 침입, 신호등 무시, 무단주차 등을 당연하게 여긴다”며 “일반 시민과 같이 법규를 지키라”고 잘라 말했다. 한 국회의원은 관용차 기사들이 교통법규를 위반해도 운전면허 점수를 삭감하지 않는 면책특권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발의하려다 반대 여론에 부딪혀 취소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언론은 영국 캐머런 총리가 장관들에게 재규어 관용차를 제공하던 것을 없애고, 자전거나 대중교통 이용을 지시한 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정치인들의 마음자세를 바꿀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열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찾기 힘들다.

사실 관용차를 줄이자는 말은 수년 전부터 있었다. 특히 유럽에 닥친 경제위기는 비대해진 블루카에도 ‘칼’을 대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긴축재정 정책의 일환으로 관용차 경비를 전년 대비 20% 줄이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아브루초(Abruzzo)’ 주가 최근 맺은 관용차 계약의 규모가 밝혀져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이탈리아산 란치아(Lancia)에서 독일산 아우디로 차종을 업그레이드한 주지사와 국장급 블루카 11대에 매달 2만1102유로(약 3165만 원)의 경비가 소요된 것이다. 1년이면 무려 25만3200유로(약 3억8000만 원)다. 또 내부에 텔레비전까지 장착해 ‘초호화’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더구나 아브루초 주는 2009년 강진으로 폐허가 된 라퀼라(L’Aquilla) 시가 주도(州都)로, 예산 부족으로 시에 대한 재건사업이 늦어지고 있다. 주정부의 이런 씀씀이는 강진 피해자들에게 분노를 사고 있다.

경비 삭감 지시, 효과는 미지수

블루카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면서 정치인들의 사고방식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보다 특권을 누리는 게 당연하다는 의식이 만연한 이들은, 권력을 쥐면 국민과 라이프스타일의 차원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며칠 전 이탈리아의 퍼스트레이디 클리오 나폴리타노 여사가 시내버스를 탄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됐다. 75세의 나이에도 경호원 한 명 대동하지 않고 버스로 시내 출입을 하는 클리오 여사의 품위 있는 자태는 무언중에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또 최근 중부 소도시 테라모(Teramo)에서 시장부터 국장급까지 자비로 관용 자전거를 구입했다. 도심에서 블루카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기로 하고, ‘바이크 블루’라는 명칭까지 달았다. 이 사례는 브뤼셀 유럽연합에 소개됐고 각 회원국으로부터 벤치마킹할 모범사례라고 박수갈채를 받았다.

뒤늦게 레나토 브루네타 공공관리부 장관은 “각 행정부서와 지방자치단체에 관용차 수를 정확히 파악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강경하게 제재한다고 엄포까지 놓았다. 그럼에도 이탈리아 누리꾼들은 “브루네타 장관, 불면증으로 뒤척이는 밤에 ‘아우토 블루’ 수를 세면서 잠을 청해보세요”라고 비아냥거린다. 하지만 미스터리였던 블루카 수가 드디어 밝혀질 것인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



주간동아 2010.07.05 744호 (p64~65)

로마=김경해 통신원 kyunghaekim@tiscali.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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