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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차별과 설움 태클로 날렸다!

오사카조선고급학교 럭비부, 민족 자긍심 세우며 일본 전국대회 준우승 쾌거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차별과 설움 태클로 날렸다!

차별과 설움 태클로 날렸다!

전국고교럭비선발대회가 끝난 뒤 경기장에서 단체 사진을 찍는 오사카조선고급학교 선수들.

“가라, 오사카조고!” “막아라, 태클.”

4월 7일, 비 내리는 일본 사이타마 현 구마가야 럭비경기장. 제11회 전국고교럭비선발대회 결승무대에 오사카조선고급학교(이하 오사카조고) 럭비부가 섰다. 관중석을 메운 재일교포와 오사카조고 학생들은 “하나, 믿음, 승리”를 외치며 힘을 불어넣었다. 상대는 전년도 우승팀 히가시후쿠오카 고등학교. 오사카조고는 경기 시작 1분 안에 ‘트라이(골라인 바깥의 직사각형 인골 지역에 공을 찍는 일, 5점)’를 내준 뒤 10점차로 뒤졌지만, 연이어 점수를 뽑으며 17대 10으로 앞서갔다. 후반에도 오사카조고는 저돌적인 플레이로 추가 점수를 내며 앞섰지만 상대의 반격으로 24대 24 동점. 시간을 끌면 공동 우승이 가능했으나 오사카조고는 과감히 ‘하나의 승자’가 되기 위해 공격했다. 로스타임, 통한의 역전 트라이를 허용하며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민족으로 하나 ‘no side 정신’

비록 준우승했지만 이날은 재일민족학교가 사상 처음으로 일본 단체경기 전국대회 결승에 오른 의미 있는 날이었다. 오사카조고 럭비부(오사카조고에서는 투구부라고 부른다. 럭비의 북한말이 투구)는 1972년에 창단됐다. 일본의 조선학교 전국대회 출전금지가 해제된 뒤, 1994년 전국고교선수권대회 예선부터 출전해왔다.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 럭비는 인기종목으로 야구, 축구와 더불어 3대 고교 스포츠로 꼽힌다. 오사카조고는 지난 1월 전국고교선수권대회서도 4강에 올랐다. 전국고교럭비선발대회가 2, 3학년이 된 선수를 위한 신인전이라면 전국고교선수권대회는 일본의 전 고교 럭비선수가 선망하는 꿈의 대회다. 이 무대에서 오사카조고 럭비부가 민족의 자긍심을 세운 것이다.

재일교포(한국 국적을 가진 재일한국인과 북한 국적을 가진 재일조선인을 모두 포함)는 일본에서 철저히 이방인으로 살아왔다. 텃세와 차별대우 속에서도 뿌리를 잊지 않고 모국어와 민족문화를 지키려는 노력이 때론 일본인의 반발을 샀다. 1958년 조선학교가 일본 축구대회에서 3위에 올라 민족성을 과시하자 전국대회 출전금지 조치를 내릴 정도였다.



오늘날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여전히 재일교포는 의무는 다하지만 권리는 다 누리지 못한다. 한국 국적의 성매매 여성이 목이 잘린 채 발견돼도 일본 언론은 침묵하고, 재일조선인은 북한과 일본의 긴장관계 속에서 일본 우익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악조건에서 오사카조고 럭비부의 승전보는 재일교포에게 큰 힘이 됐다. 주장 김관태 선수는 “오사카조고에서 럭비를 하면서 동포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오사카조고 럭비부의 선수 55명 중 한국과 북한 국적이 각각 절반 정도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재일교포 사회의 두 축,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의 갈등도 럭비의 ‘노사이드(no side) 정신’ 안에는 없다. 재일교포들이 오사카조고 럭비부에 열광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오사카조고 럭비부의 여건은 좋지 않다. 오사카조고는 전교생이 남녀 통틀어 300명 규모의 작은 학교로, 럭비부 인원은 55명이다. 역시 다른 고등학교보다 적다. 학교 재정이 넉넉지 않아 우수한 중학교 선수를 스카우트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부대끼며 살아온 재일교포 선수로만 팀을 꾸린다. 그럼에도 오영길 감독은 “힘든 것은 해내야 한다. 있는 조건에서 해낸다”며 시원하게 답했다. 오 감독은 “서로 믿고 하나가 되면 승리한다. 무엇이든 일심단결로 한 걸음씩 나아가면 끝자리에 1등이 있다”고 또박또박 한국말로 대답했다.

연이은 선전 조선학교에 우호적 여론 조성

오사카조고의 자랑은 일발필도(一發必倒)의 태클이다. 일본 럭비팬들조차 “오사카조고의 매력은 낮고 빠른 위협적인 태클”이라며 인정한다. 하루 2시간 30분의 훈련은 태클 강화에 중점을 둔다. 1대 1, 2대 2, 7대 7, 15대 15로 인원을 늘리며 훈련하고 협동과 이해심도 키운다. 훈련을 마친 뒤에는 최선을 다했는지, 목표는 달성했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갖는다. ‘승리한다는 신심(信心)’ 아래 럭비 실력을 키워나가는 것.

이 같은 철저한 훈련 덕에 17세 이하 일본 고교 대표인 권유인 선수도 배출했다. 오사카조고 럭비부원들은 훈련을 통해 럭비만이 아니라 일본 땅에서 살아가는 긍지와 힘을 얻는다. 부주장 김용휘 선수는 “럭비부는 정신적으로 성장시켜주는 인간 형성의 마당이며, 일본 사회에서 재일교포의 존재를 주장하는 무기”라고 말한다.

오사카조고 럭비부의 활약상은 단순히 스포츠에 그치지 않는다. 일본의 ‘고교 무상화 방침’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고교 학비 무상화 방안 도입을 앞두고 재일조선학교에 대한 지원 여부를 고민 중이다. 조선학교가 북한의 지원을 받는 점, 유엔의 북한 경제제재,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 일본과 북한의 미수교 등을 들어 무상화 대상에서 빼자는 의견이 심심치 않게 제기된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조선학교의 수업이 일본 고교과정과 유사한 체계를 지니는지 살펴본 뒤 결정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오사카조고는 “민족차별이며, 일본에서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키우려는 학생들의 배울 권리를 유린하는 행위”라며 반발한다. 오사카조고 럭비부는 오사카조고에서 럭비를 하려는 중학생들이 재정 부담 때문에 진학을 포기할까봐 걱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오사카조고 럭비부의 선전은 조선학교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데 큰 몫을 했다. 일본 고교에 비해 열악한 환경의 오사카조고가 저돌적으로 경기해 승리를 이루자 일본 사람들마저 감탄한 것이다. 오 감독도 “고교 스포츠에 관심이 높은 일본 언론이 오사카조고 럭비부를 비중 있게 보도해 조선학교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최근 오사카조고는 히가시오사카 시와 운동장 대지를 약 1억5000만 엔에 매입하기로 협의했는데, 이 기금을 모으는 데도 럭비부의 성과가 큰 도움을 줄 전망이다.

재일교포 3세 김대정(37) 씨는 일본 땅에서 비록 국적은 한국과 북한으로 나뉘었지만 한민족의 이름으로 함께 역경을 헤쳐나가는 모습에 무한한 애정을 보낸다.

“오사카조고 럭비부의 활약은 ‘재일교포들이 일본에서 떳떳하게 살고 있다’ ‘우리 민족의 말과 글, 이름을 지키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여러 사람에게 알리게 됩니다. 재일교포에겐 이보다 자랑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주간동아 2010.05.04 734호 (p48~49)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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